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이꺼 그냥 대~~~충
나는 사실 생일이 참으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 존재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방증인 것일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생일을 축하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으로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먼 타국에서 엄마로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그것과는 괘가 달라도 너무 다른 그야말로 내 사회성 능력의 한계에 자꾸만 부딪치는 일인 것 같다. 요즘 이것이 큰 고민이긴 하지만 어쨌든 결론은 자연스럽게 내 생일 축하를 해줄 사람은 남편과 아이들이 다다. 물론 여기에도 간혹 만나는 가족 단위 친구가 있긴 하지만 내 생일 축하까지 바라기에는 부담이 된다. 내가 내 생일 축하를 바라면 나도 그들의 생일을 살뜰히 챙겨야 말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생일이라는 것이 가족 내에서만 챙겨도 벌써 넷 아닌가? 일상 생활하는 데 이미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뻑쩍지근하게 하는 생일 축하가 무슨 득이 될까?
그럼에도 생일은 중요한 날이다. 내가 태어난 것을,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하는 날이니까.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라도 이 세상에서의 내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존재함에 감사함을 느껴보는 중요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가족들과 벗어나서 온전히 나로서 친구와 수다라도 떨어보고 싶어서 약속 시간을 잡았다. 오랜 시간 친밀감을 쌓아온 미국인 친구와 식사를 할까 하다가 그래도 모국어로 떠들어제끼는 것이 제맛 아니겠나 싶어 한국인 친구를 점심에 초대했다. 간만에 외식도 했다. 커피에 맛있는 피스타치오 치츠 케익도 곁들여 먹었다. 이후에 대출상담사와 약속이 잡혀 있어서 아쉽게 3시간 남짓한 시간만 수다를 떨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엄마지만 엄마로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나로서 내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도 너무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생일 당일은 토요일이라, 목요일에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 당일 토요일이 되었다. 매달 찾아오는 친구가 하필이면 내 생일에 찾아와 위장에 또 가스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전날부터 잘 먹지도 못해 기운도 없었는데, 남편이 아침 일찍부터 애들이랑 놀아주며 내가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둘째를 데리고 놀이터에도 가고, 점심도 차려 주었다. 남편이 미역국 먹고 싶냐고 물어봐서 내가 그저 부드러운 계란찜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계란찜, 감자국(독일에서는 감자국이 최고), 생선구이를 점심으로 차려줬다. 흰쌀밥에 계란찜 비벼서 꼭꼭 씹어 삼키니 속이 좀 편해지면서 기운도 났다. 최고의 생일상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는 내가 만들어놓은 바나나빵에 초를 꽂고 애들이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줬다. 아니, 사실 부르라고 시켰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는데, 뭔가를 강요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그저 아이에게는 모두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엄마에게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는 것도 선물로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볼 참이다.
그래서 올해 생일에 난 아이들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
"범수야, 엄마 생일 선물로 그림 그려줘."
"범진아, 엄마 생일 선물로 뽀뽀해줘."
범수한테 한 요청은 어려울 거라 예상했는데, 그래도 받아냈다. 너무 기특하다.
나이까지 아주 딱 적어주고, 눈은 반짝반짝하게 머리색깔도 곱게 무지개빛으로 그려줬다. 범수는 요즘 넘버블록스라는 만화에 빠져 있는데, 나를 그 만화 캐릭터의 "7"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행운이야."라고 말해줬다. 행운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한 말인진 모르겠지만 그 말 자체가 너무 감동이었다. 올해 생일은 반짝거리는 선물도,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의 여행이나 외출도 없이, 그냥 집에서 보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