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Walden)의 저자 핸리 소로는 숲 속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한 후 직접 통나무 집을 지어 2년간 살면서 직시한 자신의 철학을 써 내려간 수필집이다.
소로는 1840년대 중반 부양가족 없는 일반 노동자가 집을 사기 위해서는 대략 10~15년 정도의 인생을 저당 잡혀야만 한다고 한탄했다. 당시 집 값을 약 800달러로 어림 잡고 일반 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1달러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다. 근로 소득을 모두 저축한다면 2년이면 달성가능한 목표인데도 한숨을 지었던 그가 만약 현재 서울의 소득대비 집값을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얼마 전 우연히 텃밭을 자꾸 파헤치던 범인을 목격하였다. 너구리와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넉살 좋은 녀석은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다 다시 제 할 일만 열심히 한다. 참 열심히도 사는구나..
열심히 사는 너구리를 보며 게으른 나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인간은 의식주(衣食住)가 삶을 위한 필수재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자아실현처럼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메슬로우(Maslow)는 말한다. 하지만 비록 2년여의 짧은 기간이지만 숲 속에서 홀로 생활했던 소로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지 않았던가.
VIII. 베이즈 정리와 인생의 주사위 놀이
생리적 욕구 충족을 위한 노력이 실제 삶의 성공 가능성 여부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베이즈 정리는 사건 B가 발생했을 때 사건 A가 발생할 확률은 사건 B의 영향을 받아 변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공식이다. 즉 사건 B가 발생함으로써(사건 B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즉 사건 B의 확률 P(B)=1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사건 A의 확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표현한 정리다.
P(B∣A)=P(A)*P(A∣B) / P(B)
만약 기존 사건들의 확률(사전 확률)을 알고 있다면 어떤 사건 이후의 각 원인들의 조건부 확률을 알 수 있다. 확률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전제가 없는 가능성만을 의미하기에 확률의 상승 또한 그저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확률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추후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율이 적용된다. 일종의 업보나 카르마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노력이 원인이 되어 결과인 큰 성공의 발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베이즈 확률은 독립적이고 분할 가능한 집합에서만 성립하기에 수많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는 분야에는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삶의 방식에 작은 직관을 제공할 수 있다.
즉 노력으로 하나를 성취하면 다음에는 또 다른 일을 성취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우주를 꿈꾸었지만 나와 당신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항상 변화하고 쉼 없이 진화해 나가고 있다.
인생의 성공이란 돈과 건강, 사회적 명성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랑과 행복 등 수많은 복합 요소에 의해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바로 현재의 내가 지금 상황에서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성공한 셈이다. 신도 아니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도 아닌 지금 나의 생각에 성공이 결정된다.
앙상한 몸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꼈지만 부지런한 너구리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너구리일지도 모른다. 제 할 일을 마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녀석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