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날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가?
작년 초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가서 4주간 입원하고 난 후 아내의 추천으로 그때부터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평생 운동을 안 하던 나로선 대단한 거다. 최근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날이 너무 좋았다. 캘린더를 보니 마침 특별한 미팅 약속도 없었다.
“우리 오늘은 경기도 외곽 쪽 카페 가서 각자 할 거 할까? 난 의뢰 밀려있는 그림들 작업 좀 할 거야.”
“그래, 좋아. 나도 마침 연극 글 쓸 거 많았는데 잘 됐다.”
우리는 그렇게 훌쩍 집에서 차로 30여분을 달려 지금 경기도 광주 어딘가에 있는 카페에 있다.
아내와 애플파이와 커피를 마시며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행복하다” 란 생각을 했다.
이미 익숙해져 버려서 의식하지 못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날이 좋다는 이유로 언제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7년 전 직장인 라이프를 그만두고 나와 그동안 좌충우돌하며 바로 앞에 주어진 한 달 한 달을 살아내는데 집중하느라 모르고 있었을 뿐,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난 옛날 직장인이었을 때 그렇게 꿈꿨던 ‘자유인의 삶’을 (제한적이지만) 이미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인이었을 때 옥상에 있던 사내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이런 날은 진짜 어디로 놀러 가고 싶다'라고 동료들과 막연하게 투덜거렸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하긴 그때는 자유와 불안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뭐 이제는 나름 이것도 익숙해졌다.
내 앞에서 웃으며 조잘대며 옛날이야기를 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너무 익숙해져서 한때는 내가 그얼마나 원했는지조차 잊고 사는 소중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아내처럼, 지금의 나의 삶처럼.
여전히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불안을 잠시 내려놓고 즐겨도 되지 않을까?
단지, 날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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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5일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