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트빌리시 (4.1-4.2)
조지아에서 보내는 온전한 마지막 날이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체력적으로 후달려서 열심히 돌아다닐 의욕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는다. 숙소 근처에서 그리 멀리 곳에 트빌리시 전경을 보기 좋다는 므타츠민다 판테온을 가보기로 했다. 자유광장과 조지아 의회 건물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데 오르막을 꽤 올라야 했다. 판테온 위에 놀이공원과 테마파크가 있어서 거기까지 운행하는 푸니쿨라가 있는데, 그걸 타고 판테온까지도 올라갈 수 있었다. 트빌리시 케이블카는 교통카드로 가능한데 이 푸니쿨라는 따로 티켓을 사야만 했다. 난 테마파크는 갈 생각이 없었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올라 가보기로 했다.
가파른 골목길을 한참 올라 꼬불꼬불한 도로가 또 한참 나온다. 판테온은 조지아의 유명한 학자, 예술가 등이 묻힌 곳이라고 한다. 한쪽에 성당이 있고 옆에 묘지들이 모여 있는데, 무덤 개수가 그리 많진 않았다. 또 조지아 역사나 인물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설명도 없어서 당최 누구신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판테온은 들은 대로 도시 전경 보기엔 좋은 전망 포인트였다. 물론 이 마지막인 트빌리시의 전경도 흐린 날씨로 우중충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지친 몸을 쉬러 카페에 들렀는데, 어린이를 동반한 한국인 4인 가족이 보였다. 카즈베기의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본 가족이었다. 문득 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로 오는 버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 두 분은 어디 계실지, 또 여행은 잘하고 계실지 궁금해 연락을 넣어봤다. 두 분은 아르메니아에 있다고 했다. 내가 예레반에 있을 때 이곳이 날씨만은 정말 좋다고 알려 드렸었는데, 그것만 믿고 아르메니아로 가셨단다. 두 분도 햇빛이 많이 그리웠었나 보다. 예레반에서만 머물렀던 나와는 달리 두 분은 아르메니아 구석구석을 여행 중이라고 하셨는데, 조지아보다 아르메니아가 훨씬 좋다고 했다. 내 게으름과 저질체력 탓이긴 하지만, 급 아르메니아에서 예레반에만 머물다 온 것이 조금 후회됐다. 어쩌랴. 다 지나간 버스다. 내일이 귀국일이라 정리하며 조용히 여행을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마트에 들러 마지막일 코카서스 캐피르 요구르트와 과일들을 사 먹고 자유광장 인근을 늦게까지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드디어 귀국날이다. 친절한 이란인 호스트가 짐을 맡아주겠다고 해서 맡기고 트빌리시에서 내 안식처였던 던킨을 마지막으로 찾았다. 여행의 시작과 끝이 이곳이다. 수미쌍관 형식으로 첫날 먹었던 이상한 감자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조지아에 있던 대부분의 날이 죽상인 하늘이었는데, 이 날은 유독 맑고 따뜻했다. 여행지를 떠날 때 이곳은 언젠가 꼭 다시 와야지 맘먹게 되는 곳이 있고, 악몽으로만 남은 곳도 있는데 조지아는 잘 모르겠다. 유독 말수가 적었던 여행이라 좀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귀국날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