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의 편지 08
엄마.
순례자의 길 위에 태어나면 어떨까? 걷다 보면 종종 작은 마을들을 지나곤 하는데 마을에 들어서면 요즘 그런 생각을 해. 순례자들이랑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어떨까? 내가 내 머리보다 높은 가방을 메고 길을 헤매면, 마을 아줌마나 할아버지들이 ‘Hola’,‘Buen Camiono’하면서 길을 알려주셔, 묻지도 않았는데. 지난번에는 빵! 하고 경적소리가 들리더니 가던 차가 멈추고 창문을 내리고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이 맞는 길이라고 말해주더라고. 너무 고마웠어. 그러다 문득, 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냥 길을 알려주는 일이지만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또 다른 누구에게, 또 어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을까?
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까 궁금해져. 늘 마을에는 가방을 멘 사람들이 하나둘 지나쳐 가고,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개 그림이 집 앞 대문에도, 보도블록에도, 모든 표지판에도 하나씩 붙어 있을 텐데 말이야. 귀찮을 법도 한데 또 새로운 조개를 그려주는 이들은 하루가, 매일이 순례인 걸까?
길 초반에는 가끔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순례자의 자세’나 ‘순례자에게 들려주는 말’ 등등의 지침서들이 있어서 읽어봤어. 모든 책에서 하는 말이 ‘늘 감사해라.’이더라고. 알베르게 호스트에게도, 길에서 만난 모든 이에게도 고마워하라고. 나는 또 생각했어, 아니 일 그만두고, 학교 그만두고, 수많은 고민을 안고 겨우 여기에 왔는데, 어떻게 모두에게 감사하냐고.
그런데 요즘은 다들 너무 고마워. 이렇게 예쁜 길을 걱정 없이 걷도록 길을 알려주는 이들과, 잘 곳을 내주는 이들과, “Buen Camino!”하며 인사해주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 내가 순례자로 보호받으며 여행하도록 해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고마워. 수많은 여행을 해봤지만 이토록 내가 소중히 여겨지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오늘은 해가 쨍쨍할 때 포도밭을 하나 지났어. 길을 처음 시작할 땐 손바닥만 하던 포도들이 어느새 두 손 가득할 만큼 잘 익었더라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던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포도 한 송이를 쥐어주면서 내 이름은 ‘토마스’이니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꼭 기도해 달라고 하셨어. 할아버지는 더 이상 늙어서 갈 수가 없다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잊지 말고 이 길의 토마스들을 위한 기도를 꼭 해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