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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환경에서 단일어 환경으로의 여행 - 2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아이는 변한다

by 팬지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어머님, 아버님이 떠나시고 큰시누는 명절마다 당분간 차례를 지내겠다고 했다. 거기에 이번에는 우리도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이 준비하고 싶었지만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거절을 당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아이가 둘이니까 괜히 도와준다고 애들 데리고 가면 더 일이 진행 안 되고 스트레스 환경에 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난 날로 먹은 차례상에 우리 애들은 큰고모가 사준 멋들어진 한복까지 입고 용돈까지 두둑히 챙긴 추석 오전 시간을 보낸 후 납골당에 들러 또 인사를 드리고, 드디어 보고픈 내 친구 집을 향해 구미로 달려갔다. 렌트카를 끌고 말이다.

애 둘 데리고 도저히 기차는 못 타겠고 명절 연휴라 표도 없었을 것 같다. 마침 큰고모가 렌트까지 해주셔서 비용 이중으로 들이지 말고 여행을 떠나 보았다. 덕분에 우리는 연휴의 교통정체를 몸소 체험했다. 물론 연휴가 길어 내내 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구미까지 2시간이면 가는데 3~4시간은 걸린 것 같다.

우여곡절 도착한 친구 집은 고층 아파트였다. 독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3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그중에서도 친구는 26층에 살고 있었다. 범수는 엘리베이터에서 그게 참 신기한지 31층까지 있다며 기쁜 미소를 띄웠다. 26층 친구 집에 도착해서 창문 밖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또한 매우 생경했다. 친구에게는 범수 또래의 딸이 하나 있다. 그 딸래미는 쑥스러웠는지 하루는 계속 엄마 뒤에 숨거나 혼자 무언가를 하며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범수랑 범진이랑 손도 잡고 다니고 뛰면서 놀기도 했다. 아산에서와는 달리 친구 딸이라 그런지 조금 더 교류도 하고 친구랑도 여러 가지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마음이 참 많이 놓였다.

우리는 그렇게 2박을 하고 또 나의 고향 울산으로 향했다. 울산에서 만난 이모들(내 친구들)은 또 신박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아이고 범수랑 범진이 왔나?" 하면서 높은 목소리로 격한 환영의 인사를 해주었다. 거기에 홀랑 넘어간 애들은 이모들 말을 참 잘 들었다. 이쪽으로 가자 그럼 그쪽으로 가고 이거 하자 그럼 그거 하고 참 생소한 우리 애들의 모습... 내가 여기서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우리 애들도 정말 마음 편하게 잘 놀고 이모들 말도 잘 들었다.

나는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범수가 이런 분위기에 있으면 전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구나 싶으면서 정말 만에 하나 한국에 오게 된다면 울산으로 와야겠다 싶었다. 대학교를 타지로 가면서 한 번도 울산에 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였다. 아이들은 이렇게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뭐 그냥 지금은 내 삶의 전부인 거겠지? 좀 커 가면서 우리는 점점 분리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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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