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트빌리시 (3.30)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 않았다. 처음에 트빌리시에 왔을 때 자주 들렀던 던킨 도넛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늘 손님이 적당히 있고,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는 곳. 도넛 외에도 아침 메뉴와 커피 메뉴도 많았는데, 예레반에서 촹 아저씨가 만들어 줘서 맛있게 마셨던 터키쉬 커피가 메뉴에 있길래 주문해 봤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커피시럽 수준의 걸쭉한 농도에 극강의 달고 쓴 맛이었다. 마시자마자 화장실 소식이 올 듯한 맛!
비는 그쳤지만 굉장한 강풍에 쌀쌀한 날씨다. 어쩌랴, 시간이 얼마 없다! 강제로라도 쏘다녀야 한다. 트빌리시에서 가장 큰 성당인 사메바 대성당으로 향했다. 자유광장에서 꽤 되는 거리지만, 시간이 널렸기 때문에 쉬엄쉬엄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보기로 한다.
사메바 대성당은 1995년에서 2004년에 완공된 성당이라 역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동방 정교회 성당이라고 한다. 높은 지대에 홀로 우뚝 솟아있어 어디서든 잘 보이고, 성당에서는 트빌리시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성당 주변으로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공원이 둘러져 있고, 그 한가운데 노란 성당 건물이 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종교에 적의 하지 않고선 종교 건축물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한정적인 것 같다. 성물방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물며 한참 구경하고 작은 십자가 목걸이를 기념으로 하나 샀다.
이제 여행이 얼마 안 남아서 기념품을 좀 사야 했다. 기념품을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I love Georgia'가 쓰인 조악한 퀄리티의 제품은 사고 싶지 않지만 '조지아'에서만 살 수 있는 '조지아'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또 예산이 많지 않다. 늘 여행 막바지까지 미뤄놓고 숙제 치르듯 한다.
숙소 인근 번화가 지하철 '스테이션 스퀘어' 역에는 큰 쇼핑센터가 있다. 우리나라의 여느 쇼핑센터와 비슷한데 지하엔 마트와 생필품 가게가 있고 지상엔 여러 의류 브랜드들, 꼭대기 층엔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 등이 입점돼있다. 나는 뭐라도 조지아 글자가 들어간 제품을 사고 싶었다. 글자 모양이 너무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했고 내가 사고 싶은 기념품 취지에 맞기도 해서다. 하지만 의류 건 생필품이건 조지아 어가 쓰인 제품은 하나도 못 찾았는데, 영어가 쓰인 제품은 널렸어도 한글이 실린 제품은 거의 없는 게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쇼핑센터를 위아래도 뱅글뱅글 돌다 결국 지하 매장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추르치헬라'를 몇 개 샀다.
조지아에 대해서 검색하면 특산물로 많이 뜨는 게 하차푸리 빵과 추르치헬라다. 트빌리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양초같이 생긴 알록달록한 것들을 줄줄이 달아놓은 가게가 많이 보여서 저건 대체 뭔가? 했었다. 색깔이며 질감까지 이것이 먹는 음식임을 곧바로 알아채기는 힘들다. 과일을 진득하니 졸여서 굳히고 안엔 견과류를 넣어 고소한 맛을 더한 일종의 디저트다. 처음 조지아를 왔을 때부터 맛이 너무 궁금했지만, 도로변에서 포장도 안된 채 먼지 샤워를 하게 둔 가게들이 대부분이라 사 볼 생각을 접었는데, 쇼핑센터 기념품 가게에 깨끗하게 포장된 것을 팔고 있었다. 기념품으로 몇 개 사면서 나도 처음 맛을 봤는데 과일을 졸여서 만든 거라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비가 내려 더 이상 돌아다니기를 포기하고, 숙소 근처 카페로 향했다. 트빌리시는 카페가 참 많다. 고즈넉한 카페, 세련된 카페, 빈티지한 카페 등 가격도 저렴하고. 예쁜 카페들만 찾아 돌아다니는 트빌리시 관광도 재밌겠다 싶다. 나는 콘센트 때문에 던킨으로 시작해 던킨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어젯밤의 악몽으로 숙소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에 카페에서 식사도 하고, 노트 정리도 하며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제발 이란인 무리들이 하룻밤을 끝으로 체크아웃했길 바라며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