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세인 딸아이는 꿈이 총 6개다. 가느다란 손가락 6개를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화가, 가수, 작가, 과학자, 외과 의사, 발명가라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고, 노래하는 것이 좋고, 글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과학자나 발명가가 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외과 의사가 되면 수술을 해서 아픈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이토록 스펙트럼이 넓은 아이의 꿈이 신기하고 기특하다. 나는 딸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이 중에서 꼭 되고 싶은 게 있는데 뭔지 알아?” 하고 되물었다. 아이는 “엄마처럼 작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 뭉클.
디즈니 <The brave>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메리다는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했어. 자기는 활도 쏘며 왕자처럼 살고 싶은데, 메리다 엄마는 공주라서 얌전하게만 살아서 그렇대. 나는 내 엄마처럼 살 건데.”
많은 여성의 서사인 “엄마처럼 살기 싫어”가 아마도 당연히 7세보다는 더 나이가 든 후에 만들어지는 것임을 짐작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순간 딸의 고백이 달콤하다. 삶의 원동력이 된다. 내가 더 잘 살아가야 함을 되새기게 한다.
재취업을 하자마자 몰아치는 일의 절대량과 무게감에 삶의 무게추가 일터로 많이 기울었다. 매일 새벽 자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출근하고 저녁에 늦게 퇴근해, 하루 한 끼 식사도 같이 못하는 평일의 일상이 이어지니 아이들과의 거리감이 물씬 느껴졌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없던 지난해와 달리, 주말의 소중함이 부쩍 크다. 그래서 주말마다 갓난아기 때처럼 하루 종일 아이들 곁에서 물고 빤다. 몇 달 사이 나 모르게 이렇게도 많이 자란 걸까. 불안함이 싹튼다.
아이는 이번 주는 설 연휴라 엄마랑 같이 있는 날이 많아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가 회사 안 가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딸에게 “아마 네가 중학생쯤 되면 엄마가 일하는 걸 좋아하게 될 걸” 하고 말해줬다. 아이는 얼마 전 일기에 “엄마는 내가 크면 엄마가 일하는 걸 좋아할 거라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라고 썼다.
사실 정말 그럴지, 자신은 없다. 딸이 자라 세상을 더 알게 됐을 때, 그때도 “엄마처럼 살 거야”, “엄마가 일해서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지금으로선 그게 나의 가장 큰 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