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예레반 (3.27-28)
렘마와 캐나다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방에 함께 묵던 독일인 손님까지 가세해 우리 넷은 늦은 시간까지 음식을 먹고 얘기를 나눴다. 렘마는 의사인데 최근 두바이에서 거주 중인 동생이 출산을 해서 봐주러 간다고 했고, 캐나다인 할아버지의 나이는 70세인데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도 내 국적과 여행 코스 등을 얘기했는데 내가 '남한'에서 왔다고 하자 남북한 정세 얘기가 대화의 주제가 됐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 회담을 막 앞두고 있던 때였다. 독일인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 남한과 미국의 관계 등에 대해서 내게 질문을 했지만, 국제 정치를 논하기에 너무나 짧은 내 영어 때문에 설명을 못 하고 가슴만 퍽퍽 쳐대고 있었다. 독일인은 완전히 서방권의 입장에서 북한을 보고 있었는데, 남 북 미 일 간의 복잡한 전후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이 캐나다 할아버지, 독립과 분단 때의 소련과 미국의 대립, 미 일 두 강대국에 의해 좌지우지된 남북의 관계 등을 너무 유창하게 독일인에게 설명해주었다. 미국이 야기하고 또 지속시키는 남북 간의 냉전 무드 등. 너무 지적이게 잘 설명해주어서 남의 나라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주변의 두 사람이 이 사람 모르는 게 없다며 혹시 CIA 아니냐며 농담을 했다.
그러는 중 내게도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캐나다인 할아버지는 일찍이 캐나다로 이민 간 베트남 계 이민자 1세대였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며 ' 한국에 베트남 여자들이 결혼하러 많이 가는데 인식이 안 좋다고 알고 있다. 여전히 그러냐?'렘마도 '필리핀 여자들도 많이 결혼하러 간다고 들었다 왜 그런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언젠가 한국인 남편에게 맞아 죽은 베트남 이주 여성의 뉴스를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아.. 나는 평소에도 이 매매혼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발끝에서부터 치솟는 느낌이었다. 이 21세기 매매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해외에 나가면 각자가 그 나라의 대표가 된다고 하더니, 매매혼을 설명할 한국 대표가 될 줄이야. 시골에 여성이 부족해 돈을 주고 사람을 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돈을 주고 사 왔다는 생각에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 외에도 렘마의 고향과 필리핀 섬의 각종 망고 나무 얘기도 나누며 화기애애한 저녁을 보냈다.
훈훈한 저녁을 뒤로하고, 그날 밤과 새벽은 이번 여행 중 최악의 시간이 됐다. 다인실은 밤 10시나 11시 정도가 되면 불을 끄고, 각자 자기 자리의 작은 스탠드를 켜던가, 전자기기를 조용히 사용하던가 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또 공용 공간인 휴게소나 식당에서 고성방가 하지 않는다. 처음 이 숙소에 왔을 때 인도인들이 많이 머문다고 했는데, 우리 방에는 이제 4명이나 됐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에도 주방과 휴게실이 북새통이길래 가봤더니 우리 숙소에 머물고 있는 모든 인도인들이 모여 아주 발리우드 영화 한 편을 찍고 앉았다. 발리우드 무비의 특징이라면 맥락과 시간 장소 구애 없는 댄스타임인데, 휴게실 TV에 발리우드 영화를 틀어놓고 다 같이 그런 춤판을 벌여 놓은 게 아닌가. 현재 시간이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1도 없었고, 우리 방에 묵는 4명은 번갈아 가며 방을 들락 거리고, 불이 꺼지고 다들 자는 방에서도 아랑곳 않고 큰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그 잔치판은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됐는데, 다른 투숙객의 항의에도 굴하지 않고 차오르는 흥을 주체할 생각도, 목소리의 볼륨의 1이라도 줄일 생각도 없었다. 어스름할 때가 돼서 잠깐 졸았는데 새벽 6시에 큰 소리로 통화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우리 방 사람들의 다국어 불평불만에도 정말로 왜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다는 인도인의 제스처에 그 길로 인도인들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혔다.
거의 새벽을 뜬 눈으로 보내고 조식 시간에 미적미적 식당으로 갔더니 대부분 밤잠을 설친 얼굴들이었다. 이날 인도인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하나 된 순간이었다. 새벽까지 춤파티를 벌인 인도인들은 곯아떨어져서 아무도 조식을 먹으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인도인을 욕하며 한마음 한 뜻이 됐다. 아침을 먹곤 오늘 떠나는 캐나다 할아버지가 터키쉬 커피를 끓여 줬다. 고운 원두와 설탕을 물을 넣고 함께 끓이다 부르륵 끓으면 끈 뒤 에스프레소 잔에 액체만 따른다. 남은 커피 찌꺼기가 조금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마시면 되는 방법도 설명해 주셨다. 그런 뒤 할아버지는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떠났다. 나도 앞으로 더 오랫동안 할아버지처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떠날 용기, 체력이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도 어느덧 3분의 2가 지나고, 내일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갈 생각이라 오늘은 예레반에서의 온전한 마지막 날이었다. 숙소의 호스트가 '세반 호수'에 갈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세반호는 굉장히 큰 담수호로 바다가 없는 아르메니아에서는 이곳으로 휴양을 많이 간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면적의 5%에 해당되는 너비로 크기도 크기지만 1900m 해발에 위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투어 패키지는 차를 대절해서 가기 때문에 인원수가 차야 갈 수 있는데, 부족한지 추가로 더 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렘마는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내게도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마지막 날 예레반 여기저기를 더 눈에 담아주고 싶어서 거절했다. 마지막 관광을 하러 나도 숙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