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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Mar 09. 2021

무서운 밤, 행복한 밤. (+ 맛있는 밤)

<밤> - 소녀의 이야기.

나는 밤을 좋아한다. 최근에 한국에서 소포로 온, 마트에서 파는 군밤 몇 봉지가 아직 주방 캐비닛에 남아 있다. 겉과 속 모두 촉촉한 그 밤은 우유와 환상의 조합이다. 학교에 다녀온 오후 시간, 우유 한 컵을 따라놓고 밤을 하나씩 꺼내어 먹으며 이번 주에 방영했던 런닝맨을 보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행복한 시간 중 하나이다.


사실 이 글의 주제는 '먹는 밤'이 아니다.

낮이 아닌 밤, '깜깜한 밤'이다. 그런데 '밤'에 대해 글을 쓰려니 그 맛있는 밤도 생각이 났다.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밤이 무서웠다. 혼자 자는 게 무섭고, 엄마나 아빠가 옆에 없으면 잠 못 들 때가 많았다. 한 방에 있어도 엄마나 아빠가 먼저 잠이 들고나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잠이 들고 싶어도 결국 나만 혼자 깨어 있게 될까 봐, 잠이 들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어 속상해하며 또 잠을 못 잤다.  그렇게  매일같이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무섭다는 생각, 내일의 걱정.. 같은 것들을 많이 떠올리곤 했다. 나는 왜인지 발 끝까지 이불을 덮어야만 마음이 놓였는데,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발까지 이불이 완전히 덮여져야만 잘 수 있었다.

내 침대 위에는 어릴 때부터 내가 아끼던 인형들이 잔뜩 올려져 있다. 인형이 많이 있어 똑바로 몸을 펴지 못하고 자느라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살짝 아플 지경이다. 그렇지만 그 인형들은 나에게 '걱정 인형'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침대가 좁아져 불편할 정도이지만 인형들과 함께 잠을 자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엄마에게 재워달라고,  내가 잠들 때 내 옆에 있어달라고 조르지 않게 되었다. 가끔은 아직도 깜깜한 한밤의 시간이 여전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요즘은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들으며 밤을 보낸다.


어린애처럼 잠들기 전에는 걱정인형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야 할 만큼 아직은 밤이 무섭기도 하지만, 혼자 밤에 깨어 사각사각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나에게 소중하다. 밤이면 조금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깊은 밤은 다른 소음이나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그래서 다음날 학교를 안 가거나 특별한 일이 없는 밤이면, 방문을 꼭 닫아놓고 스탠드를 켜놓고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하며  밤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깊은 밤에 내가 누리는 또하나의 좋은 일이 있다.

늦은 밤까지 잔뜩 몰입해서 하던 이런저런 일들을 모두 멈추고, 살짝 피곤한 기분이 되어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낀다. 핸드폰에서 spotify를 찾아 수면 모드로 설정 한 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으더없이 평화로운 기분이 된다. 그렇게 노래를 듣다가 저절로 잠이 드는데, 요즘 나에게는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 글, 그림: 찰스/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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