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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Nov 27. 2021

정신과를 부정하는 정신과 간호사

  정신전문병원에서 퇴사한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곳에서는 정말 많고 다양한 기분들을 느꼈는데, 그 중 가장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환자에 대한 것이 아닌 함께 일하던 간호사에 대한 기억이었다.






  병원에서의 배정 병동이 다르면 당연하게도 함께 일할 기회는 없게 마련이다. 하지만 병원이 크지 않을 뿐더러 너무 크나큰 위험상황을 겪은 이후 내가 퇴사카드를 꺼내들자, 병원은 나를 다른 병동으로 이동시켜주며 무마하고자 했다. 못 이기는 척 병동을 이동하며 위험 가능성에 대한 병원의 대처를 확인했지만, 결국 나의 안전만 보장되었을 뿐 기존에 있던 병동 선생님들의 위험도는 여전해 보였다. 이대로 있다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겠고 나에게 같은 상황이 반복되리라고 생각했다. 퇴사의사를 반복적으로 표시하면서 한 달 가량 다른 병동에서 일하고 일을 마무리했었다.

  덕분에 오리엔테이션 때 한 번 만났던 선생님과 겹치거나 몇 시간씩 함께 일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나와는 성향이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선생님의 나이는 나보다 3살이 어렸는데 태도나 말투 등 모든 것이 5, 6년차는 훌쩍 넘는 선생님들의 그것이었다. 이전 병원에서의 높은 연차 선생님들과 유사한 분위기에 묘하게 이질감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마냥 내 속을 편하게 드러내기에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또래이고 말이 통하는 부분도 있어 대화하고 일하면서, 현 병원에서만 4년차이고 개업하는 시기에 들어와 거의 개원멤버로서 병원의 변화과정을 다 지켜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여러가지 궁금증이 들어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그러다 불쑥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남자친구 있어요?"

"네? 네, 있어요~"

"그럼 선생님 남자친구는 선생님이 여기서 일하는 것 알아요?"

"음? 네, 당연히 알죠~"

"음, 그러니까,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걸 아는지 해서요."

"아~네, 제가 정신과 쪽을 전부터 하고 싶어 했어서 잘 알고 있어요."

"진짜요? 그럼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다 알고요? 진짜 정신과를 하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다들 알아요~ 원래 처음부터 정신과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던 거라서 여기에 온 것도 정신과 쪽만 보다가 들어온 거예요."

"신기하다. 저는 친구들한테는 말 안 했어요. 남자친구한테도 말한지 얼마 안 됐고."

"왜요???"

"아니, 그냥, 좀 그렇잖아요..."



내 얼굴에 떠오른 복잡미묘한 표정을 읽었는지 그 선생님과의 더이상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았고, 그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일을 하고 퇴근을 했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이 계속 복잡했다.






  나도 모르게 간호사라는 직업에 희생정신을 강요하고 있었나 싶었다. 돈을 버는 직업인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에는 나의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환자들을 대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완전한 타자의 시선에서 감정을 섞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여러 생각이 한데 뭉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정신과의 인식에 대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면서 막막해졌다.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얼려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나만의 착각일 수 있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니까 주변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오히려 좁은 우물 속에서 내가 맞다며 자기 합리화만 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굉장한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4년차 선생님도 주변인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직장. 이날 이후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의료진에서부터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쉽고 슬펐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당장의 현장에 있는 일선 간호사조차 그렇지 않았다.

  나는 뭘 그렇게 자신하고 자만했던가. 내가 나중에 배우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은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선생님은 그저 자신의 상황을 말했을 뿐임에도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다. 앞으로의 나는 계속 공부를 하고 경험을 할 테지만 이때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희망이고 꿈이자 개선되어야  것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오만이고 자만이고 헛된 꿈일까. 지금의 나는   없기에 옳다고 믿는 방향을  노력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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