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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은 Jan 02. 2021

재취업, 밥벌이의 신성함

5년 전인 2016년, 10여 년간 다니던 신문사를 관두고 '무소속'이 된 후의 삶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평생 동안 익숙했던 생활은 아침이면 학교나 회사에 가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없는, 무질서의 연속이었다. 나의 내면은 충만과 결핍을 오가며 혼돈과 질문으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다시 소속이 생겼다. 하지만 출퇴근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일했다. 재택 혹은 프리랜서 근무를 하며 글을 써서 회사에 보냈다. 일과 중에 육아를, 밤이나 새벽엔 작업을 했다. 종종 밖으로 일하러 가야 할 땐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체력보다 정신력이 승리하는 시간들이었다. 3년 지나니 많진 않더라도 고정 수입이 생겼고, 의뢰받는 일의 종류와 양도 늘어났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가까스로 맞추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미국으로 떠났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들이닥쳤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겨우 균형을 맞췄다가 허물어버린 생활을 또다시 세팅해야 하는 시간. 감염병은 지루하게 이어졌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가 멈춘 듯했다. 삶을 재정돈하는 일도 함께 더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아예 처음으로 돌아간 고민이 시작됐다. 문득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재택 및 원격 근무가 더욱 활성화될 거라곤 하지만,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입장에서 그런 유연함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나이 마흔,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기회가 없는 게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2020년 12월, 결국 나는 재취업을 했다. 많은 엄마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으로 일을 그만두는 시기에 나는 거꾸로 출퇴근 근무를 시작했다. 기꺼이 아이들을 돌봐주시겠다 한 시어머님 덕분이었다. 1인분의 역할만으로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를 꿈꿨건만, 그 꿈은 아직 요원했다. 여성이 일을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여성의 가정 내 재생산 노동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현실은 여전했다.


겨울철 동트기 전부터 집을 나서는 일상이 시작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둘째 아이는 첫 주 내내 울었다. 첫째 아이는 학교 준비물을 빼먹곤 했다. 남편은 예전보다 긴 시간을 출퇴근에 써야 했고, 시어머님께서도 낯선 생활과 살림에 익숙해지셔야 했다. 나와 남편, 시어머님의 '3인 4각' 달리기가 무사히 안착하는 것이 최대 미션이었다. 바뀐 일상에 적응하기까지 우리에겐 몇 주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첫 월급을 받아 들고 '밥벌이의 신성함' 생각다. 첫 퇴사 후 내 이름으로 된 새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어 좌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 카드로 결제를 할 때마다, 정작 남편은 아무 말하지 않았음에도 자동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경제적 자립 없는 어른의 열패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주어진 모든 기회마다 닥치는 대로 일했던 시간들도 기억났다.


2021년, 과거엔 당연하고 익숙했지만 불과 몇 해만에 낯설어진 '노동자'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시작과 끝맺음이 없는 육아와 달리, 완결이란 게 존재하는 사회적 노동이 지금은 오히려 달콤하다. 일하러 나가는 발걸음이 언제까지 가벼울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기대와 걱정이 가득한 나의 새해, 그리고 지난 한 해 너무도 힘겨웠을 우리 모두의 새해에 평안이 깃들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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