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도 다른 꿈
2016년에 크게 화제가 된 몇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입니다. 그중 AR(Augmented Reality)은 7월 6일 미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 한해서만 오픈된 '포켓몬고(Pokemon go)라는 게임을 통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지도 사용의 문제로 인해 올해 1월 24일에서야 정식 오픈했지만 최초 오픈 당시 강원도, 속초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는 서비스 이용이 가능했고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해당 지역으로 몰리며 의도치 않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적지 않은 분들이 VR과 AR을 혼동하고 계시는데요. 잠시 VR과 AR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까요? VR은 'Virtual Reality(가상현실)'의 약자로 특수한 기기를 사용하여 인간의 시각, 청각 등 감각을 통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내부에서 가능한 것을 현실인 것처럼 유사 체험하게 하는 유저 인터페이스 기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AR은 'Augmented Reality(증강현실)'의 약자로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즉 VR은 나를 현실과 완전히 단절시킨 뒤 특수 기기를 통해 다른 세계를 보여주지만, AR은 내가 있는 현실 위에 가상의 이미지를 입혀 보여줍니다. VR을 이용하면 방구석에 콕 박혀있으면서도 캐나다의 설경과 파리의 야경을 볼 수가 있고 AR을 통해 우리는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거나(?) 인터넷으로 가구를 주문하기 전에 미리 집을 꾸며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요즘 이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을 활용한 홍바오 마케팅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홍바오(红包)는 우리나라의 세뱃돈, 축의금, 상여금 등을 통칭하는 용어로 춘절(春节) 기간에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홍바오를 오프라인 영역에서 모바일(온라인) 영역으로 끌어온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위챗입니다. 모바일 메신저, SNS의 강점을 살려 전자 홍바오를 탄생시켰고 2014년에는 처음으로 홍바오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첫 이벤트에만 무려 800만 명의 유저가 참여했고 4,000개가 넘는 홍바오가 발송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한 사람당 평균적으로 4-5개의 홍바오를 얻은 셈이죠. 2015년부터는 알리페이도 본격적인 이벤트를 기획, 진행합니다. 이렇게 3년의 시간을 지나 춘절에 알리페이나 위챗을 통해 홍바오를 주고받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습니다.
그런데 12월 28일 진행된《2017 위챗 오픈 클래스 프로 컨퍼런스(2017微信公开课PRO)》에서 위챗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인 장샤오롱(张小龙)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위챗은
2017년 춘절 홍바오 대전에 참여하지 않는다.
올해 춘절(春季) 기간에 홍바오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겠다 선언한 겁니다. 안 할 수도 있지 웬 소란이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홍바오 거래는 위챗에겐 꽤 중요한 영역 중 하나입니다. 위챗 페이의 특성상 대부분의 거래는 소액 결제인데 그중 홍바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텐센트 마화텅 회장은 위챗 페이 사업부 회의에서 2016년 위챗 페이의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이 알리페이를 추월해 1위를 차지했다고 언급하며, 이를 기념하는 동시에 직원 상여금으로 1억 위안(약 172억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아직 공식적인 통계 자료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화텅 회장의 직접 언급과 상여금 지급 결정으로 중국 업계는 떠들썩하다. 더불어 예상된 일이라는 해석도 있다. 위챗은 소액 결제에 있어서 알리페이보다 사용 빈도가 높고, 알리바바의 소셜 네트워크 기능은 위챗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 출처 : ‘위챗 페이’ 오프라인 결제 규모 ‘알리페이’ 추월 … 텐센트, 직원 상여금 172억 원 지급 (플래텀)
위챗은 2014년부터 부지런히 알리페이의 뒤를 추격하고 있었고, 공식 발표된 것은 아니나 위챗 내부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하며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 알리페이를 뛰어넘은 게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만약 선두가 바뀐 이때 대대적인 홍바오 마케팅을 진행한다면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걸 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대신 90后(90년 이후 출생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QQ가 홍바오 싸움에 뛰어들었습니다. 알리페이와 QQ 가 진행하는 이벤트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둘 다 기존의 전자 홍바오에 AR 기능을 접목한 AR 홍바오를 활용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알리페이는 AR 홍바오 외에도 오복(五福) 이벤트를 진행하며 작년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죠. 알리페이의 오복 홍바오 이벤트에는 총 1.68억 명이 참여하였으며 2억 원 규모의 홍바오가 추첨을 통해 나눠졌습니다. QQ 이벤트엔 자그마치 3.42억 명의 사용자가 몰렸는데 이 중 90년 이후 출생자 비율이 전체의 68%를 넘어서며 90后 사이에서의 대세는 위챗이 아닌 QQ라는 것을 보란 듯이 입증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위챗은 올해 춘절 기간에 홍바오 마케팅을 전혀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2월 27일 당일에만 총 142억 개의 홍바오가 사람들 사이를 오고 가며 동년 대비 75.7%의 성장을 보였다는 겁니다. 홍바오 이벤트 진행 여부는 더 이상 텐센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홍바오는 축하, 감사, 격려를 담고 있는 '돈'이기에 숨기고 찾는 재미보다 '사람 사이의 소통'이 우선하는 까닭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AR 홍바오의 등장이 단순한 오락성 이벤트가 아니라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의 AR 기술 도입을 위한 준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크게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그들이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들이 지금 당장 AR 홍바오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LBS + AR + 8억 유저의 만남,
QQ의 새 시대가 온다.
텐센트는 대중의 예상과는 다르게 위챗이 아닌 QQ를 AR 시장의 선두주자로 택했습니다. 왜일까요? 위챗의 COO인 장샤오롱(张小龙)은 줄곧 "위챗(Wechat)은 도구일 뿐이다."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는 위챗은 이미 도구로의 역할을 잘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불필요한 운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1월 9일 정식 오픈한 샤오청쉬(小程序)도 사용자에게 최대 효율과 최대 편의를 제공하고자 하는 도구 역할에 충실한 서비스 중 하나죠. 위챗이 도구라는 기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AR 서비스는 위챗에겐 불필요한 운영에 속합니다. 물론 위챗을 통해 AR 서비스를 제공하면 서비스가 매우 빠른 속도로 활성화될 겁니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90后가 아니라 70后,80后이며 위챗 친구 간의 거리가 QQ보다 가깝기 때문이죠. 그러나 위챗과 QQ 의 유저들이 각자의 기존 플랫폼에 귀속되며 QQ의 성장은 현저히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몸집이 훨씬 커져버린 QQ의 아들뻘 위챗을 통해 사람들은 이미 전자 홍바오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텐센트는 위챗보다 개방적이고 새로운 서비스의 흡수가 빠른 QQ 사용자들에게 AR 홍바오라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앱 사용자 범위의 확장, 앱 사용률의 증가뿐만 아니라 QQ 지갑(QQ 钱包)의 결제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결제 시장에서 몇 퍼센트 점유도 못하고 있는 주제에 뭘 하긴 할 수 있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경기도 오산... 아 아닙니다. QQ의 힘은 지금이 아닌 주 소비자층의 전환에 의한 잠재력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현재 QQ 유저들이 주 소비자층으로 전환되는 때에 위챗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QQ에 남아있게 되는 경우 QQ 지갑(QQ 钱包)의 위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AR로 기존의 위챗이 품지 못했던 90后 사용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홍바오와 할인 쿠폰 사용자들에게 '오프라인에서 QQ를 통해서도 결제할 수 있다'라는 인식만 제대로 심어준다면 훗날 텐센트가 알리바바보다 더 막강한 결제 생태계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리페이,
오프라인 시장의 왕자 자리를 다시 노리다.
알리페이의 최대 약점은 사용자가 앱 자체에 머무는 체류 시간과 앱 사용 빈도수가 위챗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그리고 텐센트의 위챗의 시작점이 달랐기에 생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위챗은 메신저 자체의 강점 덕분에 알리페이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지던 결제 시장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는데 심지어 홍바오를 포함한 소액 결제 시장은 단연 위챗이 우세합니다. 나와 다른 이의 접점은 결제 어플이 아닌 메신저와 SNS 어플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알리페이는 AR 홍바오를 통해 기존 오프라인 시장의 왕자 자리를 되찾고자 합니다. 서비스 자체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홍바오(红包) 문화, 그리고 새로운 트렌드인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이 만나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포켓몬은 잡아서 자기만족을 얻거나 체육관에서 대결을 하는 게 전부인데, 심지어 때때로 포켓몬을 잡기 위해 유료 아이템까지 사야 하는데 이 AR 홍바오라는 서비스는 오히려 돈을 준단 말입니다. 찾는 재미도 있고 돈도 주니 이건 완전 꿩 먹고 알 먹고인 거죠.
AR 홍바오가 유행을 타게 되면 사용자가 늘어날 것이고 홍바오를 숨기고 찾는 오락적 행위를 통해 소액 결제가 늘어날 겁니다. 사용자들의 앱 사용 빈도수와 앱 내 체류 시간은 유행 확산에 따라 자연스레 높아질 테고 이때 얻은 홍바오는 결국 알리페이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사용되겠죠. AR 홍바오 서비스의 론칭이 새로운 서비스를 통한 신(新) 유저의 유입 또는 기존 고객의 진성화를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벤트 참여 방법이 아닌 홍바오 자체의 특성에 주목한다면 이유는 단 하나, 오프라인 실 거래로의 전환을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알리바바가 텐센트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영역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 커머스 시장입니다. 알리바바가 이번 AR 홍바오를 통해 오프라인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증진시킨 뒤 온라인 커머스 시장으로 영역을 넓힌다면 서비스 사용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온라인 결제 영역은 위챗이 아직까지는 넘볼 수 없는 알리바바 만의 영역이면서 그들은 타오바오(淘宝)와 티몰(天猫)이라는 엄청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이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AR 기술은 온, 오프라인의 영역을 넘나드는 다리가 되고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싸움은 AR 시장이 아닌 기존 온, 오프라인 시장에서 이뤄질 겁니다. 중국은 시장 싸움을 통해 다시 한번 더 도약할 테고 우리는 먼발치서 그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겠죠. 중국은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