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일, 모레

소소한 순간들 03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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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아.

카톡 프샤에 네 얼굴은 없고, 너랑 함께 걷던 잘생긴 남자애 얼굴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 ‘아, 산들이가 산티아고를 걷다가 연애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순간 당황스러운 거야.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지더라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그래.”

너에게 늘 하는 말이었는데, 막상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하니(순전히 엄마의 생각으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거지.) 네가 ‘너만의 우주’로 날아간 느낌이었어.

“산들, 잘생긴 총각은 누구? 같이 의지하며 걷는?”

“응. 산티아고에서 만났어.”

“딸은 보이지 않고 낯선 총각만 있는 풍경이 낯설더라.”

“장난 좀 친 거야.”


카톡으로 너랑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엄마랑 아빠가 연애할 때를 떠올렸어. 아빠가 처음으로 시골 외가에 인사를 갔던 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표정이 다들 이상한 거야. 너무 무뚝뚝했어. 화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는 너무 속상했어. 딸의 남자 친구를 인정 안 해주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때문에.


두 분 모두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던 거지. 딸의 남자 친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나중에 우리가 결혼하게 되었을 때는 “이 서방, 이 서방....”이라면서 엄마보다 아빠를 더 챙겨주더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어. 다음에 내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고, 손을 잡고 집을 찾아온다면 무조건 환대할 거라고. 그런데 오늘의 나를 보니 그때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마음이 와 닿네. 세상의 부모 마음이 그런 모양이다.


산들아.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을 하려고 한다. 네가 어떤 연애를 하든, 어떤 성적 취향을 가졌던, 어떤 선택을 하든 너를 존중할 거라고. 네가 대학생이 되면 ‘콘돔을 선물해야지,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지.’ 같은 온갖 생각을 했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없었고, 또 말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 그래서 지금껏 그런 이야기를 너랑 못 한 것 같다.


지난번에 학교에서 박 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민주가 남미로 여행 갔을 때, 혹시라도 결혼할 친구라고 외국인을 데려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샘, 저는 그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보다 혹시라도 산들이가 동성친구를 배우자라고 소개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엄마는 너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야. 그러면서도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또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될 날을 꿈꿔 보기도 한다.


네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너 앞에서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보다 다투고 미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 것도 같아 미안하다. 죽고 못 살 것처럼 사랑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서로를 할퀴고 상처 주는 모습을 보여서. 엄마는 아빠와의 결혼생활에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서야 엄마의 잘못을 떠올린다. 항상 후회는 늦게야 찾아오는구나.


산들.

그 길에서 좋은 사람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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