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여러분들, 저만 이런 생각 한 건가요?
나는 집중 관리대상이었다. 군대의 관심 병사와 같은. 몇몇 선생님들은 나에게 베이스에 짜증이 깔린 상태로 말을 했다. 또 몇몇은 약간의 안쓰러움과 답답함 그 언저리에 있을 법한 감정들로 나를 대했다. 나머지 몇몇은 즐겁게 욕하고 까대기에 바빴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병원도 평판이 중요한 곳이다. 중환자실 특성상 간호사들은 몇 미터 거리 내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몇 시간마다 환자 자세 변경을 위해 모인다. 아마도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에는 어떤 작은 가십거리도 크게 부풀려졌고, 목소리 크기에 따라 모기만 한 가십거리도 공룡만큼 부풀려졌다.
물론 나도 모르게 실력은 꾸준히 조금씩 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아차리기에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너무나 삐뚤어져 있었다. 알았는지 몰랐는지 파트장은 나를 다른 곳으로 빼주려고 했다. 재밌던 것은 파트장의 의도를 나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파트장은 나를 보면 잘 해내고 있다며 힘내라고만 했고, 동기들에게는 저 선생님 잘 지내는지 퇴근 후 우울해하거나 울지 않는지 밥은 잘 먹는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지 취미는 있는지 등을 매일같이 물었다고 했다. 왜, 왜 나에게는 묻지 않았을까. 지금까지도 이유를 모르겠다.
나와 함께 입사한 우리 동기들은 모두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프리셉터와 밥을 먹은 친구는 한 명뿐이었다. 그 친구도 교육 끝나기 몇 주 전부터 영문 모르게 사이가 틀어져 오랜 시간 힘들어했다. 들려오는 말로는 친구의 프리셉터가 친구에게 뭔가 실망했다는데, 물론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보통은 회사를 다니면서 사수랑 밥도 먹고 혼나도 다시 챙겨주면서 지내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의 사수들은 유명한 사람들이었고, 그것으로나마 우리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었다. 우리 다섯 명은 우리끼리 똘똘 뭉쳐야만 했고, 끈끈하게 붙어서 길고 긴 시간들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동기들의 프리셉터는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떠났고, 나만 프리셉터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동기들의 프리셉터는 인사이동, 개인적 사정 등으로 사라져 갔다. 결국 나만 남았고 친구들은 우스개 소리로 네가 우주를 망하게 한 것이 확실하다며 놀리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중환자실에 지원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우리는 입사 후 이론교육을 할 때 부서를 지원했다. 지원한 부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어쨌든 지원은 하게 해 준다. TO가 있으면 그 부서에 갈 수 있지만 보통 인기 있는 부서는 항상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원한 부서는 빈자리가 아주 많았던 것 같다. 지원자는 다 뽑혔고 지원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뽑혔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일이 고되든 사람이 문제든 간에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처음엔 상황을 잘 알지 못했기에 멋모르고 친구와 같은 곳에 배정되었다며 좋아했다. 애초에 병원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힘든 곳에서 다 마스터하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간호사의 꽃은 내과 중환자실이라는 말에 그대로 적어낸 것이 덜컥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중환자실 간호사로 2년을 살았다. 배정받은 처음만 해도 다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길어야 5년 있을 테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학생 때 신생아 중환자실과 심장외과 중환자실을 실습하면서 칭찬받은 기억으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 치 앞을 모르고 헤헤거리던 때.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간호사가 머리를 감기고 밥을 먹이는 것부터, 몸을 닦아주고 변 치우는 일을 할 줄은 몰랐다. 피를, 변을 그렇게 많이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전인간호’가 그런 의미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모르는 것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은 것인지. 머리끝에서 발끝의 의미에 대해 더 잘 알았더라면, 어쩌면 중환자실에 지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낯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약물과 검사 등도 매일매일 외워야 했고, 처음 보는 환자도 모든 것을 외워서 인계를 줘야 했다. 간호학과라고 해서 실무를 모두 배워서 입사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이론적인 간호학조차 열심히 하지 않아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똑똑하고 유능했던 프리셉터를 만나 더욱 모자란 애가 되었다.
점점 살기가 싫어졌다.
술과 함께하는 친구들만이 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것들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은 늘어만 갔다. 체력도 떨어지면서 술 마시기에도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물론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동기들을 만나면 어떻게 죽어야 편할지를 웃음 한 스푼 섞어 이야기하곤 했다.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든데 죽을 때라도 편하게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드라마나 영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자살방법들은 실행하기는 쉽지만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수면제? 일단 수면제를 어떻게 구하지. 수면제를 구해도 몇십 알을 먹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확실하지 않다면 더 엄청난 집중 관리대상이 될 것이 뻔했다. 패스. 목을 매달거나 추락, 은 절대 못 한다. 그건 너무 아프고 괴롭잖아. 게다가 만약에 못 죽으면 거의 반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할 텐데 그럴 수는 없다. 음, 불 지르는 건 살인이지 자살은 아니고, 이상한 약물은 먹을 수 없다. 식도가 타는 걸 느껴가면서 고통 속에 죽을 수는 없어. 대체 어떻게 해야 잘 죽는 것일까.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해서 오는 환자들을 너무 많이 본 사람으로서, 그들을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실패라도 하게 되면 더 문제였다. 큰 병원에 실려 갈 것이 뻔했고 두려워하던 그들의 간호를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었다.
난 이제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눈을 뜨게 되었고, 눈을 떴더니 프리셉터가 노려보고 있다면?
아, 말도 안 돼.
이러한 상황들을 피하기 위해 나는 항상 동생에게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내가 무슨 일이 생기고 위험하더라도 이 병원에는 절대 오게 하지 말라고. 그러면 동생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아,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라며 퉁명스럽게 쳐다보곤 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병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마약류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빼돌려볼까 생각도 했었다. 진정수면 상태에서 숨을 못 쉬게 약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자고 있는 상태에서 숨을 안 쉬어 스르르 죽게 될지도 몰랐다.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맹점은 누군가 함께 해야 했고 둘이 하자니 타이밍이 조금만 늦어도 다른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또 실수로 죽지 못한다면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으아아.
매일같이 지옥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아, 피곤해 죽을 것 같다. 그냥 이대로 자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럼 출근할 일도 없고 사람들 보는 일도 없을 텐데.’
또 어느 날은 출근길에
‘아무나 달려와서 내가 탄 버스 좀 들이받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러면 여기 사람들이랑 기사님들도 죽겠네, 그건 좀 그렇다. 그냥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너무 버스만 타고 다녔나. 잘 안 걸어 다녀서 그런가. 서울시 하루 교통사고 수도 어마어마하던데 왜 나에겐 그런 일이 안 일어나지. 사고 나면 좋겠다. 사고 나고 싶다.’
그러다 때때로 죽는 게 무서워지면
‘어떻게든 좋으니 다리 한쪽만 부러졌으면 좋겠다. 금이 가거나 인대가 나가면 아프기만 하고 걸을 수는 있으니까, 깔끔하게 뚝 부러져서 못 걸었으면 좋겠다. 아주 못 걷는 건 좀 그렇고 적당히 몇 달 정도만. 아니다. 못 걸으면 쉬면서 아무 데도 못 가니까 차라리 팔이 낫겠다. 그러면 몇 달 동안 일도 못하겠지? 어휴 그냥 어디든 좀 다쳤으면...’
출근하면서, 일하다가, 화장실에 가다가, 밥을 먹다가, 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잠을 자다가 문득문득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고민했다. 그 생각에만 빠져 있었고, 죽는 것만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확신했었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약은 나에게 너무 멀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