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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Nov 09. 2017

사람이 먼저인 행복한 무역인의 꿈

무역협회 수기 공모작

사업 문제로 머리가 복잡할 때, 사람들에게 치여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푸른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저 먼 바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다 하얀 거품으로 쓰러져 가는 파도의 대부분은 모래사장에 부딪혀 산산이 형체 없이 부서져 갑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방파제 위에 서있는 사람을 위협할 정도로 위협적인 크기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창업 이후 마주한 무역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연처럼 다가온 기회에 만족하다가 때로는 숨겨진 큰 손실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큰 파도가 닥치기 전에 안전한 방파제를 쌓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오늘도 평범한 대한민국 무역인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2009년 어느 날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기 때문일까요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없이 온실 속의 화초를 벗어나 찬바람이 몰아치는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용기는 어쩌면 무모함을 좋게 표현한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런 용기는 꼭 필요했습니다. 

 

자본도 없고 거래처도 없이 해외 무역을 시작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신규 해외 바이어 발굴과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하는 방법입니다. 

무역업을 하시는 선배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웠던 B2B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용법과 무역협회의 각종 정보는 가뭄에 단비와 같았습니다. 

 

당시 화장품은 한류와 함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품목이었고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문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현지에 지사나 혹은 중국어를 잘할 수 있는 협력자라도 없다면 계약 최종 성사 단계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번은 홍콩의 바이어를 통해 줄기세포 화장품을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존 브랜드 제품을 도매 수량으로 몇 차례 공급하면서 사업을 키워나갔지만 차츰 중국 본토에 직접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진출하고픈 욕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홍콩의 바이어가 마케팅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여 중국의 2성급 도시를 돌며 뷰티 숍 매지저들에 상품을 팔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하였습니다. 

현지의 유명 호텔을 임대하여 상품 설명회를 개최하고 초청한 미용 업계 원장님들에게 직접 팔아보자는 제안과 함께 사업 상세 계획서도 첨부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중국 대륙에 고가의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해 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욕심은 결국 화를 불러오게 되고 말았습니다. 

설명회 당일 성도시 민산 호텔 주위에 아침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불안한 마음을 들게 하였지만 참석할 분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 안내요원들과 발표 자료들을 점검하며 걱정을 잊고자 하였습니다. 첫 술부터 배부르지 못하리라 짐작은 했지만 결과는 대 참사였습니다. 

최소 300명 참석을 보장했던 대행업체의 장담과는 달리 참석 인원은 고작 3명에 불과했고 한국에서부터 긴 시간을 날아왔던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줄기세포 화장품이라는 특성상 한국의 전문 성형의사까지 함께 준비 해왔기에 멀리서 날아온 발표자 분들께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홍콩 바이어는 상호 부담키로 했던 비용에 대한 정산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전시회용으로 사전에 보냈었던 상품들마저 겨우 일부만을 반품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비록 많은 손해와 아픔이 있었지만 홍콩 바이어에게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돈은 잃을 수 있지만 사람까지 잃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뼈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중국 시장 직접 진출이 얼마나 어려운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값진 실패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넘어졌다고 해서 아파만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무역인입니다. 

중국 못지않은 거대한 잠재 시장인 동남아가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대부분의 국가가 아직 개발 도상국에 머무는 수준이기에 우리 한국인이 가진 장점으로 해외 진출을 우선 고려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못 산다고 여겨지는 동남아 국가 중에 자주 언급되는 국가에 필리핀이 있습니다. 

필리핀은 우리에게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헬조선의 미래는 필리핀이다”는 글도 본 것 같은데 사실 필리핀은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볼 나라가 절대 아닙니다. 

과거 60년대까지 아시아의 최고 부곡이었으며 개발되지 않은 막대한 지하자원과 천연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인구가 1억이 넘는 내수 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향후 잠재 성장률이 최고에 속하는 국가입니다.

단점으로는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된 특성상 물류비 문제로 유통의 어려움이 있으며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심할뿐더러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투자 정책으로 초기 시장 진출의 장애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필리핀 GDP는 약 3천 불로 우리의 약 10% 내외에 불과합니다만 매년 약 7% 내외의 고속 성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 양극화가 극심하여 고소득층 20%가 국민 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하위층 20%는 약 5% 정도의 소득만 보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민간 소비 비중이 GDP 대비 70%에 달할 정도로 소비 욕구가 왕성합니다. 한마디로 저축보다는 하루 벌어 하루 잘 먹자는 낙천적인 생각이 풍부한 국가입니다. 

 

무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필리핀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초창기 필리핀에 화장품을 공급하던 업체 중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업체가 있었습니다. 

대금을 제때 결재하지 못해 아쉬운 소리를 종종하던 업체였지만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신념으로 함께하는 동반자 관계로 거래를 진행하였습니다. 

필리핀에 새로운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거래처의 사장님이 새 정부의 고위 공무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기존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필리핀 식약처(FDA) 컨설팅까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진화된 수출입 통관 시스템을 현지에 도입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며 성사된다면 한국의 수출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순 무역을 넘어 동남아 해외 정부를 상대로 한 컨설팅 도전까지 가능하게 한 모든 기본은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동남아 시장은 소비 수준에 따라 고급 상품, 합리적 저가 제품으로 소비 구조가 나뉘어 있는데 소비재 수출을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사전에 자신의 상품을 판매할 타깃 고객을 정해야 할 필요성이 높은 시장입니다.

 제조업이 취약하 여대 부분의 생활 소비재 제품이 완제품 형태로 해외에서 수입되는 구조이지만 법적으로는 자국민만 소매 유통업 등록이 가능할 정도로 폐쇄적인 유통망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거래처 개척의 난도가 높지만 일단 유통망을 확보하게 되면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서 나름 꾸준한 소비자 충성도를 유지하기 쉬운 시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동남아 국민들은 특성상 부정적 표현을 잘 못하여 제품에 대한 좋은 평을 하더라도 향후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도 합니다.

 동남아에 위치한 소규모 업체들의 경우에는 비즈니스에 대한 개념적 이해나 유통망에 대한 고려도 없이 사업부터 먼저 시작하려고 하는 순진한 경우가 의외로 많아서 상담 시 수출업체가 오히려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도움을 주고 인간적 관계를 유지해 나가면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동남아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기 위한 한 가지 핵심 포인트는 매우 강력한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업 기회는 자신의 가족들만 참여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들에게 진정한 친구로 인정받는 다면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하면서 참여시켜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점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남이 기업인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기본적으로는 세계 어디든 성실한 응대와 인간적인 접근이 모든 사업의 기초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특히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회사를 운영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라 인간관계를 통한 친밀한 접근 방식이 주효합니다.

 

상거래 관행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따르는 북미식입니다

하지만 법은 훌륭한데 제도를 시행해야 할 공무원들이나 사회적 관습은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단언컨대 한국의 빠른 업무 처리에 익숙해진 분들에게 운이 없다면 지옥과 같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평소 혈압이 높은 분들이 현지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업무를 진행하시는도 중 곳곳에서 뒷목을 잡으실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다시 한번 고려해 보아야 하는 것도 동남아 시장입니다. 

예를 들면 필리핀 현지에 사업을 위해 구입한 콘도미니엄의 등기 처리가 일 년 가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서라면 당일 등기 처리가 되는 것이 상식일 텐데 필리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 사기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동남아 시장의 큰 특징이라는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답답할 때마다 심호흡을 크게 하시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지요.

 

동남아시아의 교통을 비롯한 사회 간접 자본의 미미함이 무역을 하는 우리에게는 큰 잠재적 기회를 제공합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을 받은 동남아시아인들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다면 우리 한국인에게 어떤 경쟁력이 있을까요? 

일면 게을러 보이고 낙천적인 그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동남아시아 각국은 문화적 특성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도 흥미롭습니다.

단적인 예로 필리핀과 베트남은 이웃 국가이면서도 문화와 관습이 무척 다릅니다.

 

2017년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25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의 베트남 투자도 꾸준히 전기 전자를 중심으로 증가했으며 2016년 상반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베트남의 3대 교역국으로까지 성장했습니다(수출 4위/수입 2위).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진출한 한국의 대기업들에 납품 가능한 산업용 자재는 유망하지만 소비재는 우리 수출 기업들이 만족할 만한 시장이 성숙하기에는 아직까지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합니다. 

필리핀과 비교해 베트남은 국민들이 돈을 잘 쓰지 않기에 소비재 수출로는 큰 성과를 보기 힘든 시장이라 생각됩니다. 일례로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은 서구 선진국에 뒤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설되어 있지만 찾는 고객이 없어 매장은 썰렁합니다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아직도 재래시장에서 싼 제품을 구매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이 양국 간의 평등사상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필리핀은 오랜 기간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 지배를 겪어서인지 과거 우리의 양반과 상민에 비견될 만큼 계층과 경제력 차이에 대한 차별이 상당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유교 사상이 강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평등사상도 매우 확고합니다. 

사장과 직원이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기본이라 권위 의식을 가지고 직원들을 대하다가는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 현지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본인이 직장을 자진해서 그만두면 그나마 낫지만 자칫 직원을 해고하게 되면 노사 갈등을 넘어서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유일한 나라인 베트남은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일방적 해고를 했다가는 직원의 남자(여자) 친구나 친척이 사무실로 찾아와 행패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업종에 따라 다를 수도 있어 객관적인 사실은 아닙니다만 의외로 실제로 주변 지인들에게서 많이 듣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지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어디든 반드시 조심해야 할 문제이지만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특히 금기시해야 할 사항입니다. 

옛 속담에 "원한은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지만 자존심이 강한 동남아시아인들은 원한을 잘 못 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동남아시아 시장은 기회의 땅임은 분명합니다

돈은 잃을 수 있어도 사람은 잃지 말자는 신념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계실 모든 대한민국의 무역인들에게 오늘도 파이팅을 힘차게 외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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