악기를 메고 가는 사람

연습

by 세상 사람


길을 가다 마주치면 언제나 의식적으로 힐끔 보는 것이 있다. ‘악기를 메고 가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어쿠스틱, 일렉트릭 구분 않고 기타 종류가 가장 흔하고, 정확히 무슨 악기가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어깨에 가뿐히 멜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악기 케이스인 경우도 있다.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같은 현악기도 있겠고, 색소폰, 플루트 같은 관악기나 멜로디언 등의 작은 건반악기일 수도 있겠다. 반면 혼자서 들고 다니기 버거워 보이는 첼로나 베이스, 커다란 키보드 케이스를 든 사람도 간혹 있다.


왜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꽤 많은 사람들이 가방이나 무언가를 들고 지나가지만, 유독 악기를 든 사람을 미묘하게, 찰나지만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는 느낌으로 곁눈질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낯선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몰래 상상해 버리고 만다. 나 역시 조금은 악기를 다뤄 봐서 그런지, 그 상상 속의 연주 모습이라는 것은 근사한 공연장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이 아닌, 작고 조용한 방에서 혼자 연습하는 모습이다. 그 편이 훨씬 길고, 그런 시간이 없이는 어떤 연주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오래 다녔다. 진작부터 집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다. 무슨 나무로 만든 건지는 몰라도 무광 로즈우드 색깔의 삼익피아노, 혹은 영창이었을 수도 있다. 기억해 내기에는 너무 오래전이다. 나는 내 힘이나 의지를 별로 들이지 않고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자연스럽게 건반을 조금 칠 수 있게 된 채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혼자서 음악에 빠지고 그걸 하겠다고 나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피아노 연습을 다시 시작한 요즘, 실력 향상보다는 즐겁게 치는 행위 자체에 좀 더 무게를 싣고 싶은 와중 약간의 고민이 들었다. 어릴 때 학원에서 배우는 곡들로는 연주를 즐긴 적이 별로 없었는데, 집에서는 좋아하는 노래를 귀에 들리는 대로 C key로 바꿔 내 방식대로 카피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 검은건반 안 쳐도 되는 그 키 말이다. 이렇게 C Key밖에 못 치는 나는 바로 그게 고민이라 동거인이자 동료 뮤지션인 N에게 물었다.


라이브로 내 곡을 연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원곡은 다른 Key인 노래를 키보드의 Transpose를 이용해 실제로는 C Key로 치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취미로 친다면야 나 좋을 대로 치는 게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내 말은 이러면서도 나를 뮤지션이라 부를 수 있나,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이었다. N은 대답했다. “아니? 누가 뭐라 그래, 그걸? 오히려 Transpose를 잘 활용하면 좋은 거지. 쓰라고 있는 기능이잖아. 무대에서 Transpose 하고 연주하려 그러는데 막 어디선가 심판이 호루라기 불면서 나타나 “삑- 반칙!” 하고 옐로카드 주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 ㅋㅋㅋ” 그 비유가 너무 웃겨서 우리는 그걸로 한참 배를 잡고 웃었다. N은 이렇게 만화 같은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말을 잘도 해서, 웹툰 작가를 하지 그랬냐고 나는 항상 얘기한다. N은 그 대답과 더불어 더 잘하고 싶다면 G Key 정도까지는 연습해 두면 좋다는 팁도 덧붙여 주었다.


말로는 즐겁게 치고 싶다면서 또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앞섰다. 그렇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느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어리석다면 더 어리석은 축이겠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나아가고자 할 때 또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연습을 한다는 것은 완연히 미래를 향한 자세이다. 매 현재 순간들이 연습을 거듭할수록 딛고 지나가는 과거가 된다.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길을 맴도는 듯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필시 그곳을 또 밟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래서 연습에 몰두하는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압축하여 겪고 있는 상태 같기도 하다. 그것도 매우 능동적으로, 매우 치밀하게. 좋아하는 악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일의 매력이다.


이 글을 쓰다가 연습에 관해 새로 든 생각이 또 있다. 어떤 일에 달리 경험이 없이 최초로 실행하는 때에는 그게 미래 어느 시점을 위한 연습이 되리라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인생 모든 일이 그렇다. 일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당시에 실패로 얼룩졌다 할지라도 미래의 어느 날 다시 해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면 그 기억들은 연습으로 변환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어쩌면 어린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남긴 몇몇 방황의 궤적은 남은 생에서 그렇게 쓰일는지도 모르겠다.



S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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