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셜트래블러 Oct 25. 2022

우선순위를 위한 노력

발달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기록하다.

 놀라운 사실이다.


 약 7년을 함께한 이용인이 매운 것을 잘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다리를 절었던 카이저 소제의 무릎이 펴지고, 부루스 윌리스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와 같은 마음이었다. 늘 매운 음식이 나올 때면 입 근처를 손으로 부채 부치며 물을 달라던 그가, 사실은 매운 것을 잘 먹거니와 심지어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장장 7년 동안이나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척 연기를 했다. 매운 음식이 나오면 얼음 동동 물을 옆에 놔주고, 맵지 않은 다른 음식을 더 주었는데.. 이럴 수가.. 대체 왜 그런 행동을 우리에게 했을까? 




 예전 사회복지사 초년생이었을 때 내 담당 슈퍼바이저는 후배들에게 행정을 거의 시키지 않았다. 장애인과 어울려 함께 지내며 혹시 모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어,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친구, 형 혹은 동생처럼 관계를 먼저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많은 양의 행정들은 늘 18시가 되어 이용인들이 집으로 귀가해서야 우리에게 숙제처럼 다가왔다. 당시 개성이 강한 이용인 분들이 많았는데, 꼬박 하루를 긴장한 채로 지내다 행정을 시작하려 의자에 앉으면 몸의 피로가 몰려와 야근 시간이 길어지곤 했다. 늘 16시가 되면 허기가 지고 배가 고프기도 했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몸이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도 그때처럼 지금도 많은 시설 사회복지사들이 지금도 그러하리라.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사회복지시설의 행정이다. 정부의 보조금과 사람들의 애정이 담긴 후원금이 주 재원이기에 투명한 운영을 위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사회복지시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혹자는 행정을 말끔하게 작성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을 대표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 역시 행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전문성과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줄여도 될 만한 행정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행정과 비슷하지만 결이 매우 다른 기록이라는 행정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잠시 미뤄두자. 여하튼 다수의 사회복지사들이 공감하듯 현장은 행정에게 우선순위를 밀린 지 오래다. (물론 가치를 지키며 열심히 애쓰는 센터들도 많다.)  그리고 사실 알고 있다. 필요하지 않은 서류는 사실상 없다.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는 항상 존재한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행정이 생겨났으리라. 그럼에도 필요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 그러니 행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처 : Pixbay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주간보호에서 최소 하루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2개 이상이다. 프로그램마다 일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사진과 있었던 일, 이용인들의 반응 등을 대체적으로 적는다. 아마 동료 한 명당 업무를 분담하니 일주일에 3~4개 정도 프로그램 일지를 작성할 것이다. 사실 별 것 아니다. 밀리지만 않는 다면 그리 많은 양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별 것 아닌 행정들이 하나 둘 더 해지다 보면 결국 장애인 당사자들과 관계하기보다 컴퓨터를 애정 하게 된다. 전 직장에서는 사회복지사마다 주간 계획서를 매주 작성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할 업무가 무엇이 있는지 작성해서 결제를 받는 행정이다. 이미 단위 사업 계획 내에 매달 해야 하는 업무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가독성이 떨어지기에 한편으로는 한주의 일정과 계획을 정리해 일정대로 진행하는 것은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행정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종이의 가로를 반을 나워 한쪽은 금 주 계획을 적고 나머지 반은 지난주 진행한 일을 적는다. 또한 하단부에는 지난주 실적을 기록한다. 이렇게 폼을 만들어 놓으면 마치 대단히 있어 보이는 서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서류는 사회복지사에게 옥쇄가 되어 갈굼의 도구로 사용되기 쉽다. 특히 실적에 대해 쉽게 비교와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계획을 한 칸에 쓰도록 만들어진 기본 폼을 변경하여 종종 두 칸으로 만들기도 한다. 기존의 칸이 두배로 늘어난 사회복지사는 칸을 비워서 제출하기 어렵기에 무리하게 일정을 넣기도 한다. 이런 무리한 일정이 다음 주에 혼나는 빌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별 것 아닌 계획서지만 작성하는 시간 또한 상당히 많은 시간이 투여된다. 적게는 30분 또는 그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런 작은 행정들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행정중심의 현장이 되어버린다.


 감히 이야기하자면 행정의 비율을 줄였으면 좋겠다.


 사회복지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고 우리는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행정과 현장 두 가지 모두 다 잘할 수 있지만, 사람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행정중심의 현장은 사회복지사에게 번아웃을 선물하는 일등공신이다. 그렇기에 사회복지의 가치에 맞는 일의 우선순위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상기하자면 이유와 필요가 없는 행정 서류는 없다.


  그렇기에 '선배'들이 우선순위와 가치 중심에 맞추어 행정 업무를 과감히 간소화하는데 앞장서 주어야 한다. 그래야 바뀔 수 있다. 


 이렇게 주간보호가 이용인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이용인이 사회복지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도 매워서 못 먹는 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나기 힘든 당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