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의 이름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무엇이었나요.

by 수미니마니모
신규쌤, 이리 와 봐.
얘 신규야, 너 뭐하니, 이거 안 챙길 거야? 네 환자 아니야?


내 이름은 신규였다. 더 정확하게는 신규쌤. 신 씨 성을 가진 규쌤이라고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까.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들은 온 동네에 수두룩했다. 가끔 실제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좋은 경우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은 없지만 본명보다 규쌤이가 좋기도 했다. 미움 받는 나의 정체성 혹은 실수가 신규쌤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아에게 입혀지는 것 같아서.


나와 내 이름쌍둥이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선생님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방사선사도, 약사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되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그랬어야 했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척박한 근무환경에서 뿌리 내리고 버텨내어, 꽃을 피워내고 유지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어떤 상장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애초에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해당 부서에 배정됐지만, 실상은 인력 –1이라고 해도 좋을 사고뭉치였다. 간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환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들. 그런 우리에게 환자를 맡기는 것은 가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잘못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없는, 무지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정예부대였다.

환자와 동료 간호사, 그리고 병원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 거듭나기 위해 우리는 교육을 받았다. 일대일로 프리셉터(병원에서 사수를 이르는 말)를 붙여 하나하나 배웠다. 그리고 이것은 안 그래도 일 많은 사람들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 같다. 프리셉터가 되기 이전에 퇴사한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무책임하게 말하련다.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도, 신규도 힘들다. 단순히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억울할 만큼. 환자의 혈압과 심박동수를 띄워놓은 모니터 조작법부터, 혈관의 이름조차 다 외우지 못하는데 그 혈관에 꽂을 두꺼운 관을 삽입할 때 필요한 절차와 물품을 알아야 했다. 이제 막 태어나서 손이 움직인다고 신기해하는데, 뜨개질 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왜 못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타박하면 이런 기분일까.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수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것 또한 당연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받는 인격적인 공격과 차별은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해서는 안됐다.


“아, 쌤 신규죠? 노티하러 왔으면서 환자 이름도 몰라요? 나 참, 환자 이름도 모르는데 처방주면 약은 제대로 주는 것 맞아요?”


나를 나무라는 대상은 비단 우리 구역, 간호사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환자를 병동에 보내거나 역으로 중환자실에 입실시켜야 할 때, 다른 부서 간호사가 대뜸 화를 내며 자기 일을 나한테 시키기도 했다. 의사에게 노티할 때 환자 이름을 헷갈리면 당연하게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검사가 밀려있는 방사선사에게도, 주임님들에게도 환자 대소변을 치울 때에도 손이 느리다고 한소리 들었다. 이 공간에서 내가 마주치고 말을 해야 하는 모두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작던 목소리는 더 작고 힘이 없어졌다.


모두가 협력해야 하지만, 서로가 같은 일을 할 수 없고 도와주기도 어려운 곳. 전쟁터에 출전한 한 명의 병사로서 나는 한 명분의 몫을 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더 혹독하게 혼났다. 우리 부서의 위상을 갉아먹지 않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발전해야 할 나를 위해 혼내는 것이라 생각해도, 아무리 잘못한 게 확실해도, 그래도 서러웠다. 매일매일 부서지는 것 같았다.

원래 내 일이 아니었던 일을 타구역 간호사가 시켰고, 내 할 일을 구분하지는 못 했지만 잘 해냈을 때에도, 왜 그 일을 네가 하냐며 물어보지도 않고 하냐며 혼났다. 이 선생님한테 혼난 내용을 저 선생님이 물어보고 대답을 못하면 혼났다. 미로 같은 병원 안에서 세상 처음 보는 것들의 위치를 모르면, 몰라도 찾아와야지 왜 노력조차 안하냐며 혼났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완전하게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세상이었다.


함께 발령을 받은 동기들이 있기는 했다. 동기이자 이름쌍둥이. 하지만 한 듀티에 집중 감시하고 사고를 만들 인원을 줄여야했던, 지혜로우신 윗분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완벽하게 분리됐다. Day, Evening, Night, Off. 우리는 견우와 직녀 같은 관계였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일하는 날도, 쉬는 날도 다른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실제로 우리가 전부 모이게 된 것은 거의 1년이 다 되어서였다. 물론 시간이 안 돼도 몇 명이라도 만나서 어떻게든 밥을 먹고 술을 먹기는 했다. 막아뒀던 숨통을 가득 채우기에는 너무 짧고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털어내고 우는 그 시간마저 없었다면 누구 한 명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간은 느리지만 어쨌든 흘러갔고, 1년이 되었지만 나는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전보다 물품을 잘 찾고 컴퓨터와 전화를 좀 더 능숙하게 다룰 뿐이었다. 실수는 조금 줄어들었다지만, 손은 여전히 느렸고 마음은 항상 몸보다 빨랐다. 아,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있었다. 성격이 더러워졌다. 그리고 후배가 들어왔다. 불안했다.

1년이 되면 실력이 나아질 줄 알았고 그렇게 되면 태움도 덜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태움도 여전했다. 그래도 강도는 감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익숙해졌거나 실제 약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새로운 신규들에게로 그 총량/에너지가 나눠졌기 때문이었다. 충격이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까, 실수가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 정말 내가 못 하니까, 더 발전하라고.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가며 그것을 합리화하고 발전하려 노력했던 나는, 단지 새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로의 태움이 줄어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실망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실망할 수 있었고, 그들은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신규 간호사가 그만두고 싶어 하지만 그만두지 않는다. 못한다. 죽고는 싶었지만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은 신기하게도 하지 못했다. 일 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 역시도 그만둘 수 없었다. 퇴사는 현실을 바라보아야 했다. 돈이 필요했다. 스트레스를 오직 돈 쓰는 것으로만 했던 나에게 수중의 돈은 턱없이 적었고, 끝까지 붙들고 있던 자존심은 일도 못하면서 그만둘 생각을 하냐며 나를 타박했다. 사실 준비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 있는 것은 오직 만료된 중국어 자격증과 간호사 면허증 뿐이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3년을 버티는 것이 목표였지만, 1년만 채우자고 마음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2년으로 수정되었다. 무얼 해야 할까.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들을 채워야 했다. 간호사는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는 이 병원이 마지막이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철저하고 제대로 된 목표와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병원탈출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신규는 계속해서 들어왔다. 아니,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고 나갔다.

살아남아 계속 일하는 신규들은 글자 그대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해리포터가 두들리 가족에게 그랬듯 천대 받았고, 인고의 시간 끝에 ‘선생님’이라는 마법사와 같은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버티어냈고 타이틀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중환자실은 3년까지 신규라는 한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그래서 나의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규였다가 신규였고 신규였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