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앞선 글에서 요즘 취업 준비로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직장생활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내비친 게 마음에 걸리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나라고 해서 높은 곳에 열린 달콤하게 잘 익은 포도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는데 취업시장 안에서 나는 일련의 운 나쁜 과정을 거친 후 점프력이 약한 여우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저건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를 되뇌며.
구체적인 서술을 하기 전 키워드로 먼저 정리하자면 나는 한 번의 해고와 한 번의 체불, 한 번의 취업취소를 연달아 당한 경험이 있다. 세 번의 경중과 원인은 다 다르나 사회초년생 때 일어난 일이다 보니 이후 나의 직장생활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을 1년 가까이 다녔다. 유학비자로는 1년 간만 일할 수 있고 이후에는 고용기업에서 취업비자를 스폰서함으로써 고용을 이어가게 된다. 1년이 되어갈 즈음, 내가 일하던 부서에서는 모두 나의 취업비자 스폰서를 당연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업무 호흡도 잘 맞는 편이었고 비자에 관해서는 이미 그렇게 하기로 여러 차례 논의한 후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는 얼굴도 잘 볼 수 없는 CEO가 등장해 외국인에게 취업비자 내 주는 일을 우리 회사에서 할 수는 없다며 찬물을 끼얹었다. “같은 가격이면 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데 왜 번거로운 일을 해 가며 외국인 고용을 유지해야 하나”라는 요지였다. 매니저와 부서장이 여러 방향으로 방법을 강구했지만, 결국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남아 있고 싶지도 않았다.
충격이 컸으나 경제활동을 쉴 수 있는 상황도, 한국으로 돌아올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곧 재취업에 도전했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 버렸으므로 무조건 취업비자를 해 주는 곳으로 다음 취업처를 정했다. 그러나 이곳은 약간 콩가루 같은 곳으로, 일한 지 두어 해 되던 시점 급기야 월급을 조금씩 덜 주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피를 말렸다. 체불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나로서는 신분이 자유롭지도 않으니 회사의 재정적 어려움을 약간은 버텨볼 수 있었으나, 더는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급여가 밀려 있는 직원들은 부리기가 불편했는지 근무시간을 줄이더니 이런 사정을 모르는 새 직원을 뽑아 돌려 막기를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적지는 않겠지만 회사 유지가 어려울 만큼의 재정 상황이었다기보다는 경영진 간의 개인적인 싸움과 경영실패가 더 큰 문제로 보였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참고서는 다닐 수가 없었다.
그곳을 떠나기 전 다행히 극적으로 이직처를 구했다. 하지만 다음 일어난 일은 나의 피고용 트라우마의 화룡점정이 되고 마는데….
다른 주에 위치한 그 회사에서는 입사를 확정하고 나에게 일할 대비를 하라며 과제물을 보냈다. 그 사이 몇 달의 텀이 생긴 나는 한국에 나와 비자 준비를 했고, 그쪽과는 업무라든지 그곳 생활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함께 일할 사람을 한국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로 미안하게 됐다며 해당 포지션 고용 건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진짜인지 둘러대는 거짓말인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섣불리 취업을 확정하고 내쪽에 이직 준비를 시켜 놓고는 나중에 담당자의 마음이 바뀌어 다른 사람을 뽑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걸 그러려니 하기에 난 이미 너무 지쳐 있었고, 절박했고, 그들을 믿어 버렸다(겉보기에는 그렇게 이상한 회사가 아니었다).
이런 일들로 한참 힘들어하고 있을 때, 잠깐 만난 SNS 친구 한 분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넌 자꾸 나쁜 선택을 빨리 한다.” 나를 평가하려는 말은 아니었고, 너 정도면 충분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격려의 말을 하던 중에 나온 문장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실제로 그랬다. 불안함을 견딜 수 없어서였기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였기도 하지만, 일에 있어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선택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회사의 가능성이나 나의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공백 없는 신속한 구직만을 목표로 했으니까.
포지션 취소 사건 이후 한국에 완전히 귀국해 살면서 몇몇 회사에 취업해 일했다. 지난 일들이 무색하게 나는 그럴싸한 이력서를 쓰고 적당한 가면을 쓰며 면접을 치러내곤 했다. 좋은 동료도 많이 만났고, 값진 경험도 많이 했다. 하지만 저변에 깔려 있는 고용과 피고용 관계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극복한 적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조직에서의 나는 인격체가 아니다, 교체 가능한 부품이다,라는 방어기제를 스스로 탑재하고 본심을 숨기려는 노력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쓴 게 아닌가 하는. 그래서인지 내 디자인 커리어 중 근속기간이 가장 긴 포지션은 그런 노력이 필요 없는 ‘프리랜서’로서였다. 근속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이 개인을 부품화 한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일면 기정사실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이런 사건들을 몰아서 경험하는 바람에, 그것도 타국에서 맞은 첫 사회생활이 그랬기 때문에 내게는 조금 더 소화하기 어려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현재는 재취업이 유력한 옵션이긴 하지만, 더 먼 미래를 위해서는 오랜 기간 계획만 하던 1인기업 혹은 어떤 형태이든 한층 더 자립적인 경제활동 준비도 고려하고 있다. 창작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일, 50대나 60대, 아니 70대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를 바라고 있다. 시간이 걸릴 테니 조바심 버리고 차근차근 공부할 작정이다. 어제의 실패는 오늘까지만 얘기하고 내일은 내일의 실패를 맞이해야지. 새로운 실패가 무섭다고 안주하지 말아야지. 이제부터는 좋은 선택을 천천히 해야지.
S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