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좀 풀리나 보다 했더니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 햇빛은 거실 유리창 안으로 환히 들어오지만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먼산들의 능선 윤곽이 오늘은 먼지안개의 바다에 완전히 잠겨 버렸다. 탑 꼭대기의 일부분이 보이던 롯데 타워도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며칠 동안 심했던 미세먼지가 오늘 아침에도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잊지 않고 황사방역 마스크를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성남에 있는 신구대학 식물원을 찾아 청계산 자락으로 가려고 한다.
이 식물원은 신구대학에서 운영하는 식물원으로 개원한 지 20 년이 지났으나 오래전부터 이름만 들었지 오늘 처음 가 보는 곳이다.
신분당선 청계산 입구역에서 열네 명이 모였다.
식물원은 길 찾기에서 찾아보니 청계산 입구역에서 도보로 걸어가면 한 시간쯤 걸려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자동차 도로 옆길을 꽤 걸어가야 하므로 오늘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그러나 처음 타는 성남의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내릴 곳을 그만 지나쳐 버리고 만다. 잘못 내렸으니 길 건너편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신구대식물원 입구 정류장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한 젊은 여성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어차피 걸으려고 나왔는데 버스 한 정거장쯤은 걸어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용감한 할머니들이라고 자화자찬하며 걷기 시작하는데 그 한 정거장이 거의 30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이다. 처음부터 걸어올 걸 그랬나? 걸어가는 길은 대왕 저수지라는 넓은 호수 옆으로 난 비교적 한적한 찻길로 약간 오르막길이지만 주변 경치도 좋고 편안한 길이다.
결국 식물원 입구를 찾아서 매표소 앞으로 가니 매표소 직원 말이 온실은 지금 보수공사 중이어서 당분간 폐쇄되었으니 오늘은 밖에서만 산책하라고 한다. 이런 일이! 온실에 꽃을 보러 왔는데?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서 밖에서도 걷기는 좋다. 때마침 미세먼지도 걷히고 파란 하늘이 맑게 드러난다. 화창한 햇볕에 얼었던 길도 녹기 시작해서 벌써 봄기운조차 느끼게 한다. 길 옆에는 아직 녹지 않은 흰 눈도 이따금 보인다.
신구대학 식물원은 청계산 동쪽으로 인릉산 자락에 자리하고 계곡을 따라 펼쳐져 있다. 활엽수가 많은 산책길을 따라 능선 쪽으로 올라가니 나뭇잎이 떨어져서 가지들은 앙상하지만 숲길은 고즈넉하고 좋다.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계절에 오면 숲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잔디 광장으로 올라가는 도중 양지바른 곳 쉼터에 피크닉 테이블이 여러 개 있어 따뜻한 차와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날이 따뜻해지면 도시락을 싸 와도 좋겠다.
식물원에서 보는 주변 풍경은 청계산과 인릉산이 양쪽으로 둘러 싸여 있어 산속의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자동차 소음이 계속 들린다. 청계산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기 때문인가 했더니 더 가까운 곳으로 분당-내곡 간 고속화도로도 지나가고 있다.
비록 온실에는 못 들어갔지만 숲 속의 산책길을 한 바퀴 걷고 어린이 놀이터에도 앉아 보고 갤러리도 있어 들어가 보니 마침 꽃과 나무를 주제로 그린 유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림에서라도 다채로운 꽃의 색깔을 즐기며 눈 호강을 하고 방명록에 싸인까지 하고 나온다.
식물원에서 나오다가 입구 쪽을 돌아보니 그제야 “꽃빛 축제"가 2월 9일까지 열린다는 광고판이 보인다. 주말 오후 5시부터 야간 개장을 한다니 겨울밤에 오면 이곳 정원이 현란한 불빛으로 장식되어 볼거리가 많을 것 같다.
식물원에서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큰길로 나가서 손두부로 만두를 만든다는 식당을 발견하고 그리로 들어간다. 만두전골이 좀 맵기는 했지만 맛있게 먹는다. 만두집 건너편에는 꽤 큰 카페도 있는데 대왕 저수지가 잘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베이커리 카페이다. 이곳 제빵 명장이 외국에서 받아 왔다는 상장이 벽에 걸려 있어 우리도 한번 먹어 보자면서 단팥 빵도 먹어 보며 맛있다고 모두 좋아한다.
돌아올 때는 카페 가까이에 있는 버스정류소에서 다시 성남 341번 버스를 타고 청계산입구역까지 가서 역 앞에서 해산한다.
오늘은 버스를 많이 타서 얼마 걸은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 보 정도는 걸었다고 만족해한다.
2025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