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
*2021.04.05에 출간된 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독립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해방촌, 강남점), 이후북스, 지구불시착, 북극서점, 책빵소에 입고되어 있습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하늘은 붉어졌다가 푸른빛을 지나 어둠으로 물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네요.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볼까요,
살짝 바라보기만 해도 눈을 찡그리게 만드는 LED 전등은 끕니다. 매트리스 옆 스탠드를 켤게요. 전등 갓을 따라 새어 나오는 노란 빛은 방을 은은하게 비춰요. 까무룩 잠이 들어도 괜찮은 밝기입니다. 자, 이제 책상으로 가요. 읽다 만 책과 노트 하나, 펜 하나, 노트북을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요. 베개와 커다란 곰 인형을 쌓아 등받이를 만듭니다. 오른쪽에는 언제든 줄을 당겨 끌 수 있는 스탠드와, 좋아하는 물건들로 준비되었습니다. 어둠과 어우러지는 나만의 동굴, 완성입니다.
낮에는 많은 것들이 깨어있습니다. 사람도 깨어 있고, 식물도, 창밖의 저 새도, 옆집 멍멍이도, 맴맴 매미도, 마음도, 모두 깨어 있습니다. 깨어 있는 이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계속 말합니다.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해 외쳐댑니다. 잘 지내니, 뭐해, 알림, 알림, 쌓이는 알림. 직접 소리 내지 않아도 기계를 통해 말을 걸 수도 있지요. 저도 외쳐댑니다. 나 살아 있어, 난 이렇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알림, 알림! 그렇게 실컷 외쳐대고 나면 하루의 체력과 함께 목소리를 잃어갑니다. 큼큼, 목이 쉰 것만 같군요.
그러면 지친 몸을 이끌고 이불 속으로 데려갑니다. 이제는 목청껏 외치지 않아도 돼. 더 이상 알림은 없어. 너의 고요함을 방해할 이는 아무도 없어. 이제, 어둠 속에서 찌르르 벌레 소리만 들려옵니다. 잔잔한 새벽의 음악을 켜고 밤의 시간을 즐깁니다.
책 속의 누군가와 마음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고민의 해결점을 찾기도 합니다. 얼키설키 꼬인 마음이 할 말이 많다고 궁시렁대면 펜을 들어 열심히 써 내려갑니다. 혹은 슥슥 선을 그어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지요. 어둠을 따라 잔잔해진 마음은 이리저리 선을 그어댑니다. 그냥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가만히 눈만 꿈뻑이며 주인공을 따라 감정의 파도를 타지요.
풀어낼 만큼 풀어낸 후에는 무릎 위 모든 것들을 매트리스 아래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새벽의 음악은 쉿- 꺼버리고, 곰 인형은 이불 옆에 내려두고, 딸깍, 스탠드를 끕니다. 스르륵 몸을 뉘어 잠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여기, 제가 좋아하는 그 시간을 담았습니다.
✍일어나는 소리, 흣쨔!
느린 걸음의 산책가이자 수집가.
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후루룩 흘러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한걸음씩 내딛으며 이야기 조각을 수집한다. 조각은 그의 조각이기도 하고 당신의 조각이기도 하다. 때론 그림책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잠깐 걸음을 멈춘 그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띄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