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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환경에서 단일어 환경으로의 여행 - 1

유아기 자폐증 아이와 그 엄마가 겪은 값진 경험들

by 팬지

우리 가족은 이번에 한국에 3주를 머물렀다. 그 사이엔 추석도 있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내 친구들을 만나러 좀 먼 여정을 떠났다. 이 글에선 그 경험들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려 한다.

일단 우린 아산에 머물면서 낮에는 놀이터를 다녔다. 어느 날 온양온천 놀이터에서 범수 또래 아이를 만났다. 딱 봐도 여기저기 잘 말 붙일 것 같은 그 아이는 범수에게 말을 붙였다.

"너 몇 살이야?"

"난 다섯 살이야, 다섯 살이야, 다섯 살이야."

범수는 좀 긴장을 한 건지 평소보다 더 말을 반복했다. 당연히 이상하게 느꼈을 것 같다. 참 신기했던 점은 범수의 반응보다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인데, 독일에서는 잘 알 수 없던 아이의 미묘한 감정이나 뉘앙스까지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이게 바로 모국어, 고국의 힘인가 싶었다. 그 아이는 약간 주춤하더니 범수랑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탔다.

처음에 나는 기뻤다. 범수가 그래도 한국에서는 아이들과 더 소통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그 아이의 또래 친구가 등장했다. 뭔가 큰 장난감을 들고 왔는데 그 아이는 친구를 반기면서 키득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확히 듣진 못했지만 범수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러자 좀 있다가 멀리 있는 범수한테 "야!" 이렇게 부른 후에 낄낄대고 범수가 신이 나서 그 친구들한테 뛰어가니까 막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갔다. 그러다 우리가 가려고 하니까 "야, 쟤 간다." 이런 말도 했다. 아, 이게 바로 범수의 현실이구나 싶었다.

내가 "근데 너네 왜 웃는 거니?" 하고 물어봤다면 더 좋았을까? 처음 대면하는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독일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난 더 대처를 못하겠지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을 테니 말이다.

돌아와서 미국인 친구 집에 방문했는데 나보다 독일어를 훨씬 잘하는 그 친구도 놀이터에서 누가 자기 아이를 괴롭히면 할 수 있는 말이 "하지 마, 이건 좋지 않아." 정도가 다라고 하니, 그 친구는 이런 걸 겪지 않는 줄 알았는데... 언어적으로는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참 위로가 되었다.

어쨌든 한국에서 그 놀이터 사건은 쓰라리긴 했지만 정말 필요한 경험이었다. 경상도에서 겪은 일들은 다음 글에서 끄적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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