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의 편지 07
엄마.
한동안은 편지를 안 쓰다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오늘은 레온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거든. 어제는 좀 늦게 도착한 탓에 제대로 구경을 못 해서 하루 쉬었다 가기로 했어. 덕분에 밤에 과일이랑 와인이랑 사들고 사람들이랑 밤새 얘기했는데 엄마랑 함께 할 때는 못해봤던 일이라 신나기도 하고 들떠. 엄마, 요즘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더 가볍고 상쾌해. 부풀어 올랐던 물집이 굳은살이 되고, 이 길에 적응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기 길을 걷다 보면 하나둘씩 확실해지는 것들이 생겨서 후련해.
사실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들이 많았잖아. 내 단점이라든가 장점, 끝난 인연을 미처 떠나보내지 못하는 미련들, 나의 선택, 그런 것. 그런데 걷다 보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니까 너무 좋더라고. 내 일이고 내 감정인데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게 제일 나쁜 거라고 그랬지 엄마가. 나는 항상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당장 회식에 갈지 말지 놀지 말지도 정하지 못해 ‘결정 장애’라고 불렸는데 나는 그냥 ‘나’를 내 중심에 안 뒀던 것 같아. 그래서 늘 생각도 많고 그랬나 봐.
이 길에 오면서 내 몸 하나랑 달랑 10kg 짐만 들고 와서 그런가, 나만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 흔들리지 않는 내 우주가 생기면, 내 만유인력에 끌려 들어올 것은 들어오고 아닌 것은 계속 밖에 있을 거야. 함께 살지만, 내 삶을 사는 그런 것.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가도 지금처럼 마음을 유지한다면 나도 언젠간 독립도 할 수 있을 거야.
엄마가 예전에 그랬잖아, 내가 독립을 하는 건 절벽에서 딸의 손을 놓아버리는 것 같아 무서울 때가 있다고. 엄마, 나는 오늘도 엄마가 놓아준 손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다른 사람이 내 손도 잡아주는 그런 길을 걸으며 여행하고 있어. 내 걱정은 말아. 내일도 빛나게 이 길을 열심히 걸어볼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