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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된 치료들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지구 반 바퀴쯤을 돌기 위한 무거운 발걸음

by 팬지

7월 초에 어머님의 장례식 때 한국으로 가지 못해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그 마음으로 대충 거주 허가증 문제가 해결될 법한 날짜로, 비행기값을 감당할 수 있는 날짜로 한국 일정을 잡았다. 바로 9월 24일에 프랑크푸르트발 울란바토르 경유 인천행 여정이었다. 지난번 13시간 비행 중 3시간만 잤던 둘째 때문에 출발 몇 주 전부터 공포심이 들었지만 막상 닥치니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짐싸는 건 어느 때보다 순조로웠다. 출발 전날 큰 아이가 열이 나서 유치원에서 일찍 하원하는 이변이 발생했지만 여러 모로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우리는 제시간에 일을 마쳤고 제시간에 짐을 쌌고 제시간에 집 정리를 마쳤다. 냉장고속 음식들을 해결했고 쓰레기를 비우고 물고기 자동 피더를 잘아 테스트해 보고 장난감방도 정리했다. 새벽에 일찍 나가 7시 반 기차를 타야 해서 이 모든 걸 끝내고 일찍 잠들었다.

5시 반에 알람소리를 듣고 깼고 아이들도 같이 깼다. 열심히 준비를 하니 6시 10분쯤에 집을 나섰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에게 동선을 공유해줬기에 아이들은 별로 거부감없이 우리를 따라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에 도착해 ICE 기차, 즉 고속 열차를 기다렸고 미리 예약해둔 가족 좌석에서 아이들은 클레이 놀이를 즐기면서 2시간을 크게 지겹지 않게 여행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손이 없고 괜히 짐이 될 것 같아 유모차를 챙기지 않았는데 조금은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둘째 아이가 피곤해서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고 별로 걷고 싶어하질 않았다. 자기도 힘들었겠지... 카트에 캐리어를 실을려고 했는데 2유로가 들었다. 찾아서 캐리어를 실으면 여기서부터 카트 반입이 안 된다는 표시를 만났다. 터미널이 멀어서 공항 내 열차도 탑승해야 했는데 카트를 탈 수 없었다. 열차에 둘째를 앉히고 가만히 있으라고 백번은 말한 것 같다. 드디어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또 카트가 보이길래 너무 힘들어서 2유로를 결제했건만 바로 앞이 출국심사장이었다. 그냥 4유로를 냅다 날렸다. 출국장 앞에서 한참 둘째 녀석을 저지하면서 기다리는데 직원분이 가족 단위라 빠른 줄로 안내를 해 주셨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출국 심사며 보안 검색대도 무사히 통과하고 게이트 앞 놀이터에서 한참 놀고 영상도 좀 보고 새콤달콤도 먹고 좀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비행기 탄 거보다 비행기 타기까지가 더 힘들었다.

아무래도 둘째 녀석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낮잠은 도통 자질 않아서 아주 피곤했던 모양이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골아떨어졌다. 문제는 낮잠 그 뒤였는데... 일단 첫 비행은 8시간 정도였고 낮잠을 두 시간 내리 잤다. 남은 여섯시간이 믄제였다. 처음엔 가져온 클레이와 자동차 장난감들이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도 30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행기의 좌석이 3-3-3이었는데 우리는 넷이어서 한 명이 떨어져 앉아야 했다. 남편이 먼저 배려를 해줘서 나는 혼자 앉아서 쉬었는데 안타깝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쉬어서 그런지 좀 에너지가 생겨서 범진이가 깼을 무렵엔 좀 기운이 났다. 좀 고군분투하는 중에 기내식이 나왔다. 신랑 혼자 애 둘은 못 먹일 것 같아서 내 옆자리가 비어서 범진이를 데려왔다. 그 빈 옆자리 옆에는 몽골 여성이 타고 있었는데 범진이랑 인사도 해주고 자기거 한국어를 좀 배웠다며 한국말로 인사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하지만 작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8시간 비행을 마쳤고 우리는 울란바토르에서 3시간을 대기했다. 울란바토르 공항의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노는 데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이때까지는 없는 줄 알았다. 우리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가져온 자석 장난감을 한참 갖고 놀았다. 중간에 범수가 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찾아보니 라멘집에 소고기볶음 덮밥이 있어서 사서 먹였다.

이래저래 애들 수발을 들다보니 어느 새 한국행 뱅기 탑승 준비가 되었다. 이 비행기는 대략 3-4시간이라 그리고 다들 피곤했어서 그냥 대부분 기절해서 온 것 같다. 도착해서 애들 티니핑 음료를 사주고 조금 앉아 있다가 큰누나가 보내준 택시를 타고 시댁으로 향했다. 2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어머님, 아버님이 없는 시댁에 들어서니 처음엔 뭔가 휑한 느낌이 들었지만 난 이내 곧 익숙해졌던 것 같다. 아직 어머님, 아버님 물건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조금만 더 우리를 기다려주실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손주들을 못 보여드려 좀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어머님, 아버님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도 방문할 테고 이 집에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할 텐데, 아이들과 함께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범수는 독일에서 이제 막 전반적인 치료 계획이 잡히고 학교에서도 독일어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한국에서 더 다양하고 도움이 되는 경험을 안고 갈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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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