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2.
“모든 아이가 빛나는 사회”
올해 봐야 하는 SF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당연하게 드라마 ‘삼체’를 권하고 싶다. 아마 보신 분 중에 어떤 이들은 ‘굉장하다’고 하기도하고, ‘이게 뭐야’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삼체’라는 제목만 듣고 이해 안 되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먼저 하겠다. 삼체 전에 고전역학에서, 이체문제(二體問題, The two-body problem)는 두 물체의 질량과 현재 속력, 운동방향을 알고 있을 때 그 두 물체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어떻게 운동하고 있을지를 수학적으로 다루는 문제이다. 삼체문제(三體問題, The three-body problem)는 세 물체의 질량과 현재 속력, 운동 방향을 알고 있을 때 그 세 물체가 시간이 흐른 후 어떻게 운동하고 있을지를 수학적으로 다루는 문제이다. 이체 문제의 경우는 간단한 방정식에 의해 쉽게 풀린다, 그러나 삼체문제부터는 완벽하게 수학적으로 풀어낼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제시된 모든 해법들은 근사적으로 해결한 것 뿐이다.
삼체문제는 태양·지구·달 세 천체의 궤도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아이작 뉴턴은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세 개의 물체가 중력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경우에 대해 다루었지만 왜 세 천체가 안정적인 궤도를 그리는지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삼체문제의 풀이에 실패하였고 1890년에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삼체문제의 일반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는데, 이는 훗날 혼돈 이론(카오스)의 모태가 되었다.
삼체 문제에 대한 주기적 해법의 20가지 예
(애니메이션으로 보시려면 ->
https://en.wikipedia.org/wiki/File:Three-body_Problem_Animation_with_COM.gif)
지구가 돌고 있는 태양계에는 태양이 하나뿐인 일체이다. 만약 태양이 2개인 이체라 하더라도 두 태양은 짝을 이뤄 규칙적으로 돈다. 그러나 삼체계부터는 예측 불가능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세 태양이 서로의 궤도를 망가뜨리며 절대적인 불규칙 즉 카오스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규칙적인 궤도도 없고, 예측할 수 있는 계절의 변화도 없다. 지구에 사는 우리가 아는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는 태양 같은 항성이 3개가 있는 태양계에서 4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α Centauri, Alpha Cen, α Cen)'는 삼중성계여서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는 삼체문제를 가지고 있는 곳이고, 이곳의 외계 문명이 400년 후 살기 좋은 지구를 침략하는 것에 대한 중국의 작가 류츠신이 지은 SF 장편 소설이다.
‘삼체’를 책과 드라마로 접하면서 나의 뇌 속에서 싹튼 것은 ‘아니 3개의 항성을 가지고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우리 교육계는 N체(다체) 문제지 아니한가’
아마 전북교육청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미래교육을 말하면서 AI니, 디지털 역량이니 말들은 번드르르하지만, 인간이 20대가 되기 전까지 그중에서도 중고등학교 시기의 학습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나 그를 기반한 정책도 없고 더불어 향후 펼쳐질 미래 즉 2050년대의 시대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저 익숙하지 않으면서 화려하게 꾸며진 신조어들로 기묘한 미래를 말하는 것 같아 교육자로서 답답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 속으로 빠져 불안하기 그지없다.
눈부신 과학문명 안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러다이트(Luddite) 운동의 시대 사람들이 가질법한 과학에 대한 무뢰한들이 학교 교육에 있거나, 수포자들을 양산하면서도 수학교육에 대한 학교교육의 반성도 거의 없는 이상한 나라이고, 수능만이 인생을 위한 만능키가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뭐든 의심하고 질문하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지금의 학교 교육은 삼체문제보다 일반해가 없는 다체문제 상황이다.
일반해가 없는 다체문제를 풀기 전에 나는 우리 교육자 모두와 공유하고픈 일반해의 목표를 “모든 아이가 빛나는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으로 학교는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변화를 멈추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감히 한 가지 제안한다. 일찍 높은 성과를 보인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교육을 과감히 버리자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우리 다음 세대 즉 미래를 위한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모든 아이가 빛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역량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높은 투자를 해야 한다. 똑똑한 한 학생(어떤 기업인은 천재 한 사람이 2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 헛소리)을 돋보이게 하는 학교 교육보다는 모든 학생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학교 교육을 만들어 가자.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가정(假定)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