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동료라니

신규 간호사 이야기

by 수미니마니모

취직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듣게 되는 질문이 내용은 같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친구들은 [일은 어때?]라고 물었다면 언니오빠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라고 물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알기에 질문이 달라졌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받으면 우물쭈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별로라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기들과 같이 일하는 날이면 오늘 동기랑 같이 일한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의 사람들은 동료라기에는 멀고 먼 사람들이었다. 일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닌 평가자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간호사들처럼,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의미로 쓰이는 곳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신규 간호사에게 동료란 표현은 굉장히 한정적인 것 같다. 동기들 혹은 한두 기수 차이나는 몇 분 정도? 실제로 16년도에 입사한 나에게는 14년도 입사 선생님들까지가 말을 걸 수 있는 한계선이었고, 편하게 일상적 질문을 하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런 관계가 또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도 있었다. 동아리 선배들. 대학교 들어와서야 모두를 통틀어서 동아리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중 고등학교 때는 그렇지 못했다. 동아리 선배들, 동아리 친구들, 동아리 후배들이라고 나눠 말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동아리 위계질서는 꽤나 짱짱했다.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해 계속해서 동아리에 몸은 담았지만, 위계질서에는 반감이 컸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가면 의례적으로 하는 혼내기 관례들을 안 따르다가 친구들에게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못된 관습들을 뿌리 뽑지는 못했지만 한 명의 다른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병원은 동아리와 비교하기에 너무 큰 집단이었다.


동료라고 부를 자신조차 없게 하는 선생님들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컸다. 내 경우 일상의 생각에서 자꾸 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갔고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웠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퇴사의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많은 매체들에서 신규 간호사의 자살 사건을 많이 보도한다. 몇 년 전에도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고, 올해에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한 간호사에 대한 뉴스도 있었다. 심심치 않게 사건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는 안쓰러워하고 누군가는 그 정도로 힘들면 그만두지 그랬냐는 말도 한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만두는 것이 어쩌면, 죽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간호사는 교대 근무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바로 그만두지 못한다. 보통 스케줄은 한 달 단위로 정해지며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이 모두 다르게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누구 하나 문제가 생기면, 쉬고 있던 누군가가 대신 출근해야 하고 쉬는 날이 잘리게 된다. 퇴사가 아닌 몸이 아프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마음대로 아플 수 없다. 아파서는 안 된다. 그렇다보니 일을 그만둔다고 해놓고도 아주 급한 사정이 아닌 이상, 한두 달 더 일해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받게 된다. 실제 신규간호사 교육을 받을 때에도 퇴사 두세 달 전에는 알려달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일을 못하는 등 여러 이유로 미움을 받고 있는데 그만둔다는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렵다. 어떤 말도 하기 두려운 상태에서 그만둔다고 말했다간 태움이 더 심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신규와 관련된 주제는 어떤 이야기도 크게 부풀려지고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된다. 그래서 신규들은 최대한 숨죽여 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만두려면 파트장에 말을 해야 한다. 꼭 그만둔다고 말을 하려다 힘들다고만 말해도 파다하게 소문이 나게 된다. 소문과 함께 따라 붙는 안 좋은 말들은 참 날카로운 가시 같았다.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습에 파트장이 휴가라도 주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전화를 받고 불려나오게 된다. 겪어봐서 알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의 기분은 거의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병원에서 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잘못을 추궁하기 위해서라거나 혹은 스케줄을 바꿀 수 있는지, 가장 별로인 것은 지금 출근해줄 수 있는지였다. 모두 곤혹스러운 내용들 투성이. 이렇다보니 많은 신규 간호사들이 잠수 퇴사를 택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다른 곳에서 교육을 받고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받는다고 소문이 난 친구였다.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면 그만큼의 일을 더 준다고 한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일이 힘들고 인력이 부족한 우리 쪽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리고 더블(프리셉터는 아니지만 부서이동 후 적응을 위해 일시적으로 두 명이 함께 일하는 형태, 주로 높은 연차의 간호사와 함께 하게 됨)을 하게 됐다. 일을 잘 했기에 일로는 나무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 애의 단점은 성격이 되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자만하다며 혼나기 시작했다. 점점 얼굴 표정이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막 입사한 지 일 년이 지나 일이 익숙해졌다지만 병원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내 표정을 닮아갔다. 내 앞가림도 못하고 급급하던 때였지만 눈에 밟혔던 것 같다. 탈의실에서 마주치면 짧아도 가끔 몇 마디 지나가듯 나눴다. 힘들지? 진짜 그만두고 싶다. 못해먹겠다. 이런 흔하디 흔한 말들.

그러던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잔뜩 혼나던 친구를 보았다. 같은 시간에 일한 날이었다. 나도 늦게 끝났는데 아직도 자리를 뜨지 못하길래 무엇이 남았는지 물었다. 눈이 잔뜩 빨개져있었고 한바탕 울고 난 후인 것 같았다. 알아내야 한다는 종이를 내게 보여줬는데, 맙소사, 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알아봐주고 싶어 윗 선생님들께 몰래 물어봤고 심지어 모르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다행히 알게 되어 알려줬지만, 그래도 그 애는 혼났다. 왜 혼자서 알아볼 생각은 안 하냐며, 저 선생님이 퇴근 못하게 붙잡은 거냐며.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괜히 그 친구에게 속닥거리며 속앓이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1시간가량 기다리다가 남겨두고 퇴근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저녁에 연락을 해보니 퇴근을 했었고,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로 위로하고 끝내려는데 말수 없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혹시 저랑 일할 때 눈 자주 마주치지 않으세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10m는 떨어진 저 멀리서도 눈이 마주쳤었다. 시계를 보거나 의사를 찾을 때, 기록을 하다가도 마주쳤다. 그런 것 같다 말했더니 의미심장한 말이 돌아왔다.


동기들이랑은 같이 일할 수가 없고 선생님들(내 동기들을 의미했다)이랑도 같이 일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이랑 자주 겹쳐서요. 몇 번 겹쳐서 너무 좋았어요. 힘들 때마다 선생님이랑 눈 마주치면서 힘내고 그랬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음이 아팠다. 내가 뭐라고. 정말, 정말 많이 눈 마주쳤었는데 얼마나 힘들었다는 걸까.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한 때에도 나를 보고 있었을 것만 같아서 미안했다. 앞으로 더 잘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똘똘 뭉쳐야 버티고 나아갈 수 있을테니. 나의 사소한 행동들이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이유 모를 뜨뜻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웃으면서 아니라고, 나도 너랑 같이 일할 때 좋았다고, 다음에 또 같이 일하면 밥 먹자고 말했다. 이모티콘으로 훈훈하게 연락을 마무리한 다음날은 그 친구가 쉬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병원에서 볼 수 없었다.

일도 잘 하고 조용히 다니던 친구가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지자 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나에게는 예상된 발칵이었다. 언제나처럼 동기들 중 한 명이 전화를 받았고 스케줄 표는 변경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군대며 이렇게 그만두는 게 어디 있냐며 욕했지만, 그들 중 몇몇에게는 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케줄 표가 바뀐 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때보다 훨씬 좋았다. 괜찮았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부서 내 같이 입사한 친구들도 보기 힘들고, 애초에 교육도 다른 곳에서 받았던 터라 새로 친해지기도 어려웠을 것이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자꾸만 혼나고, 내 편은 없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감히 나의 생각을 대입해보자면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어딜 가나 일은 다 힘들 것이라고. 그러나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사람을 궁지로 더 내모는 것 같다고. 나는 스스로가 느끼기에 죽을 만큼 힘들다면 퇴사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간호사는 보람이 전혀 없는 직업은 아니다. 괴롭힘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두가 적응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너무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할까, 남들은 왜 이렇게 잘할까, 이런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도 나름의 고통을 안고 있기 때문에 신경써주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어 숨 한 번 들이쉬고 둘러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뛰쳐나온 셈이지만.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미안하다고.
나 또한 너를 동료로 생각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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