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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이 색종이를 오렸었잖아.

<첫친구>-소녀의 이야기.

by write ur mind

나의 첫 친구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때의 기억을 찾아봐야한다.

이름은 이청하, 사실 이청아였는지 이청하였는지 너무 오래되어서이름도 가물가물하다. 그 친구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새하얀 피부를 가졌었다는 사실 뿐이다.


대부분 부모님이 맞벌이인 종일반 아이들은 낮시간에 엄마가 데릴러 오는 친구들이 떠나고 난 뒤 조금은 비어있는 유치원에서 오후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종일반 친구들은 선생님들이 틀어주는 영화를 보거나, 다음날 수업준비를 하는 선생님을 도와드리기도 했는데 그 시간에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주었던 친구가 청하였다.


청하는 머리를 반듯하게 위로 묶는 게 어울렸던 친구다. 우리는 유치원에서 단짝으로, 거의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지냈다. 청하와의 재미있던 기억 중 하나는 가위질을 배운 날이다. 색종이를 접어 하트, 클로버 모양을 오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날 우리가 너무 재미있게, 함께 오리고 만들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엄마는 늘 바빴고, 나는 유치원 종일반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청하의 엄마와 우리 엄마가 서로 얼굴을 볼 기회는 전혀 없었다. 엄마끼리 조금 아는 사이였다면 유치원 밖에서도 만나 함께 놀 수 있었겠지만 우리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다. 그저 유치원 안에서 제일 친하고 가까웠던 친구였다.


내가 베트남으로 오면서 우리는 헤어졌는데, 나는 청하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릴 적 일들은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것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청하만큼은 계속 내 기억 속에 있다. 청하도 이제 18살일텐데 공부하는게 힘들지 않은지, 어떻게 사는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청하도 혹시 인스타그램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검색창에 청하의 이름을 넣어본 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데, 만약 찾는다고 해도 나는 청하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청하도 과연 그럴지는 자신이 없다.


어쨌든 나는 언젠가 청하를 만나보고 싶다.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오래오래 천천히, 시간이 지난 만큼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다.


'첫친구'라는 주제를 정한건 18세 소녀였다.

소녀는 소소한 기억들을 담담히 적었지만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종일반에서 매일 다른 친구들이 먼저 집으로 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했던, 해질무렵까지 유치원을 지키며 남아 있는 꼬마 소녀들의 모습이 또렷이 그려졌다.

나는 '늘 바쁜 엄마'의 역할로 아이의 유년 시절에 남아 있구나. 그래서 내 꼬마친구는 단짝친구와 유치원 밖에서 한번도 만나 놀 수 없었구나...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불쑥 솟아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가 적어내려간 그시절의 기억이 따뜻하고 평화롭기만 해서.. 내 마음이 더 애잔해진다.

나의 꼬마와 함께 색종이로 하트와 클로버를 만들며 곁에 있어준, 얼굴이 하얀 친구도 잘 자라주었기를. 바르고 지혜로운 열여덟살 소녀가 되어 있기를...



* 글, 그림: 찰스/ 인스타그램 @slz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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