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세요, 제발 사세요

by 수미니마니모
“일 시작하면 얼떨떨하고 눈앞의 일이 힘들어서 아무 생각 못 할 거야.
죽는 사람들 보면서 충격받을 거고.
그러다 일 년쯤 되었을 때 내 모습에 놀라게 될 거야.
어느 순간 죽음에 익숙해져서 무뎌진 채 일하는 자기 모습에.”


학부 실습 때 조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수많은 죽음들을 마주할 때마다 조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더불어 왜 나는 익숙해지지 않을까 자문했다. 죽음을 나눌 수도 분류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기적으로 나눈다면 갑작스러운 죽음과 예견된 죽음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일하면서는 예견된 죽음을 더 많이 만났던 것 같은데, 의학적 수치에 근거해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런 죽음들. 하지만 그게 정말 예견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담당 의료진과 가족들까지 죽음을 예상하던 환자가 있었다. 한 남자의 배우자이자 세 남매의 어머니셨다. 인계 시간에 화면을 빽빽하게 채웠던 글자들로 미루어보아, 앓고 있는 지병이 많아서 자주 병원을 오가셨던 것 같다. 중환자실에도 꽤 오래 계셨다.

데이나 이브닝보다 나이트는 스산한 느낌이 든다. 계절에 관계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병원이지만, 밤의 공기와 분위기가 주는 느낌은 역시 다르다. 그래서인지 고요한 밤에 맞이하는 죽음은 더 쓸쓸했다. 그날도 나이트였다. 담당 간호사로서 그 환자를 처음 맡게 되었는데, 인계를 받을 때부터 “아마 너 때 가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보호자 분들 다 알고 계시고 대기실에서 대기하신다고 하셨어.”라는 말씀을 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을 했다. 아무리 일에 익숙해진대도 죽음은 언제나 낯설어서, 마음의 준비가 꼭 필요했다.

3시쯤이었을까, 다른 환자의 혈액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던 중 모니터에 떠 있던 그 환자의 숫자들이 급변하는 것이 보였다. 급히 정리를 하고 뛰쳐나갔다. 심박수가 현저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많이 봐왔지만 그럴 때마다 내 몸속 어딘가도 후두둑 떨어지는 기분이다. 말도 안 되지만 숫자를 붙잡고 싶어지는. 90, 50, 30. 한순간이었다. 너무 빨라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의사와 보호자들을 불렀다. 어쩌면 살아있는 상태, 즉 의학적으로 죽음이 진단되지 않은 상태로는 마지막일 면회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단란하게 차려드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뭘 해도 무슨 소용일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면회를 지켜볼 때마다 울컥하면서도 뭐라도 해드릴 게 있을까 싶어 커튼 주위만 맴맴 돌았었다.


가족분들은 조용하면서도 질서 있게 들어오셨다. 기본적으로 매너가 있는 분들이셨다. 눈은 새빨개져 있었지만 앙 다문 입술로 눈물은 참아내고 있었고, 간호사의 안내사항을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셨다.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 짧은 순간까지도 잘 버텼지만, 커튼이 젖혀지고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픈 마음들이 터져 나왔다. 새벽이라 고요하고 싸늘한 공기 속에서 울음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나 또한 눈물을 참으려고 커튼을 쳐드린 후 다른 환자들을 살펴보러 일부러 도망을 갔다. 엄마, 아빠들의 사망 전 면회시간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 아빠가 죽는다면 나는 어떨까’와 같은 가정을 하게 되는 게 너무 싫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잦아든 울음소리에 면회 상황을 보고자 커튼 끝을 살짝 들췄다. 공교롭게도 아버님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울고 있던 자녀들을 나무라며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서둘러 면회를 마치려고 하셨다. 괜찮다고 더 면회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자녀들은 울면서도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의를 차리시는 것 같았다. 정말 중요한 마지막 순간일 텐데 왜 그러실까 생각하며 아버님을 썩 좋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녀들 입장에서 생각하니 얼마나 서운하고 안타까울까 싶어서.


주섬주섬 보호 장구를 벗고 자녀분들이 나가고 난 후, 아버님은 당신의 배우자를 잠시 물끄러미 보셨다. 그러더니 물티슈로 얼굴 한 번만 닦아달라고 부탁하셨고 나는 조심스레 닦으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머뭇거리시다가 누워있는 배우자의 귀에 대고 한 마디 하셨는데, 말씀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여보, 고생 많았어. 내가 곧 따라갈게.


한 문장만으로 긴 시간 꾹 참아왔던 내 감정도 터져버렸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많이 우셨을 아버님의 말씀에 마음까지 젖어버렸다. 눈물이 금세 그렁그렁해졌지만 면회를 마무리해야 했기에 애써 정리했다. 사망진단서가 몇 부 필요한지, 서류 작성은 어떻게 해야 하며, 장례식장은 어디를 어떻게 이용하실지 등에 대해 말씀을 나눠야 했다.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지려는 것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고, 겪고 싶지도 않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했지만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심장이 날 것 그대로인 상태로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몇 번을 겪어도 계속 아팠다. 결국 죽음이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로 퇴사를 했다.

엄마, 아빠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기적이지만, 너무 싫고 무서워서. 사망환자를 정리한 날이면 집에 전화를 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이야기들만 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도하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견된 죽음이 나에게도 찾아올까 봐, 너무 두려웠다.






또 다른 죽음이 예견되었던 환자가 생각난다. 성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환자의 상태는 참담했다. 피부는 갈색 빛이 돌았고 전신은 팅팅 부어 있었다. 온몸에서 노란 진물이 나와 침대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개 매트가 깔려 있었다. 관이 꼽혀 있는 동맥혈관을 통해 채혈을 한다지만, 혈액을 뽑는 자체가 죄송할 만큼 온전하지 못했다. 혈액 검사 수치도 당연히 좋지 않았다. 피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할 정도로, 피를 쏟아 부어도 피가 부족했다. 이 환자를 맡으면 일하는 시간 내내 수혈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혈은 혈액 확인부터 수혈 전, 수혈 15분 후, 수혈 종료 시마다 환자 상태를 기록해야 하고 혈액 신청과 수령, 부작용 등까지 신경 쓸 게 많은 처치였다. 한두 팩이 아닌 스무 팩 가까이 수혈할 때는 기록하는 것도 부담이 꽤 컸다. 더 부담인 것은 환자의 모습이었다. 일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엄마, 아빠가 저런 모습이어도 내가 치료를 계속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저 사람 본인은 그것을 원하고 있을까. 아마 영원히 정답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비슷한 모습의 환자들이 살아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나이트를 들어가는 밤이었다. 천천히 꼼꼼하게 인계를 받았다. 밤중에 심정지가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보호자들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심정지가 오면 CPR을 해야 하는데, 너무 마음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하나의 과정을 해나간다고 생각하라고. 겉으로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연명의료에 동의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망 예정 환자를 볼 때의 마음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간호하거나 환자를 보는 시간이 더하고 덜 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CPR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의 문제였다. 혼자 하는 건 아닐 테지만, 담당 간호사로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CPR을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또한 아무리 가망이 없더라도,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환자를 보는 자체가 죄책감도 크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제발 죽지 말고 사셨으면 했다. 나에게 배정된 여타 환자들처럼 밤 동안 열심히 보살폈다. 아니 수혈을 핑계로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붙어있었을지도 모른다. CPR을 하는 게 무서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옆에서 일하고 있던 선생님이 너 때 CPR하기 싫어서 그런 거냐며 못마땅한 투로 말을 쏟아냈다.

억울했다. 어차피 투자하는 에너지와 그로 인한 피로는 내 몫인데 왜 노력한다고 혼나야 할까. 내가 담당 간호사인데. 나를 위해서 말해준 것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누구도 좋게 바라볼 수 없는 때였다. 나의 무력감과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를 그에게 전가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나, 우리 아니 세상은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 새벽 5시 30분 평화롭던 인계 시간에 심박수는 뚝뚝 떨어져 버렸고, 최선을 다했지만 쓸모는 없었던 30분의 CPR 후 우리는 환자를 놓아주어야 했다.






세상에는 많은 죽음들이 있다. 내가 모르는 죽음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어제 서울 시내 교통사고 사망자 수’ 등의 표지판 따위를 보고 놀랄 때가 많다. 나에게는 평범했던 어제 하루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가셨구나 하고. 그렇게 많은 죽음들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살아가야만 한다. 그들의 죽음과 함께 마냥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도...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제발 사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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