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다란 길이 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슈퍼마켓과 공구상, 미용실들이 늘어서 있었다. 토요일 낮이었다. 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면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꽤 멀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리는 아이는 나와 남자아이 한 명. 우리는 둘 다 1학년이었다. 반이 달라 이름도 모르는 친구였는데, 토요일 낮 그 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른 날도 있었을 텐데, 그 친구와 조잘대며 걸어가던 그 길의 기억은 언제나 토요일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숫기가 없고 학교에선 말수가 없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그 길 위의 나는 수다스러워져 있었다. 그 넓다란 길의 끝자락쯤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내가 그 친구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그 길 위에서였다. 우리는 학교에서는 서로 모르는 채로 지냈다.
언제인지 토요일 오후, 다른 친구가 한 명 더 그 자리에서 내렸다. 역시나 1학년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우리 셋은 그 날 각자의 집으로 가지 않고 그 새로운 친구의 집으로 갔다. 점심을 먹었던가? 한시간 정도를 놀다 집으로 갔다. 당연한 수순으로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1학년 꼬마가 스쿨버스에서 내린 뒤 1시간정도 사라진 사건이니 엄마는 놀라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인지... 친구랑 문방구에 갔다가 늦은 거라고 둘러댔다.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그랬다고 했던가. 내 인생 최초의 거짓말이었고,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건,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대고 놀았던 그 시간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엄마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길은 매우 넓고, 길다랗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가며 길 끝에서 헤어질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길은 그렇게 크거나 길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각자의 엄마들이, 여덟살 꼬마들끼리만 그렇게 먼 길을 걸어오게 하진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적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여름방학이 끝난 뒤 그 두 명의 친구는, 토요일 낮 함께 내려 타박타박 걸어가며 수다를 떨던 친구 한 명이 사라졌음을 알았겠구나. 라고. 나는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금새 잊었겠지? 그러나 내게는 토요일 한낮의 평화로운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나의 첫번째 친구, 라는 주제를 앞에 두고 여러가지 많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끝에 여덟살 꼬마들을 만났다. 나는 어디에서든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내 속을 잘 꺼내어놓지 않았던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말을 건네어 주고, 함께 길을 걸어주었던 아이 두 명이 그시절 내게 있었다.
지금도 나에게 '친구'의 정의란 그런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꺼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거나, 함께 천천히 걷고 싶은 사람. 평소의 나보다 조금은 더 들뜨고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 나의 첫 친구들은 그 모든 요소를 다 갖춘 꼬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