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내가 간호사로 만났던 의사들

by 수미니마니모

“아파요? 죄송해요, 빨리 할게요. 다 했어요. 잘 하고 있어요. 다 했다! 너무 잘 참으셨어요.”

“아- 이거 원래 아파요. 좀 참아요. 다 했어, 다 했어. 좀 움직이지 마세요. 쫌.”


착한 의사와 나쁜 의사는 없다.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관심을 얼마나 더 가지고 덜 가지냐의 차이. 일반적으로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결정된다. 그리고 사실 의사도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언젠가부터 질병을 고쳐주고 생명에 관여한다는 이유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높여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특권계층이 되었다.

특별한 직업이라는 생각은 비단 비의사인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생들도 의사들도 한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잘나신 분들이 일도 잘하고 환자도 잘 보면 좋을 텐데. 가끔은 어쩌다 저 사람이 의사가 됐나 싶은 사람도 있고, 쟤는 진짜 의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사람도 있다.






약 2년 반을 일하면서 다양한 의사를 보았다. 정말 ‘놈놈놈’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 좋은 놈은 극히 드물고, 나쁜 놈은 중간 정도, 그리고 이상한 놈들이 엄청 많다.

좋은 놈은 글쎄, 내가 일하면서 본 레지던트는 두 명이었다. 좋은 인턴은 많기는 했지만, 좋다고 하기에 그들은 중환자실에서의 업무 권한이 크지 않았다. 따라서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아 충분히 느끼기 어려웠다. 교수는 그냥 분류하기 어려운,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레지던트만 말하면 좋은 놈, 아니 좋은 분은 두 명이었다.


먼저 내과 1등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인상 좋은 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매너와 인간성 등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것 같았다. 복잡한 의료 생태계에서 의사들은 물론 간호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여사님들까지 커버가 가능했다. 고난도의 시술을 할 때, 누군가 버벅거려도 농담을 치며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자기 고집 세기로 소문난 교수가 출장 간 사이, 환자 처방을 싹 다 바꿔놓기도 했다. 동기 혹은 후배들이 선망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걱정하면, 아무렇지 않게 “나는 내가 바꾼 처방들 레퍼런스 다 댈 수 있어, 뭐라고 할 테면 하라 그래.”라고 말하며 웃었다. 신규 간호사가, 사실 내가 그랬는데, 한참 늦은 시간에 그날의 치료계획 및 타겟을 물어보러 가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신규죠? 저희가 이 시간쯤 되면 좀 진이 빠져있어서 날카롭게 말할 수가 있어요. 조금 이해해줘요. 오늘 타겟은 –인데, 혹시 윗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제가 자리에 없었다고 말해요. 다음부턴 제가 미리 지나가면서 말해줄게요.” 그 후 그는 잊지 않고 자신이 먼저 말해주곤 했다.

한참 신규였던 나에게 그는 천사였다. 사실 모두에게 천사였던 그의 별명은 이름 앞에 세인트를 붙인 세인트OO이었다. 천사도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의 그는 모든 걸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신규일 때부터 그만 둘 때까지 그도 2년차에서 4년차로 성장했다. 그만두기 고작 몇 주 전에 내가 맡은 환자 때문에 가까이에서 오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아마도 그가 느끼기에 내가 능숙한 말투과 손길로 처치를 했었나보다.


"선생님이 2년 됐나요? 저 여기 돌 때 신규였죠?"
"그렇죠?"
"와, 선생님도 엄청 오래 됐네, 이제 좀 할 만 해 보이는데요?"
"저 엄청 안 할만 해보였나 봐요~"
"뭐, 신규 선생님들은 다 그렇기는 하니까요. 그래도 완전 이제는 척척인데요- 표정도 엄청 밝고."
"기억력 좋으시네요. 표정 밝은 건 아마 그만둬서일걸요? 저 이번 달 말까지만 일하고 끝이거든요. 엄청 신나요."
"아, 그래서 밝으셨나. 아니 베테랑들이 자꾸 나가면 어떡해. 그래도 부럽긴 하네요, 하하. 난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베테랑들이 자꾸 나가면 어떡해.

베테랑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뭔가 확 인정받은 기분과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 손에 꼽는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만두기 전 인사라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면서 좋았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게 지금 와서야 조금 아쉽다.



그리고 친구 중 한명이 언니라고 부르며 굉장히 좋아했던 의사. 번호를 따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는데 아마 따지 못했을 거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걸 크러쉬가 뿜뿜했던 멋진 언니였다. 키가 큰 편에 속하는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 할 만큼 키가 컸고, 더불어 능력과 인성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쿨함까지 갖추니 더할 나위가 없더라.

어떤 결정도 그녀에게는 미룰 것도, 미룰 필요도 없었다. 빠르고 정확한 결단과 걸맞는 행동력이 잘 어우러졌다. 모든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사람을 좋게 표현하는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여도 어울렸다. 간호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화를 소개하기에도 군더더기가 없어서 아쉬울 정도랄까. 좋은 사람은 이렇듯 오히려 말할 게 없다.






이상한 놈 중에는 정말이지 기억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최고는 시도 때도 없이 “신장이 알아서 할 겁니다.”라고 말했던 사람. 어떤 날은 내가 일하는 여덟 시간 동안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별 문제가 없는 환자기는 했다. 그래도 인계 직전에 컨펌 받아야 할 내용이 있어 전화를 걸었더니 쏜살같이 왔다. 치료계획과 타겟 등을 물어보면,


“아, 신장내과 그 환자요? 아무것도 안 해요.”
“네? 그게 플랜이에요?”
“네~ 신장이 알아서 할 겁니다.”
“음, 그러면 OO환자는요?”
“아, GI(소화기내과) 환자? 그 환자도 뭐 안 해요.”
“거기도 뭐가 알아서 하나요?”
“오~ 선생님, 잘 아시네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몸이 다 알아서 하게 돼 있어요.”
“아, 예~”


그러고는 둘 다 웃어버렸다. 뭐하는지 싶기도 하고 웃기고 어이도 없어서. 한창 신규 초반 때는 이렇게 인계를 드리고 혼날 때가 많았다. 의사의 말 자체보다 실제 치료계획을 내가 유추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환자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면 알 수 있어야 했지만 그게 참 어려웠다. 좀 머리가 큰 다음에는 노티하면서 치료계획을 같이 물어보곤 했는데, 저렇게 답하는 경우 그대로 인계를 드려야할지 참 고민이었다. 나중에는 물어보지 않고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저런 내용도 이야기하며 선생님들과 웃어넘기기도 했다. 쟤 진짜 이상한 놈이라며, 예전엔 어쩌고 어쨌다며. 지옥 같던 인계시간이 견딜 만 하게 된 것은, 의사랑 웃으며 이야기하게 된 것과 얼추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이상한 놈까지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쁜 놈이었다.




나쁜 놈들은 본인들이 나쁜 놈이라는 것을 모른다. 알 리가 없다. 그들도 나쁘려고 나쁜 것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의도가 없더라도 나쁜 건 나쁜 거다. 의사가 나쁘다는 것은 결과론적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환자에게 피해가 간다. 그러나 환자들은 알 수 없다. 서비스직군들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때, 지금 이 사람이 내가 낸 돈만큼의 서비스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느 정도겠거니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의사의 경우 업무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추측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 때로는 아예 예측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나쁜 짓은 주변에서 본 사람밖에 알 수가 없다.


일단 그들은 자비가 없다. 고통은 매우 개별적이고 주관적이다. 똑같은 의료행위를 했을 때 누구는 별로 안 아파하고 누구는 더 아파한다고 해서, 더 아파한 사람이 엄살쟁이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진정으로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일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분명 어렵지만 환자들의 표정을 보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엄살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다.


“선생님, OO환자 10분 전부터 배가 아파서 너무 힘들어 하시는데요.”
“그 사람 인투(Intubation의 준말, 기도삽관)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알아요? 말 못 하잖아요.”


여기서부터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나름 공부 잘해서 의사가 됐을 사람이, 언어적 의사소통만이 의사표현이라고 생각한다니. 물러설 수 없어서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보러 오지도 않고 듣지도 믿지도 않는다. 입에 무언가 물려 있다고 해서 표현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입모양으로도 말할 수 있고 의식이 있다면 손으로도 쓸 수 있다.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웃고 눈 깜빡이는 것으로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간호사는 들리지 않아도 들어야하고 몰라도 알게 되어야 한다. 그게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위하는 길이니까. 물론 의사도 그렇고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문제가 된다.


“손으로 쓰실 줄 아는 환자에요. 의식도 명료하고.”
“아니 그렇다고 해서 직접 아프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요. 아, 됐어요. 제가 나중에 가서 보게요.”
“지금 아프다고 하는데 나중에 온다고요? 원래도 진통제 깔아 드시던 분이세요. 인투하면서 Ultian(마약성 진통제)랑 Pofol(Fresofol, 진정수면제) 달았다가 어제부터 끊었구요. 약도 안 올려요?”
“아, 제가 가서 본다니까요.”


글로 쓰니 잘 표현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럴 때는 면상을 쳐버리고 싶었다. 자리에 앉아서 쳐다보지도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꼴이라니. 환자는 아파서 죽겠다고 몸부림을 치는데, 나는 기계의 버튼 몇 번 누르면 될 일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나쁜 놈들은 간호사가 코멘트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자존심도 세서 알아도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디 이런 놈들이 많이 없어졌기를.

물론 정말로 몰라서 안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이 경우 나쁜 놈보다 더 큰 문제가 되지만, 말하지 않으련다. 말하면서 화딱지가 나서 찾아가고 싶을 테니까. 정말로 모르는 경우라면 중앙 스테이션에서 총괄을 보시던 시니어 간호사 혹은 옆의 동료, 펠로우 등이 조언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세면 또 역시나 답이 없다. 결국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총체적 난국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점점 나는 씩씩대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이 진정하라며 달래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다. 간호사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 의대에 재학하던 옛 친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교수님들이 간호사들 잘해주지 말라고 했다며, 간호사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별로라며. 뻔히 내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를 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말했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지 오래됐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교수나 학생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까지는 그래, 생각만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본인들의 계급을 끊임없이 따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려는 행동들은 싫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하는 존재들이 그런 것은, 정말, 너무나도 싫었다.


병원에는 다양한 간호사와 다양한 의사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더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환경부터 갖춰져야 하고, 사회의 통념과 분위기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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