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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 폴~~~~스터 선생님

강력한 첫인상

by 팬지

9월 첫째주부터 범수는 새로운 치료센터에서 언어치료와 하일패다고긱이라는 수업을 시작했다. 당최 하일패다고긱이 무엇이냐, 뭐 설명을 들어도 독일어로 들으니까 확실히 감이 안 잡혀서 챗지피티한테 또 물어봤더니 이렇게 알려줬다.


Heilpädagogik이란?

직역하면 “치유적 교육학”

발달이 늦거나, 학습·언어·운동·사회성 등에서 어려움이 있는 아동에게 맞춤형 교육·놀이·훈련을 제공

일반 유치원/학교 교육과 다르게, **치료(therapeutisch)와 교육(pädagogisch)**이 결합된 접근법

놀이, 미술, 음악, 운동 활동 등을 활용해서 아이가 사회성·자존감·인지 발달을 할 수 있도록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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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으로 풀면

“특수치료 교육”

“발달 지원 교육”

“치료적 아동 발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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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언어가 늦은 아이 → 놀이 속에서 말할 기회를 늘려줌

사회성이 약한 아이 → 역할 놀이·그룹 활동을 통해 관계 기술 배우게 함

감각/운동 발달이 필요한 아이 → 맞춤 운동 프로그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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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아이의 개별 발달 필요에 맞춘 “맞춤형 교육+치료 프로그램”**이라고 보시면 돼요.


아,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간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아침 8시에 하일패다고긱 치료사인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이미 예약이 잡혀 있었음에도 방학이 끝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그날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여느 금요일과 마찬가지로 등원 준비로 분주했다. 현관에서 범수가 신발을 신고 있었을 때 우리집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프라우 폴스터예요"라는 목소리에 완전히 당황했지만 범수에게 최대한 침착하게 "범수야, 오늘부터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 오신댔잖아. 유치원 아직 안 가. 얼른 신발 벗어."라며 마치 모든 게 장난이었다는 듯 얘기했다. 그때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에는 범수의 최애 장난감 쿠겔반(구슬 굴리는 트랙 장난감)을 들고서 나타났다. 범수는 입꼬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럼서 나에게 속삭이며 "쿠겔반"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체없이 "응, 들어가서 선생님이랑 쿠겔반 하고 놀아." 범수는 냅다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아침을 먹지 않은 범수를 위해 나는 전전날 구운 바나나 케이크를 달랑 놓고 나오려는데 범수가 쿠겔반 가져온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먹으려고 했다. 가족끼리도 이제 막 뭔가를 나누기 시작한 범수에게서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첫 수업이 끝나고 유치원에 가는 길에도 계속 폴스터 선생님 얘기를 하면서 이제 월화수목금토일의 개념을 익힌 범수는 이렇게 말했다.

"금요일에는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 와서 수업하는 거야."

유치원에 가서 유치원 선생님한테도

"프라우 폴~~스터, 프라우 폴~~스터"

이렇게 말해서 난 오늘 하일패다고긱 선생님이 처음 오셨다고 설명을 해야 했다.

이렇게 범수 마음에 쏙 든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이지만 나에겐 곤란한 부분이 있다. 바로 영어를 못하신다는 점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가실 때 화요일에 나랑 둘만 상담을 하자고 또 약속을 잡고 가셨다. 나는 화요일에도 또 약속을 까맣게 잊었고 그날도 프라우 폴스터 선생님의 습격(?)을 당했다. 아무래도 일에 치이다 보니 아니, 이제 나이가 들어 자꾸 잊어버린다. 그냥 뇌가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다. 그러면 부지런이라도 해서 기록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것도 연초에 비하면 너무 게을러졌다.

어쨌든 습격을 당한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독일어 면담을 하게 되었다. 범수에 대해 할말은 많은데 그에 대한 독일어 표현을 몰라 너무 답답했다. 번역기를 두 번 정도 사용했지만 그 외에는 더듬더듬 하고픈 말을 전달했다. 말하면서 아직도 이만치 높은 언어 장벽을 느꼈지만 그래도 이제 천천히 친절히 말씀해주시는 선생님의 말을 8-90%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단계는 더 오른 거라고, 전에는 이해를 못할까 봐 말을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두려움은 없어졌다고, 이제 남은 건 좀 더 자유롭게 독일어를 구사하는 거라고, 그 길이 또 구만 리가 넘겠지만 지금 온 만큼만 더 가면, 아니 그보다는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폴스터 선생님과 수업을 하면서 이래저래 범수에게도 나에게도 1년 동안 큰 배움과 성장이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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