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는 즐거움

산들의 편지 06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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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난번 엄마가 그랬지, ‘나는 네가 매일같이 30km나 걷는다는 것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나도 어떤 자신감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20km든, 30km든 걷는 건 두렵지가 않아. 어렸을 때부터 내 다리 튼튼한 거 알았거든. 엄마의 놀람처럼, 나도 과연 내가 매일 새벽같이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이긴 했지만, 요즘은 새벽공기가 너무 좋아 일찍 일어나. 걸어도 걸어도 신기한 게 새벽걸음인 것 같아.


새벽하늘 별 보며 길을 걷다보면 내가 늘 동경하던 고대 과학자가 된 것 같아서 들떠. 그거 알아? 너무 어두운 아침에는 화살표 하나 보이질 않아서 하늘을 보고 걸어. 달을 바라보고, 내 왼편에 오리온자리가 있고 오른편에 이름 모를 별자리 하나가 반짝이는데 (오른편에는 북두칠성이, 그리고 이름 모를 별자리들이 제자리에서 반짝이는데), 그게 내가 가는 길이고 그러다 보면 항상 길이 나오고 점점 사람들도 보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공부했다던 옛 이야기가 정말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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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걷다보면 혼자인 기분을 듬뿍 느끼기도 해. 하루 중에 제일 많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순례자의 길이며 사색의 길이며 철학의 길이며, 그런 길들이 있잖아. 그 길을 걸으면 한 걸음 걸음마다 생각이 묻어난다고 생각해서 나는 늘 궁금했거든. 이제 내가 동경하던 곳에 와 보니 생각이 스르륵 달라지네. 막상 걸어보니 새벽부터 오후까지 걷는데,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내 인생만 생각할 수 있겠어. 같이 걷는 사람과의 대화가 물이 되고, 농담이 초콜릿이 되고, 힘들어 부르는 노래가 속도를 내서 걸을 수가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온전히 내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새벽이 아닐까. 그러다 또 가끔은 너무 까만 길을 걷다보면 세상의 중심에서 혼자 사는 기분도 들어. 그러면 “그래, 나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아야지!” 하다가도, 오롯이 혼자가 아니라 지구랑 함께 걸어가는 듯해서 또 알 수 없는 생각이 마구 드는 그런 시간이야.


참 다른 것 같아, 새벽이란 시간은. 아마 내가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시간이다 보니 새로운 것들을 더 잘 보게 되는 것도 같아. 그래서 그런지 하루 중 제일 예쁜 시간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떨어지기 싫어 더 반짝이다 은빛 색으로 지는 달을 보며 월몰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 항상 일몰만 보며 살았는데. 몸속에 공기가 돌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보이지도 않는 길을 성큼성큼 걷다보면 오늘 하루도 잘 걷겠구나 싶을 때쯤, 달이 지더라고. 떨어지는 달을 보며 아쉽다가도 뒤에서 뜨는 해가 또 예뻐 넋을 잃고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이 길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카메라에도 하늘 사진만 가득한데, 어디 하늘인지 구별할 정도로 매일이 소중하고 예쁘다.


한국에 가면 다신 걷지 못할 시간이라, 내가 집착하듯 즐기는 새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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