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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Apr 28. 2020

쿠타 해변의 데이비드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8

       

“맘, 산들이는요?”

“에구, 데이비드가 한 발 늦었네. 금방 떠났어. 택시가 좀 빨리 도착했거든.”

“산들이 주려고 선물 가져왔는데, 제가 공항으로 갈게요.”

“오토바이로 공항까지 어떻게 가? 다음에 내가 전해줄게.”

“아니에요. 공항에 갈 수 있어요.”     


숙소 근처 식당에서 만나 친구가 된 데이비드,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음이 잘 맞아 만나기만 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던 데이비드.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늘길이 막힌 지금, ‘그는 잘 살아내고 있을까? 잘 살아내야 할 텐데... ’ 쿠타 해변의 노을보다 더 멋진 감동을 주던, 그가 걱정된다.






“마술 보여줄게요. 눈을 꼭 감고, 손바닥을 내밀어 봐요. 나를 믿어요.”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요가원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청년이 다짜고짜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가로막고 섰다.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한 사이, 산들이가 그를 알아봤다. 좀 전에 들렀던 식당의 청년이었다. 눈을 감고 내민 손바닥에 무언가 놓였다. 숙소 열쇠였다.      


“세상에, 정말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네요.”     


위트 넘치던 그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낯설기만 하던 동네가 가깝게 느껴졌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에요?”

“요가하러 가는 중이에요.”

“요가라고요? 쿠타에서? 요가는 우붓에 가서 해야지요. 쿠타에서는 서핑하고, 신나게 놀아야 해요. 어디 봐요. 요가원 위치 가르쳐드릴게요.”     


주소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토바이 소리와 경적 소리가 가득한 이곳에서 요가는 어렵다며. 자기에게 서핑을 배우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서핑 스쿨에 등록했고, 꼭 요가원을 찾을 거라며 그와 헤어졌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간 요가원은 문이 닫혀 있었다. 다른 요가원을 찾아 나섰지만 폐업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헤매고 다녀요? 그 주소는 여기가 아니에요.”

“알아요. 우리가 찾아간 곳은 폐업했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요가원을 찾는 중이에요.”

“요가원 말고 클럽을 가야 한다니까요. 쿠타에서는 신나게 놀아야 해요.”     


그는 일하러 가는 길이라며 오토바이로 급하게 떠나갔다. 그런 인연으로 쿠타에 머무는 동안 점심은 데이비드네 가게에서 먹기로 했다. 그가 식당 주인인 줄 알았는데, 식당 2층 세입자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영어를 못 했다. 서핑을 마치고 데이비드네 식당을 향하는 우리가 보이면 식당 아주머니는 한길까지 들리는 크 소리로 데이비드를 불렀다.   

    


“지금에 만족하면 안 돼요. 계속 다음 단계에 도전해야 서핑 실력이 늘어요.”     


그도 서핑 코치였다. 나의 서핑 도전기를 듣더니, 마치 내 코치라도 된 것처럼 서핑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파도가 올 때 서퍼가 취해야 할 행동을, 담뱃갑과 라이터를 활용해 가르쳐주기도 했다. 스텝 1에 머물던 내가 스텝 2, 스텝 3에 도전할 수 있었던 데는 데이비드의 도움도 있었다.      


“데이비드에게서 서핑을 배웠더라면 좋았을 걸. 마로안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옮기지도 못하고.”

“맞아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들은 내 친구예요.”     


데이비드가 스태프로 일하는 ‘Daddy & Mom’은 마로안 바로 옆에 있었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 우리는 더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맛집은 아니었지만, 위트 넘치는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푹 빠져 서핑이 끝나면 데이비드네 가게로 달려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 강 옆에 위치해 있던 데이비드네 식당


“Saya senang Bali, Saya surfing sepuluh meters. (나는 발리가 좋아요. 나는 서핑으로 10m를 탔어요.)”     


출록과 지용에게서 배운 인도네시아어로 우리의 서핑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던 그도 우리가 매일 나타나자, 발리 음식을 한 가지씩 선보이기도 했다. 나시고랭(볶음밥)과 미고랭(볶음면)만 먹는 우리에게 곰탕 같은 수프, 백반 정식인 나시짬푸르를 소개했고, 디저트로 코코넛과 망고가 들어간 찹쌀밥, 스프링롤, 람부탄, 새우칩, 수마트라 감자요리를 공짜로 맛보게 했다. 특히, 고향 엄마가 만들어서 보내 주었다는, 얇게 썰어 튀긴 후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 다시 요리한 감자 요리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꼭 우리나라 양념 통닭 맛 같았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이었다.     


“원래는 자카르타의 사무실에 근무했어요. 그런데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회사일이 너무 싫었어요, 저는 서핑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옮겨왔어요.”

“처음으로 호객할 때는 정말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목소리가 자꾸만 안으로 숨었어요. 그런데 그게 내 직업이니까, 용기를 내야 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부를 때마다 용기가 필요해요.”

“해변에서 스태프들이 서핑하라고 이끌잖아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세요. 그게 그 사람들 일이잖아요.”     



쿠타 해변에서 호객하는 스텝들이 부담스러웠는데, 데이비드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리가 이미 예약한 서핑 스쿨이 있다고 하면 그들은 즐거운 시간 보내라며 응원해주었다.      


“여행 앱 때문에 힘들어졌어요. 여행객들은 도착하기 전부터 앱을 통해 예약하잖아요.”     


산들이의 전공이 앱 디자인이라는 것을 안 데이비드는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관광객이 잠재적인 손님이었지만, 지금은 우두커니 보고만 있어야 한다고. 그의 말을 들으며 변화된 여행 문화를 생각해보았다. ‘공정여행’을 이야기하며 현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숙소, 식당, 체험활동을 이용하자는 소리들이 많았다. 그런데 발리에서는 여행자가 더 많아지고, 여행 앱들이 발달하면서 그런 문화가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우리 역시 앱으로 숙소를 예약했고, 클룩으로 공항 픽업 서비스를 예약했다.      


“정부에서는 공항을 다시 열기로 했대요. 관광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대요. 그건 어리석은 결정이에요. 발리는 의료시스템이 열악한데, 좀 더 기다려야 해요.....”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객이 잦아들어 힘든 여건인데도, 여전히 밝은 목소리가 SNS로 전해진다. 부지런히 해변을 다니며 여행자들을 이끌던 넉살 좋은 그의 웃음이 쿠타 해변을 물들이기를 바라본다.


그는 잘살고 있을까?

그는 잘 살아내고 있을까?      

    

‘Daddy & Mom’ 의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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