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조지아 여행기-16

16. 예레반 (3.28)

by Local Park


아르메니아는 자체의 언어와 글자가 있고 자체의 화폐가 있다. 아르메니아의 화폐 단위는 '드람'으로 100 드람이 우리나라 250원 정도다. 또 아르메니아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라고 한다. 여러 나라의 침략과 지배에도 자신들의 언어를 굳건히 잘 지켜냈다. 그런 오랜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예레반의 '고문서 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귀한 고문서들이 많이 보관돼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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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숙소에서 나설 땐 이 고문서 박물관에 갈 계획이었다. 나는 아르메니아에 오기 전 조지아에서 라리를 약간의 드람으로 환전해왔는데, 애초 계획보다 예레반에 머무는 기간이 며칠 더 늘면서 드람이 딸랑딸랑하게 됐다. 조지아에 도착했을 때 미리 준비해 온 달러 -> 조지아 라리로의 환전에서는 별로 손해가 없었는데, 라리 -> 드람으로 환전할 때는 수수료가 엄청나게 때여서 기함을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내일 떠나려고 한 시점에서 드람으로 환전하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저렴한 아르메니아의 물가에 비해서 고문서 박물관 입장료가 너무 비쌌고, 수중에 가진 드람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박물관을 포기했다. 또 조지아도 아르메니아도 어딜 가도 영어 병행표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박물관에 간 들 뭘 볼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신 기념품 가게나 들렀다. 우체국에는 너무 정직한 사진이나 촌스런 엽서뿐이었는데 기념품샵엔 예쁜 디자인 엽서가 많아서 열심히 골라봤다.


계획한 일이 어그러지면서 돈도 없고, 할 일도 없어진 나는 와이파이가 되는 공화국 광장 인근 공원을 찾았다. 이런저런 여행 기록도 하고, 군것질하며 사람 구경도 하기 위해서. 조지아에서도 동양인을 거의 보지 못했지만, 예레반에서는 동양인(정확히는 동아시아인)을 아예 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노골적인 시선이 가끔 느껴졌다. 말없이 빤히 쳐다본다던가, 셀카를 찍는 척하며 몰래 사진을 찍는다던가 하는 불쾌한 사건이 조금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체감상 서유럽에 비해 대놓고 무례한 사람 비율은 적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수첩에 글을 끼적이는데, 거렁뱅이 같은 차림의 아르메니아 남자가 다가왔다.

'중국인이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로 시작해 '아시안걸들은 디퍼런트 하다'며 눈 찢는 시늉을 해 보이질 않나?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를 분명히 했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자신의 집에 엄마와 형제가 함께 사는데 같이 가서 아르메니아 트레디셔널 푸드를 먹어보지 않겠냐는 둥 헛소리를 찍찍하더니 '우리 집에 가서 사랑을 나누지 않을래? 나는 베스트다' 유럽 어딜 가나 아시안 여성들을 만만하게 보는 창놈들은 있는 법이었다. 나는 화가 꼭지까지 차서 발광을 떨었더니 그제야 꺼져버렸다. 지랄 떠는 아시안걸도 있다는 걸 가슴 깊이 새겼길 바랄 뿐이다.



그러고 앉아있길 또 좀 지나서, 이번엔 한 4-50대로 보이는 아르메니안 여성분이 '중국인이냐?'며 다가왔다. 어딜 가나 아시아인들에게 말문을 여는 똑같은 인사. 그러곤 '시인이냐?'라고 물었다. 감상에 젖어 노트를 끼적이는 모습이 시인 같았다나. 아무튼 좀 전의 불쾌한 사건도 있고 해서 의심 가득 두른 심드렁한 내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의 TMI를 대방출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학생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데 그게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곳인데 요즘 나라에서 후원금과 지원금이 대폭 줄어 힘들다고 했다. 가방에서 무슨 파일집을 꺼내서 본인이 돌보는 학생들 사진을 또 막 보여준다. 이 긴 장광설 끝의 본 목적이 무엇일까? 후원금을 달라는 건가? 별별 생각들로 잔뜩 경계하며 듣고 있는데 한숨을 푹푹 쉬며 열심히 얘기를 하다가는 '당신을 방해하고 싶진 않네요'하며 자발적으로 떠났다. 그냥 이 사람은 누구라도 붙잡고 무슨 얘길 하고 싶었는데 내가 혼자 있어서 다가왔었나 싶었다.



35.jpg 내가 신기한가?


아무래도 내가 쉬던 자리가 핫플레이스였나보다. 옆 벤치에 대략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애들 네댓 명이 와서 앉았다. 시끄럽기도 하고, 뭔가 시선이 느껴지기도 해서 쳐다봤더니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다. 무시하려고 했는데 뭔가 저쪽 돌아가는 꼴이 서로 '니가 가서 말 걸어봐'하며 아웅다웅하는 눈치다. 한참을 그러더니 한 놈이 내 벤치 자리에 와서 앉았다. 앉긴 앉았는데 암 말도 없이 힐끔거리기만 하길래 '나랑 대화하고 싶니?'라고 영어로 물어봤는데 할 말이 없는 건지, 내 영어를 못 알아들은 건지 눈만 꿈뻑꿈뻑 거리며 앉아있다가 자기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고, 입도 벙끗 못하고 돌아온 놈을 다른 친구들이 놀리고 비웃는 듯했다. 친구들끼리 모여있을 땐 저세상 흥분 상태에 놓이는 꼴이 한국 남중생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옆에서 계속 깐족거리고 시끄러운 탓에, 난 더 앉아서 뭉개기를 포기하고 결국 자리를 떴다.



이날은 유독 말 거는 사람이 참 많은 날이었다. 다른 더 한적한 공원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공원의 조각상을 스케치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조각상 근처에서 누구를 기다리듯 서있던 외국인이 내가 뭘 그리는지 궁금한지 다가왔다. 그린 그림을 혹시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나는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움과 거절을 표시했다. 그러니 껄껄거리며 자신의 딸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은 미국인이고 가족과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예레반에서 며칠 묵었나 어떤 게 인상적이었냐 여행자들 사이의 통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중 그가 기다리던 가족과 친구들이 왔다. 미국 남자는 자기 가족들을 간단히 소개해줬고 걔 중엔 그 '그림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딸'도 있었다. 나도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 딸은 예전에 한국인 룸메이트가 있었다고 반가워했다. 우린 즐거운 여행 하세요~하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마지막 날이라 기념품 살만한 것을 찾으려 열심히 돌아다녀봤는데, 정말 정-----말로 살 게 없었다. 시장에도 뒷면에 'Made in China'라고 적혀있을 것만 같은 공산품뿐이었다. 나는 그 나라에서 만 살 수 있거나 낡은 것, 또 부피가 작은 것 (배낭에 넣을 수 있는)으로 기념품을 사려고 한다. 기념품 파는 시장을 돌아다니다 오래된 동전과 배지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배지들도 다 어딘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녹슨 것들이 많았는데 내가 찾는 기념품 기준에 부합했다. 소련 시절엔 각종 국가 주요 행사 때마다 이런 배지를 많이 만들었던 모양이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배지를 꽤 여러 개 샀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니 낮에 세반 호수에 갔던 렘마가 먼저 와 있었다. 호수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서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었다. 본인 기념품 사면서 내 것도 샀다고 세반 호수가 그려진 마그넷을 선물해줬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받는 선물은 크든 작든 너무 감동이다. 사탕 한 알이라도. 다시 만날 확률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 대가 없이 베푸는 마음이 사람을 무장해제시킨다. 렘마는 방의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했는데 이날 밤 다른 투숙객과 오페라를 관람하러 갈 거라고 했다. 오페라 하우스 내부가 궁금하긴 했지만 오페라에 대한 지식도 없고 돈까지 없는 나는 동행을 거절했다. 선물 받은 마그넷이 너무 고마워 나도 뭘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렘마의 얼굴을 그려주기로 했다. 전에 같이 찍었던 사진을 보고 끼적끼적 그려보고, 짧은 편지도 썼다. 오페라를 보고 돌아온 렘마에게 선물을 주며 나는 내일 떠나게 됐음을 알렸다.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날 예정이라 인사를 못하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인사를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약간의 소회를 나누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DSC05709.JPG 고문서 박물관 (마테나다란)입구의 석상들
IMG_20180327_140516.jpg 말 걸어오는 사람이 많은 공화국 광장 인근 공원
DSC05676.JPG 공원의 멋진 동상
DSC05695.JPG 이날 무슨 큰 축구 경기가 있는지 응원하는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DSC05724.JPG 예레반의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
IMG_20180327_121046.jpg 어딜 가든 꽃이 많은 도시로 기억되는 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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