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뒤에 공간 있어요:)
퇴사 후 병원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세상은 참 좁은 곳이라 어느 날 일했던 부서의 주임님이 찾아오셨다. 한창 바쁘실 시간에 일하던 복장 그대로 헐레벌떡. “선생님,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다.”라고 하시면서. 소식 듣자마자 짬 내서 오셨다며, 어떻게 지냈냐며, 얼굴이 한결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 어디 있는지를 알았는데 어떻게 안 올 수 있겠냐면서 와중에 카페에서 음료도 사다 주셨었다. 그 때의 기분은 뭐랄까, 지난 세월이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특히나 잘 지냈던 주임님들 중 한 분이셨다. 나를 조금이라도 더 솔직하게 만들어주셨던 분이셔서 시간이 있을 때면 진정한 대화를 나눴었다. 평소에 뭐하고 지내는지, 뭘 하고 싶은지 등 병원 사람들과는 하기 어려웠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외에도 내가 해야 하는데 놓치고 있던 일들을 선생님들 몰래 알려주셔서 덕분에 잘 처리한 적도 많았다. 정말 감사한 분. 다시 만나 십 분, 십오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일했던 2년에 대해 다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당시의 부서 내 상황까지도.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며 회상하던 주임님은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규 때 선생님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았어,
미안하지만 난 왜 안 뛰어내리나 생각했었어.
내가 더 표현할 길이 없어서 힘들다고만 했던 말들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려졌구나, 다들 알아주고 있던 걸 나만 몰랐구나, 이유 모를 감정이 들었다. 그 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굳세게 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지만.
일하던 후반부쯤에는 모두와 잘 지냈던 것 같다. 떠나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잘 어울리게 되었다. 퇴사가 결정되고 조금은 섭섭한 기분을 느꼈던 내가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그 중에 가장 아쉬움이 컸던 사람들이 주임님 몇 분과 청소 여사님,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었다. 동기들과 다른 간호사인 선생님들은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왜인지 주임님들과 청소 여사님들은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몇 달 만에 주임님을 다시 만난 것이었다. 온갖 복합적이면서 긍정적이기만 한 감정을 한껏 느꼈다. 들뜬 기분으로 주임님께서 밥 사주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더니, 그렇게 얻어먹으면 갚아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며 정 없게 말했었다. 모르겠다. 엄마 말을 듣고도 연락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좋아했던 여사님도 있었다. 청소 여사님에 대해서 병원 밖의 누군가에게 말할 일이 없다보니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사님’이라는 단어 자체를 병원에 가서 그 분께 처음 배운 느낌이었다. 애초에 단어가 입에 잘 붙지도 않을뿐더러, 어울리는 사람 자체를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분은 정말 여사님이셨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병원 내 청소를 하는 분들은 다른 의료진만큼 혹은 보다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온갖 화학물질과 위험물질들이 가득한 폐기물 봉투를 수시로 만지고 옮겨야 한다. 이 분은 궂은 일을 하면서도 원리 원칙을 다 지키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그렇게 청결한 분을 또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 가끔, 아니 종종 신규 간호사들(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이 하는 실수들 때문에 다 정리해서 내려 보낸 쓰레기들까지도 뒤져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도 본인이 할 일이라면서 못 만지게 하셨다. 그렇다 해도 함께 찾아야 했지만 병원 안에서는 나를 위해주는 한 마디가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잘은 몰라도 그 분 덕분에 수십, 수백만 원짜리 의료기구들을 많이 찾았을 것이다.
다른 여사님들도 많았지만, 나에겐 이분만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신규 때부터 퇴사 때까지 한결 같이 대해주셔서일까. 항상 고맙고 죄송하고 좋은 복합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분, 그 분은 잘 지내고 계실까.
그러고 보면 정말 다양한 직종이 많았다. 중환자실에는 방사선사 선생님이 직접 기계를 가지고 X-ray를 찍으러 왔었다. 그들의 이름도 물론 선생님이었다. 무거운 기계를 끌고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X-ray를 찍었다. 응급 환자가 생기면 정신없이 온 병원을 누비셨고 땀에 젖어 계신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환자들을 직접 들어서 판을 넣고 찍다보니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몇몇 선생님은 자주 보다보니 꽤 친해졌었고, 아파서 병원에 왔을 때 내 X-ray를 찍어준 선생님도 있었다. 찍어준 이후 볼 때마다 괜찮은지 물어봐줬고, 비밀 친구가 생긴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윗 선생님께 인계 드리다가 혼나던 중에 X-ray를 찍으러 들어가면, 자기가 좀 늦게 올 걸 그랬다면서 미안하다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위로해 주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다.
오버타임을 어마어마하게 해서 이브닝임에도 새벽 두시쯤 퇴근할 때, 배고픈 상태로 병원 편의점에 가면 다양한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119 대원들과 레지던트, 나와 비슷한 상태의 간호사들까지 조용하게 북적였다. 간호사나 의사는 왜인지 편의점 음식을 먹는 게 당연하게 된 시점이었는데, 119 대원들이 우리처럼 컵라면에 김밥을 사가는 것이 괜히 마음이 아팠다. 타인의 생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식사가 이렇게 부실해도 되는 건가, 생각하며 김밥을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직종의 일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시체를 전담해서 옮기는 분들이 그랬다. 두 분이 번갈아가면서 하시는지 2년 동안 두 분밖에 보지 못했다. 별 말씀을 나눠 보지도 나눌 시간도 없었다. 조금은 궁금했었다. 취미는 있으신지, 병원 밖에서 삶의 시간들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같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지켜주던 보안팀 직원들도 있었다. 주로 면회 시간에만 봐서 잘 몰랐는데, 굉장히 든든한 분들이셨다. 정신과 환자가 난동을 부릴 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 새벽에 데이 출근할 때에도 병원 문 앞을 듬직하게 지키고 계셨었는데, 눈을 반쯤 감은 상태로 인사했던 잘 웃던 직원 한 명도 이름은 모르지만 친구였다. 면회 시간에 가끔 마주치다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었다. 다른 일을 하시는지, 다른 부서에서 일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쉬웠었다. 병원이 그런 곳인 것 같았다. 아니, 사회가 그런 곳이려나.
그 밖에도 내가 여기저기 전화로 대했던 분들의 직업도 굉장히 다양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참 많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학부에서, 그리고 신규 간호사 교육을 받을 때는 의사와 의사소통하는 법을 주로 배웠던 것 같다. 그것이 중요하긴 할 테지만 조금은 아쉽다.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병원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건 알려진 직업만이 아니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