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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저리호저리 Dec 26. 2020

"도를 아십니까?" 제가 가봤습니다.

가기 싫었지만...

 시간 좀 있으세요?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2010년 4월. 스무 살 대학생 때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신호등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30대 초 중반의 남녀 둘이 바람막이에 크로스백을 메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단번에 ‘도를 아십니까’ 같은 뭔지 모를 이상한 사람들임을 감지했다. 게다가 난 인상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더 의심이 갔다.


 네 왜요?

 머리 위에 사람이 보여서요.

 사람이요?


 궁금증이 많은 나는 대답만 듣고 가려고 했다. 신호등은 아직 빨간 불이었다.


 네. 전생에도 사람이었으면 머리 위에 사람이 보여요. 짐승이었으면 짐승이 보이고요. 뱀이나 소 같은 거요. 과거에 짐승이었다는 건 그보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래요. 업보라 그러죠. 그래도 짐승으로 태어나서 착하게 살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해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고요. 두 번 연속 사람으로 태어난 경우는 정말 덕을 많이 쌓은 거예요. 학생분은 덕을 많이 쌓았는지 사람이 보이네요. 학생 맞으시죠?


 칭찬이라니. 고래는 아니지만 춤은 출 수 있다.


 네 학생이에요.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고 앞으로도 잘 살려면 공부가 좀 더 필요한데, 저희랑 같이 가셔서 간단히 설명 들으실래요?


 아니요! 아니요! 관심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게 보통이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거절에 취약했다. 어느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냐. 대중교통을 혼자서 처음 탄 게 고3 대학 논술 보러 갈 때였고, 그마저도 집에 올 때는 길을 잃어서 아빠를 소환했다. 그런 나는 이미 버스를 타고 그들의 홈그라운드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홈그라운드는 학교 정문에서 버스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번화가가 아닌 곳에 5층 정도의 건물이었고 마당엔 주차장도 있었다. 꽤 큰 규모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중소기업체나 상공회의소처럼 보였을 것이다. 건물 상단에는 '대순진리회'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여기가 저희가 공부하는 곳이에요. 지역 주민분들도 오셔서 얘기도 나누고 공부도 하세요.

 아 굉장히 크네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던 20살이었다. 정말로 궁금한 것도 있었고 궁금한 척을 해야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가자마자 지하 식당으로 갔다. 직장 구내식당 정도의 규모에 요리하시는 어머님들도 따로 계셨다. 잘 갖춰진 체계 앞에 마음의 벽은 쉽게 낮아진다. 도를 아십니까도 무슨 말인지 들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자율 배정식 식사를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갔다. 모든 층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2평가량의 방이 여러 개 있었다. 공부방이라고 했다. 그 안에는 낮은 책상과 처음 보는 책들이 꽂힌 책장만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갔다. 마침 거동이 조금 불편한 할아버지를 이곳의 직원(?)이 부축하며 공부방으로 안내했다.


 아버님 식사는 하셨어요?


 자주 오시는 주민분인 거 같았다. 복지단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좋은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앞에서 이곳까지 데려온 두 사람 중 여자가 나를 담당했다. 그녀는 A4용지 여러 장과 펜을 가져왔다.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이렇다.


 과거에 이렇고 이런 덕을 쌓아야 사람으로 환생을 해요. 학생분 아닌 다른 사람들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게 태어난 거고요. 좁고 냄새나는 우리에서 사육당하고 결국엔 잡아 먹히고 다 벌 받는 거죠.


 오호라. 난 대체 어떤 덕을 쌓았길래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으쓱해졌다. 그 나이 때 으레 하는 생각인 '난 특별해, 남들과 달라'가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흙과 나무와 물과 이런 기운들이 어쩌고 저쩌고.


 생소한 내용이었지만 궁금증이 많고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의지까지 합쳐져 학구열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물론 끝까지 그곳에 대한 의심은 기저에 깔려 있었다.


 예전에 베네딕토 교황이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책 하나를 펼쳤는데 거기엔 교황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흑백 사진이 있었다.


 교황님께서 기자들과 한 산(어느 지방에 있는 산이었다)에 가서 땅에 입을 맞추며 '축복받은 땅이여'라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의민지 아세요?

 음 잘 모르겠어요

 아까 결국 세계는 멸망한다고 말씀드렸죠? 빙하기처럼요.

 네네 맞아요.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 빙하가 녹고 육지가 물에 잠길 날이 올 거예요. 그때 유일하게 잠기지 않는 땅이 한국의 그 산이예요.

 아 진짜요? 엄청나네요? 근데 왜 하필 한국이에요?


 그녀는 무슨 무슨 대답을 했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제일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아닌가. 교황이 그런 말을 했다는 정확한 증거도 없었다. 그래도 20살의 나는 믿었었다.


 그렇게 그날은 공부를 하고 집에 갔다. 당연히 찝찝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런 쓸데없는 거나 믿고 따라가는 바보 취급을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학교 끝나고 제 발로 찾아가는 바보가 되었다. 왜 안 오냐는 전화가 왔었기 때문이다. 그냥 무시하고 안 나가면 되지만, 거절을 못 하는 바보였다. 5층짜리 건물에 가서 날마다 배우는 것들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어느 날은 끝나고 가면서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했다.


 주호님.


 이미 내 신상은 다 털린 상황이었다.


 주호님 제사 지내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따로 지내시는 거 같은데 저는 한 번도 없어요.

 그러시면 안 돼요. 주호님은 조상들 덕을 많이 보는데 조상님들은 배고파하세요.

 네? 왜요?


 덕을 많이 쌓아 사람으로 환생하고 조상 덕도 많이 받은 나는 심각해졌다.


 조상들은 죽어서도 가족 주변을 지켜주거든요. 주호님한테 나쁜 귀신이 못 오게 조상님이 막아주세요. 수호신처럼. 그런데 주호님은 제사를 안 지내시죠. 제사 때 뭐 하는지는 알죠?

 네. 음식 차리고 절하고 그러잖아요.

 네 그 음식을 조상님이 드셔야 하는데 음식이 너무 없어요. 너무 배고파하세요.


 우리 조상님을 굶길 수는 없지. 다음 말이 궁금했다.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저희가 대신 제사를 치러드릴 거예요. 그러려면 음식하고 준비물이 필요한데 주호님은 학생이고 돈이 많진 않잖아요.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으세요?


 돈이라고? 아무리 바보라도 돈 얘기 앞에서는 정신이 바짝 든다.


 40만 원 정도 있어요.


 정신이 바짝 들어도 거짓말과 거절은 못 한다.


 그럼 생활비 빼고 어느 정도 쓸 수 있어요?

 음... 27만 원 정도는 가능할 거 같아요.

 한 달 용돈 20만 원에 교통비 데이트비 빼니까 그 정도가 남았다.

 그러면 저기 앞 ATM에 같이 가서 제사 지낼 비용을 줄 수 있을까요?


 아니요! 내가 왜요? 그렇게 큰돈을 뭘 믿고 줘요?라고 말해야 했다.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20살의 김주호의 배를 때리고 기절시킨 채로 집에 끌고 갈 것이다.


 네... 그럴게요.


 그녀와 함께 ATM에 부스에 갔다. 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밖에서 기다렸다. 생각했다. CCTV에 찍히면 나중에 신고당할 수 있어서 들어오지 않는 거구나. 난 바보구나. 돈을 주면 안 되는 거구나.


 여기요.


 주고 말았다.


 네 그러면 다음에 오시면 제사 지낼 거니까 경건한 마음으로 오세요. 조상님이 기뻐하실 거예요.


 다음 수업 날. 이번엔 공부방이 아니었다. 15평 정도 되는 불 하나 안 켜진 가로로 긴 방이었다. 기도실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는 제사상이 준비되어 있고 양쪽에는 불이 붙여진 기다란 초가 하나씩 있었다. 들어가기 전 하늘색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말도 안 되고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호기심도 컸다.


 이제 앞에 서서 절을 드릴 거예요. 옆에 서서 다 알려드릴 거니까 어려워하실 거 없어요.


 그녀가 말해준 대로 몇 번의 절을 하는 도중 바지가 벗겨졌다. 황급히 주워 올렸다.


 음…


 그녀는 뭔가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바지를 다시 묶어주었다. 몇 번의 절을 더 하고 끝냈다.


 주호님 이리 와보시겠어요?


 제사상 앞으로 갔다.


 주호님 바지가 벗겨진 것도 그렇고, 초를 보면 오른쪽은 별로 안 녹았는데 왼쪽만 녹은 게 보이시죠?

 네 그렇네요?

 이 두 가지는 외가 쪽의 애정 문제인 거예요. 혹시 외가 쪽에 이혼 문제가 있거나 사이가 안 좋거나 하지 않으세요?


 놀라웠다. 그 당시 이모와 삼촌은 이혼을 했고, 우리 부모님도 전에 위기가 있었다. 이 정도면 대순진리회를 믿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무서움도 컸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적인 존재와 현상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사람은 못 됐다. 그날은 거기까지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더는 못 나오겠다고 말하려 다짐했다. 근 한 달을 다녔을 때다.


 저기요.


 평소처럼 공부방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는 도중이었다.


 저 이제 못 나올 거 같아요. 시간도 안 맞고 좀 그래요.

 잠시만요.


 그녀는 양해를 구하고 10분 정도 어딘가에 다녀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울고 온 듯해 보였다. 나를 위해 울다니. 마음이 약해질 뻔했다. 그래도 다짐을 했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로 결론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정류장까지 배웅을 해 주는 길이었다.


 주호님. 주호님은 가지만 저희는 이 공부를 계속할 거고 여러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거예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희가 돈을 버는 상황은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데 A4용지 사게 만 원만 주실 수 있어요?


 에라이. 그간 모든 게 다 만원으로 퉁 쳐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거절을 못 하는 나 아닌가. 만원을 주고 탈퇴비 낸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굉장히 시원한 마음이었다. 주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하고 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경험이 되었다. 대순진리회 덕분에 이제는 길에서 만나는 모두를 거절하게 됐다. 세상 물정을 조금을 알게 됐다. 정말 조금인 게, 몇 년 후에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부산에 가야 하는데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6만 원을 빌린 적이 있고 난 빌려줬다. 핸드폰은 없는 번호였다. 돌려받지 못했고 경찰서에 갔다. 요즘은 유치원생도 천 원 한 장 안 준다고 혼났다. 서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때 한 번 더 세상 물정을 배웠다. 하지만 아직도 도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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