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새로운 동네 탐색을 곁들인
독일 유치원 여름방학은 참으로 길다. 거의 8월 한 달을 쉰다. 사실상 3주이긴 하지만 주말까지 다 빼면 한 5일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어떻게 알차고도 저렴하게 보낼 수 있을까? 이번엔 범진이 타게스무터도 2주나 휴식을 취하신다고 하니 어차피 집중해서 일하긴 글렀다. 그러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지금 2주씩 놀 수는 없으니까 저렴하게 캠핑이나 가 보자고 생각했다. 시간도 많으니 다른 지역으로 한번 가볼까 하다가 집 가격이 저렴한 켐니츠 주변으로 캠핑장을 알아봤는데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 있었다. 작년에 범진이 한 살일 때도 3박 4일은 했으니까 이번엔 5박 6일에 도전했다.
그런데 올여름은 참으로 덥지가 않았다. 더운 날보다는 서늘한 날이 많았다. 캠핑 갈 때는 좀 더워줘야 물놀이도 하고 할 텐데... 출발 이틀 전에 날씨를 보니 도착하는 날과 그다음 날만 반짝 더울 듯했다. 미리 둘러보고 싶은 집 두 군데를 발견해서 부동산에 집 방문 날짜도 잡아뒀다. 미리미리 계약하고 예약해 둔 덕분에, 그리고 아이들이 좀 더 큰 덕분에 계획대로 알차게 5박 6일을 보냈다.
첫날과 다음날은 물놀이를 좀 즐기다가 또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어서 거기서 좀 놀다가 캠핑장에서 좀 느긋한 시간을 보냈고 1885년 된 싼 가격에 나온 고택도 구경했다. 생각보다 내부가 깔끔하고 넓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슈퍼마켓은 한 블록 밑에 유치원은 걸어서 10분 놀이터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어 인프라가 훌륭했다. 켐니츠 시내까지는 차로 30분 가야 했지만 범수가 특수교육이 필요해 가야 할 때 못 갈 거리는 아니었다.
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내비를 잘못 찍어 잘못된 길로 갔는데 거기 Greifenstein이라는 곳에 있는 멋진 숲 놀이터도 발견했다. 범수는 급기야 그다음 날에도 거길 가자고 했다. 주차비가 1유로 들긴 했지만 캠핑장과 멀지 않고 화장실도 바로 앞에 있어서 머물기 편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주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캠핑장에서 아론이라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범수는 유치원 친구들이랑도 잘 못 지내는 아이인데 이상하게 그 친구는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아론~, 아론~'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아론은 매번 우리 텐트에 놀러 와서 클레이 놀이와 의사 놀이를 했는데 그 친구도 얌전하기보다는 좀 과격했다. 우리가 가져온 돼지 인형 발을 자르면서 이 돼지는 죽어서 돼지고기가 되었다고 그러면서 놀았다. 사실이긴 하나 뭔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에 감명을 받은 범수는 곧바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건가...? 노는 거니까 저지하면 안 되겠지? 잠시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 두 친구는 그저 해맑게 의사 놀이 같은 의사 놀이 아닌 어떻게 보면 도축업자 놀이를 했다.
정말 희한했다. 갑자기 범수가 각성을 한 건지 그 친구가 영향을 준 건지,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교류하지 않던 범수가 드디어 누군가와 노는 모습을 난 목격 했다. 너무 기뻤다. 게다가 아론의 엄마는 매우 친절했다. 한 번은 와서 이 동내 분위기라든지 이것저것 알려줬다. 너무 고마웠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이렇게 친절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두 번째 본 집은 더 마음에 들었다. 켐니츠랑도 많이 가까이에 있었고, 조금 집이 언덕인 점, 화장실이 하나라는 점, 단열이 안 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볕도 잘 들고 일단 집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언덕자락에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집이 참 아늑했고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항상 집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구매할 집이라서 집 분위기는 내가 만들기 나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든 그곳의 분위기, 스몰톡하는 사람들의 친절함, 구경 간 집 두 곳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있는 동안 내내 편안함을 느꼈는지 5박 6일 후 돌아왔을 때 이 동네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범수에게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그저 이 시기에 올 변화였는지, 온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있다가 놔서 그런지, 여기서도 몇몇 친구들과는 놀아보려 노력하는 듯했다. 정말 말 그대로 아주 알찬 방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