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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 ur mind Apr 05. 2021

어쩌면 나의첫 번째엄마.

<나의 할머니> - 소녀의 이야기.

꼬마였던 시절의 어느 날, 나는 유치원에서 가짜 네 잎 클로버를 만들고 초록색으로 색칠을 했다. 그걸 '길동 할머니'께 보여주고 싶어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머니는 네 잎 클로버를 어디에서 났냐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볼품없는 가짜 클로버 였을 텐데... 진짜 네 잎 클로버를 받은 것처럼 속아주는 할머니가 너무나 좋았다.


나는 외할머니를 '길동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외할머니는 길동에서 오래 사셨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직장에 다녀서 주말에는 집으로 갔지만 주중에는 길동 할머니 집에 있었다. 유치원이 끝나면 길동 할머니께서 항상 나를 데리러 와주셨고, 같이 집으로 가서 할머니가 내 밥을 차려주시는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던 TV프로그램 '보니하니'를 틀어놓고 보는 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길동 할머니는 길동에서의 생활을 정리하시고 할아버지의 고향이 있는 충청남도 공주로 이사를 가셨다. 매일 새벽 예배를 가기 위해 아침 3시에 일어나시고 저녁 8시가 되면 잠자리에 드시곤 한다. 할머니가 공주 시골로 내려가신 다음에도 여전히 바빴던 엄마는, 방학이 되면 나와 동생을 공주에 두고 일이나 공부를 하러 서울에 다녀왔다. 엄마가 없이 시골집에 있을 때 할머니가 초저녁부터 주무시면 나 혼자 잠 못 들곤 했다. 시골의 밤은 도시보다 훨씬 더 깜깜하고 조용했는데, 나는 깜깜한 시골의 밤이 너무나 무서워서 많이 울곤 했다. 내가 불안해하며 울면 할머니는 주무시다가도 깨어서 나를 도닥여주시곤 했다.


지금은 공주에 살고 계셔도 여전히 '공주 할머니'가 아니고 '길동 할머니'라 부르라고 하시는 나의 할머니는, 음식을 완벽하게 하시고 뭐든 뚝딱뚝딱 마법처럼 만들어주신다. 간장, 된장, 고추장까지 직접 다 만드시고 내가 베트남에 있는 동안 잘 먹지 못하는 맛있는 한국 음식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주신다. 할머니는 나의 어린시절 나를 키워주시고 먹여주시고 어디든 데리고 다녀주신 소중한 분이다. 그래서 나는 길동 할머니를 '나의 첫 번째 엄마'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간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나의 요즘 바람 하나는 고등학생 시절의 마지막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는 것인데, 코로나가 더 심해진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이다. 할머니가 키워주고 안아주던 나는 꼬마였었는데, 어느새 다 커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만 안부를 여쭈어보는 시기가 너무 길어져버렸다.

 

다음에 한국에 갈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더 물어보고 알아보고 싶다. 할머니와 밀린 이야기를 실컷 하고, 할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할머니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글, 그림 : 찰스 /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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