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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e 세인 Jan 08. 2024

부엉이의 종달새 체험 1일 차

시작 | 한층 깨끗하고 활동적인(?) 미라클 모닝


4시쯤 잠에서 깨어 잠시 앉았다가 캄캄한 채로 스트레칭과 요가 동작 몇 개를 했다. 원래 계획이던 5시까지 더 잘까 하다 그냥 일어났다. 그랬다가는 못 일어날 것 같기도, 첫 출근에 긴장했는지 잠이 달아나 버리기도 했다. 곧 불을 켜고, 옷을 챙겨 입고,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었다. 여유롭게 외출준비를 하는 동안 어느덧 나갈 시간에 가까워졌다. 지도 앱에서 얼핏 본 대로 5시 31분에 집을 나섰다.


첫차는 놓치고 두 번째 차를 탔다. 지도 앱에 뜬 출발 시간을 잘못 이해했나. 지하철 출구가 공사 중이라 길도 건너야 했다. 빠른 걸음으로 이만큼 걸렸으니 첫차를 타려면 27분에는 나와야겠다. 그래도 근래 이 시각까지 안 잔 적은 몇 번 있어도 일어나 외출까지 한 일이 없는데, 일찌감치 일어나고 허겁지겁하지도 않다니 용하다.






처음 탄 열차는 한산했으나 갈아탄 열차에는 빈자리가 없고 듬성듬성 사람들이 서 있다. 앉아 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이렇게 일찍 이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집에서 역까지 걸어오는 거리에서도 드물지만 사람들을 봤다. 자주 가는 닭곰탕 집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퇴근길인 듯한 사람도 보였고, 역 안 빵집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풍겨 나왔다. 승차장에 앉아 열차를 기다릴 때는 따로 도착한 중년 여성 둘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


한 주에 며칠만 두어 시간 바짝 일하면 돼서 구한 알바긴 한데, 돈이 적은 게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시급이 적다는 뜻이 아닌, 근무 시간이 짧으니 총액이 적다는 얘기). 그래도 새벽에 일하고 오전부터 온종일 내 시간을 쓸 수 있는 점, 공과금을 비롯한 최소한의 지출이라도 벌고 있으면 놀아도 마음이 놓인다는 점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논다고 썼지만 실은 정반대로 개인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싶은 시기다(작업에는 글쓰기도 포함된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노는 것은 아님에도, 돈을 못 벌 때는 제 발이 저린다. 얼마간 일을 쉬어도 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계획을 마쳐 놓았으면서 결국 고정비라도 벌어야 안심인 것이다.


열차 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타고 온 걸까? 대부분이 출근길이겠지? 무릎에 올려 둔 백 팩을 안고 고개 숙여 잠든 사람이 심심찮게 섞였다. 그 외에는, 나를 포함, 거의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내릴 역에서 두 정거장 앞에 다다라 고개를 드니 사람이 더 많아져 있다. 곧 내린다. 두근거린다. 일은 어떨까.


집에서도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시작해 그대로 초고를 써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장소가 지하철로 바뀐 것도 나쁘지는 않다. 첫날이라 긴장감으로 버티는 중이지만, 이왕 하기로 한 일, 계약기간 동안 무사히 이 패턴에 적응하고 싶다. 고요하고 캄캄한 새벽을 좋아해서 걸핏하면 밤을 새웠는데(그런 날은 5시쯤 잠든다),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 맞은 새벽도 조금 다르지만 좋다. 부엉이의 종달새 체험 1일 차, 출근길 현재 상태 양호.


내릴 역에 도착해 출구로 나갔는데 아직도 해는 뜨지 않았다. 해가 긴 여름에는 좀 다르겠지. 가로수 사이로 그믐달이 보인다. 노랗고 빨갛고 파란 밤 불빛이 여기저기서 빛나는 잘 아는 거리인데 몸과 정신이 아침인 탓에 익숙한 이 색깔이 사뭇 낯설다.






청소할 건물에는 늦지 않게 도착했다. 업체에서 업무 인계 목적으로 오신 분과 함께 일할 분이 먼저 와 계셨다.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릿속에 내용을 저장하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 복잡할 건 없었지만, 청소 일이 처음이라 그런지 설명을 하나 놓쳐서 어마어마한 실수를 저지르면 어떡하나 하는 증폭된 불안이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건물을 한 층씩 오르는 동안 업무도 한 단계씩 파악됐다.


미리 챙겨간 작업용 장갑을 낀 나를 본 업체 분이 직접 가져온 거냐고 묻더니 엄지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립이 좋아야 할 것 같아서요“ 하며 웃었다(참고로 논슬립 장갑과 고무장갑, 손목 보호대를 가져갔고, 면장갑과 TPE 장갑도 챙기려다 말았다).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동안에는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처음에는 도구와 친해지느라, 그다음에는 오직 효율을 높일 궁리로만 머릿속을 채워서. 청소기로 민 곳을 또 밀지 않도록 대걸레로 닦은 곳을 또 닦지 않도록 동선을 안배해야 했고, 속도를 높이면서도 힘은 덜 들일 수 있는 각도로 몸과 도구를 조절해야 했다. 바닥을 닦을 때는 오른팔과 왼팔로 번갈아 가며 대걸레를 잡고 같은 동작을 양팔에게 다 연습시켰다. 한쪽에만 무리가 가는 것이 싫다.


다음 출근 때는 작은 비닐백을 허리춤에 차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청소기를 다 민 다음 걸레질할 때 집기 따위가 놓여 있어 청소기로 빨아들이지 못한 구역의 먼지가 눈에 띌 때가 있는데, 걸레로 쓸어 오면 걸레질 다 할 때까지 걔(먼지)를 데려오느라 신경 쓰일 것 같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오기엔 마음에 걸린다. 눈에 거슬리는 건 바로 주워 비닐백에 담으면 좋을 것 같다.


처음 해 보는 일치고 난관을 맞닥뜨리지 않아서, 건물 전체가 아닌 정해진 구역만 하면 되고 맡은 업무가 비교적 어렵지 않은 점도 초보자로서 다행이었다. 청소를 마치고 문을 밀고 나오는데 옷으로 가린 주먹으로 문손잡이를 조심스레 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애써 닦은 유리에 지문 안 묻게 하려고. 마찬가지로 걸으면서도 신발 밑창이 찍히지 않는지, 사용한 걸레에서 물방울이나 먼지가 떨어지지는 않는지도 살폈다.






새벽일인데 집 근처 놔두고 지하철까지 타야 하는 곳을 고른 이유는, 여기가 좋아하는 동네라서가 크다. 끝나고 근처에서 다른 일정이 있는 날도 있지만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몇 시간 전 출근길 아직 어둑한 이곳 골목을 걸을 때도 좋았고, 퇴근하고 카페로 오는 동안 다시 환해진 그 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또한, 지금 와 있는, 스타벅스 이 동네 지점도 좋아한다.


한동안 내게는 재택근무로 하는 일이 구직에 있어 언제나 영순위였다. 그 뒤로는 도보 혹은 환승 없이 출근할 수 있는 일 순이었다. 해가 바뀌자마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하철을 그냥 타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그 열차가 첫 혹은 두 번째 차여야만 하는 시각에, 그렇게 달려가 온몸을 써서 건물을 쓸고 닦아야 하는 임무까지 맡다니(진짜로 쓸지는 않고 청소기 돌림). 어쩐지 ‘미라클 모닝’과 ‘안 해 본 일 하기’, ‘좋아하는 동네 산책하기’와 ‘일주일에 며칠 카페 가서 글쓰기’에, 마지막으로 ‘운동하기(?)’까지 다섯 가지나 되는 챌린지를 하나로 합체한 느낌인데?


카페에 도착해 카푸치노와 샌드위치를 먹으려는데 긴장이 풀리며 그제야 어깻죽지가 당기고 쑤셨다. 그것은 분명 피곤함이 맞았지만 ’졸리고 힘들어서 글쓰기고 나발이고 바로 집에 가서 자고 싶은 거 아닐까‘라는 걱정에는 한참 못 미쳤다. 부엉이의 종달새 체험 1일 차, 퇴근 후 현재 상태 아직은 양호.



Seine




<지금부터 쓰지 뭐>는 2023 브런치북 『지금부터 하지 뭐』에 이어지는 '쓰기'에 관한 그림에세이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ever-or-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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