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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Feb 20. 2018

치유.

행복이의 작디작은 초록색 조각.

내가 중학교 2학년을 시작할 때 즈음에 입양한 강아지가 있다. 내가 했던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친구가 데려갈래? 그러길래 냉큼 가족 4명이 함께 보러 갔었다. 그런데 웬걸, 토이푸들이라 했던 놈이 '토이' 사이즈라고는 믿을 수 없는 풍채를 당당하게 풍기며 짖으면서 반겼다. 그리고 그 녀석은 아직 건강하게 우리 집에서 함께한다. 행복이라는 이름을 지니면서 말이다.


반려견을 입양하면 의무적으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를 하면 전자칩으로 각 애견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칩을 목걸이에 다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체내에 이식할 수도 있었는데, 그 커다란 토이푸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우리는 체내에 어떤 물건을 넣는다는 생각에 질색하며 목걸이에 다는 칩을 선택했었다. 매번 산책을 나갈 때마다 목걸이가 바뀌면 칩을 옮겨 끼워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할만했다. 행복이가 행복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웬걸, 이 녀석은 말을 참 안 들었다. 나가지 말라면 뛰쳐나가고 산책만 나가면 어디론가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 하루, 행복이는 어디론가 뛰쳐나갔다. 어떻게 어머니께서 근처 공원에 가서 찾았다고는 했지만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었다. 목걸이를 안 하고 나갔던 우리 강아지가 길이라도 잃었다면 어떻게 다시 찾았을지, 상상도 하기도 끔찍했다. 그 날 과거에 했던 행복을 재고하게 됐다. 그냥 칩을 몸 안에 넣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심한 걱정은 안 해도 됐었을 텐데. 그런 기우는 당연히 잃어버리는 게 이상한 거지, 소중하게 대하는 게 옳은 거고, 라는 생각으로 묻혔다. 하지만 여느 잡생각이 그렇듯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나를 아직까지도 따라다닌다.


행복이가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그 작디작은 초록빛 인식 칩은 그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분명 귀찮은 목줄의 부속품 하나뿐이겠지. 하지만 산책 나갈 생각에 신나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그 아이의 눈을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외부화시킨 것들은 언젠가 짐이 되기 마련이 아닐까.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들, 안고 가야 하는 것들, 들고 가야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짐이 될 것이고, 그 짐은 우리가 힘들어서 덜어내거나, 어딘가에 부닥쳐 닳지 않을까. 그 짐이 짐으로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처음부터 우리를 갈라 우리 안에 그것을 들여놓았어야 했을까. 우리의 일부로써 존재해야지만 영원히 함께일 수 있는 걸까.


나는, 너는, 우리는 이 작은 조각을 우리 안에 갈라 넣을 수 있을까.


나를 갈라
내 안에
너를 들여놓고 싶은데
그래서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지 보여주고 싶은데
치유 - 넬 (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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