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트빌리시 (3.31)
지난밤 같이 도미토리의 이란인들 때문에 밤을 꼴딱 새워서 그들이 제발 체크아웃했길 바랬지만, 숙소에 돌아와 보니 체크아웃은커녕 친구들까지 데려와서 판 벌릴 준비가 한참이었다. 내가 4일을 예약했기 때문에 오늘 밤을 지내고도 이틀 밤이 더 남았는데 이 사람들과 함께 며칠을 더 지낼 엄두가 안 났다. 숙소 호스트에게 혹시 내일도 저 이란인들이 머무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나는 정말 정말 힘들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저들의 너무한 처사와, 도저히 잘 수 없는 괴로움을 읍소했다. 호스트가 조금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럼 혹시 내일 체크아웃한다면 남은 이틀 치 숙박료를 돌려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물론 안된다고 했다(당연히). 그래서 나는 최후의 제안으로 내일 체크아웃할 테니 묵지 않은 이틀 중 하루 금액을 위약금으로 드리고, 남은 하루치 금액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호스트는 나를 가엾게 여겨주어 제안을 받아들이고 하루치 금액을 환불해주었다.
이날 밤 역시 예상대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음주가무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전 회차에서 말했다시피 여긴 감옥 콘셉트로 방문은 아예 없고 창살뿐이라 방음이 의미 없었다. 내일은 다른 숙소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에 긴 밤을 그저 버텼다. 해가 밝자마자 짐을 챙겨 숙소를 바로 떠났다. 숙소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며 이 여행에서 마지막 이틀 밤을 묵을 숙소를 골랐다.
무슨 인연이지 이 숙소의 호스트와 스태프 또한 이란인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얇은 외투를 입고 다니는 날씨였는데, 숙소 스태프는 하얀 민소매만 입고 말도 안 되게 털로 수붕한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숙소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묵는 도미토리는 지하인 데다, 지하엔 화장실이 없어서 꼭 1층으로 올라와야만 했다. 그렇지만 혀를 콱 깨물 만큼 썩은 것도 아니라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4인실인 도미토리 방에 동양인 중년 남성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체크인한 지 얼마 안 됐는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권이 자주색이길래 중국인인 줄 알았는데(중국 여권이 자주색), 그 사람이 다가오더니 '한국인이죠?'라고 물었다. 내가 호스트랑 대화할 때 영어 억양을 보고 한국인인지 알았다고 한다. 한국계 외국인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짐만 내려놓고 숙소를 나왔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플리마켓이 열리는 곳이 있다고 해서 걸어가 봤다. 쿠라 강변 공원을 중심으로 인근 도로까지 플리마켓 노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흥정에 재능이 없어서 구입은 좀 부담스럽지만, 그냥 눈으로 구경하는 게 재밌어서 어느 나라를 가도 플리마켓은 찾아서 가본다.
가는 도중에 관광 중인 젊은 동양인 여성 두 명을 봤다. 여긴 어디서든 동양인이 눈에 띄어서 의식하게 되는데 나만 그랬던 건 아닌지 두 사람이 먼저 다가와서 내가 혹시 중국인인지 물어봐왔다. 한국에선 한국인을 제외하곤 다 외국인, 이방인인데, 이런 곳에서 같은 동양인이라고 서로 반가워하는 게 재밌다. 조지아에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고, 우린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다.
플리마켓은 뭐가 그리 많진 않았다. 어디 굴러 박혀있다 나온 건지 신기한 낡은 물건들이 즐비하긴 한데 동묘처럼 신기함은 신기함에서 그칠 뿐, 딱히 살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플리마켓 나오신 분들이 대부분 고령자여서 조지아어와 러시아어가 아닌 이상 대화를 전혀 나눌 수가 없기에 가격을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이란인 호스트가 다 같이 나와서 술 한 잔 씩 하고 얘기 나누자며 숙소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도미토리에 있던 사람은 친구 관계인 이란인 여성 두 명, 내 아랫 침대 이란인 남성 하나, 동양인 중년 남성 하나와 나까지 총 다섯 명. 그리고 1층에 묵고 있는 러시안 남성 두 명과 라트비아 여성 한 명에 숙소 호스트와 스태프까지였다. 호스트가 이란인이라 그런지 이란인 손님이 많았다. 호스트는 본인이 직접 담은 술과 비닐봉지에 든 커다란 치즈를 꺼냈다. 단출했다.
투명한 증류주를 본인이 어떻게 담갔다는 건진 모르지만 술 이름은 '차차'라고 했다. 굉장히 조그만 잔에 따라주는 걸 보니 독한 술인가 싶었는데 냄새만 맡아도 콧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한 50도 정도 될 거라며 껄껄 웃었다. 술이랑 같이 먹으려고 시장에서 좀 전에 사 왔다는 치즈는 팔뚝만 했다. 우리는 술을 홀짝 거리며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난 낯가림도 있는 데다 영어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두뇌를 풀가동해야 해서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여행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다른 나라의 여러 주제들이 대화의 안줏거리가 됐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이란인들의 히잡에 대한 얘기였는데, 친구사이인 이란인 여성 두 사람은 히잡을 쓰고 있지 않았다. 이란도 테헤란 같이 큰 도시는 많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집 밖에서만 스카프를 머리에 가볍게 두르는 정도고, 외국인에겐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란인들 특히 남성들은 히잡에 대해 굉장히 강경한 입장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되려 호스트와 털북숭이 스태프는 히잡 같은 억압은 다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의견을 보여서 의외였다. 아무래도 외국 생활을 하는 이란인이라 시각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란 남성들이 여성권을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던 찰나,
동양인 남성이 이란 여성 얘기를 잘 듣다 별안간 개인사를 털어놓으며 급발진하기 시작했는데, 본인의 사업이 잘 될 땐 여자 친구가 잘해주다가,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떠났다며 아시안 여자들은 오직 '머니, 머니, 머니, 머니!!!!!'(실제로 한 대사) 머릿속에 오직 돈뿐이라며, 맥락 없는 여성 혐오와 자기 연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재미교포로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훨씬 긴 사람이었음에도 참 예상 가능한 뻔한 모습은 내게 또 다른 놀라움을 주었다.
누군가의 급발진에 잠시 싸늘해진 순간을 제외하곤 술자리는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차차는 한 모금 호록 에도 놀란 식도의 만류로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소박하고 따뜻한 술자리를 베풀어준 이란인 호스트에게 참 고마웠다. 전 숙소에선 이란인에게 호되게 당하고, 이곳에 와서 좋은 인상을 가져가고, 이란인에 대한 개인적 생각 정리는 급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