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지털전사 Oct 02. 2023

기념주화로 보는 세상: 여의문-하늘에서 내린 축복

한가위 대보름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농부가 수확의 기쁨을 느끼며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잠시의 여유가 바로 추석이다. 가족과 함께 라면 비극도 희극으로 변하는 마법의 순간, 바로 축제의 시간이다. 


예전과 지금이나 우리가 원하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상들이 원하던 삶 또한 현대인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일상 통화가 아닌 고전 주화의 앞면 문양은 다양하지만 뒷면에는 대부분 일종의 부적과 같이  “壽福康寧 富貴多男(수복강녕 부귀다남)”라는 한자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편안해지며 부귀를 누리고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다. 요즘은 딸을 더 선호하는데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복의 형태도 변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온라인 경매를 지켜보다 50만 원으로 나왔던 매물이 220만 원까지 가격이 올라가 기억에 남는 주화가 있다. 앞면에는 서견(瑞犬)과 칠성(七星), 여의문(如意紋)이 새겨져 있다. 


꼬리가 말려 올라간 모습으로 유추해 볼 때 우리나라 토종개인 진돗개나 풍산개가 아닌가 싶다. 싸움을 꽤나 해본 녀석인지 얼굴에 칼자국(?)까지 보인다.^^ 개의 주둥이 쪽으로는 여의문이 보인다. 

여의 문양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천체와의 연결도 의미한다. 여의문 옆에 북두칠성이 새겨진 것도 아마 그런 뜻이지 않을까 싶다.


여의는 한자상으로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짐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일반적으로는 독경 또는 설법할 때 손에 가지는 도구를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여의는 도교의 삼청 중 하나인 상청영 보천존의 법기이고, 불교의 4대 보살 중 하나인 보현보살의 법기이기도 하다.


제천대성 손오공의 여의봉도 여의금환봉이 정식 명칭이다. 명나라의 '천황지도태청옥책'이라는 도교 문헌에 의하면 여의(如意)는 원래 먼 옛날 황제가 치우를 이기기 위해 만든 병기였는데, 후세의 사람들은 여의(如意)를 골(骨) 모양으로 바꾸어 손에 들고 악을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무기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니 모양이 현대의 너클(knuckles)이 연상된다. 너클이라면 황제가 주먹에 끼고 치우를 후려친 비밀 병기였을만도 싶겠다. 제 아무리 격투기 선수라도 한방에 쓰러뜨릴 무서운 병기가 평안함의 상징과 비슷해 보이는 세상이라니 참 무섭고 어지럽다.

산책하던 생면부지의 여성을 강간하기 위해 너클을 끼고 때렸다던 미친놈에게서 인간이 아닌 괴물을 본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체념하며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할 때 사람은 스스로를 가둔 채 유령이 되어간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말 한마디 걸어주지 않는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 유령을 만들고 결국 괴물이 된다.


관계에서 동떨어진 삶은 인간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이 따뜻한 인사 한마디, 따끈한 밥 한 그릇으로 바뀔 수 있는 손 내미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자살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 목숨까지도 우습게 알게 된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재산과 정보의 불균형이 20~30대 청년층에서 너무 편중이 심하고, 이 차이를 못 좁히면 우리는 더 많은 괴물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미 괴물의 탄생은 시작되었다.


나는 소망한다. 평안을 상징하는 여의문이 폭력을 상징하는 너클로 보이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임을 잊지 말자.


나는 사회적 영향력이 미천한 사람이기에 영향력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한가위의 대보름달을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힘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시작임을..

이전 02화 기념주화로 보는 세상: 공포는 희망 앞에서 별게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