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온 Feb 06. 2017

할머니는 잘못한 거 없어요.

우리가 손잡아 줘야 할 때. '눈길'.

주의 1: 본 문서에는 영화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주의 2: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한번 보고 오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와디즈'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브런치'눈길'(이나정 감독, 런타임 121분) 시사회에 관한 을 올렸을 때 신청을 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내가 과연 객관적인 위치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신청' 버튼을 누르기 힘들게 했다. 그래도 결국 시사회 참가를 결정했고, 친구 한 명과 같이 다녀왔다.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울어서 나도 덩달아 슬퍼져서 그랬는지, 아님 그저 영화가 슬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울었다. 억지로 울게 만드는 장면들 때문이 아니라, 그저 슬퍼서, 그저 죄송해서 울었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음 애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와 닿는 영화였다.


영화는 현재를 살고 있는 '종분'(김향기)의 악몽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악몽과 다름없는 1944년 일제강점기 말에서 살아남은 위안부 할머님들 중 한 분이다. 당시 부잣집 따님인 '영애'(김새론)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종분은 극명하게 다른 위치에서 살아간다. 영애는 학교에 다니고 예쁜 옷을 입으며 고운 신발을 신지만, 종분은 남동생의 학교 생활을 위해 신부름을 하면서 해진 옷과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걷는다. 그렇게 다른 길을 걷던 둘은 어느 날 갑자기, 위안부로 모집되어 끌려가게 된다. 영화는 종분의 과거를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그녀와 부모 없이 엇나가는 여고생 '은수'(조수향)의 삶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국가'의 갈등 속에서 발생한 불행을 '사람'을 통해 풀어낸다. '눈길'에서 역경(군대 위안소)의 제공자는 국가지만 사람 사이에서 그 역경은 해소된다.

지옥 속에서 영애와 종분은 서로에게 삶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영애종분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기존의 생활 배경, 성격 등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던 영애종분은 결국 같은 운명에 휩쓸린다. 지옥으로 변한 삶 속에서 둘은 서로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부여해 준다. 종분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는 영애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영애는 마지막 숨결에 종분에게는 '여기 우리 애들, 네가 기억해야 돼'라며, 피해자였던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당시 종분에게는 살아 돌아가야 할 이유였던 영애의 부탁은 현재의 짐으로 돌아온다. 위안소를 탈출하고 피해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 영애의 이름을 사용했던 종분에게는 계속 영애의 환영이 보인다. 그 환영에게 종분은 계속 물어본다. "아직도 (독립운동가였던) 네 아버지가 밉냐"라고. 영애의 환영은 답한다. "웃겨. 가족을 지옥으로 던져 넣은 인간이 국가유공자라니." 여기서의 '아버지'는 국가와 흔히들 말하는 '대의'를 상징한다. '영애의 환상'은 그 속에서 상처받은 '개개인의 삶'이다. 그 상처는 어떠한 보상으로 치유되는 아픔이 아님을 영화는 말한다.

한 때 살아 돌아가야 하는 이유였던 과거가 현재의 종분의 발을 묶는다

종분영애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본인의 이름으로 위안부 진상 규명 운동에 나서게 된 개기는 은수의 한마디 덕분이다. 종분은 부모도 집도 없어 방황하고 사회 제도 내에서 방치되어 있던 은수 안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은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학비 지원이나 집이 아닌 따뜻한 손길임을 종분은 인식한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 안에 응어리진 상처에게도 똑같은 따뜻함이 필요함을 알지 못한다.

그런 종분에게 은수는 말한다.

할머니는 잘못한 거 없어요. 그 새끼들이 잘못한 거지.

그 날 이후 종분은 본인의 상처를 용서한다. 영애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국가유공자의 자손에게 주는 지원을 받아들인다. 위안부 진상 규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삶에 은수라는 새로운 삶의 이유가 생긴다.


영화는 말한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이들을 잊지 말고, 이들의 곁에 손잡고 있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국가적 차원의 노력도 없어선 안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와 함께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너무 어려운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대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해줘야 할 때다.


좋은 영화를 먼저 감상할 기회를 준 Wadiz에게 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버텼던 소녀들의 이야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담은 영화 '눈길'을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링크에서 투자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간절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