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집에서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마법의 손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트나 시장에서 과자나 군것질을 사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자랐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부침개나 튀김, 엄마가 직접 구운 카스테라 같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수고스러움인 것인지... 그 때는 그런 환경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 줄로만 알았다.
삼시세끼 메뉴를 정하고, 매일 장을 보고, 간식을 만들어놓고 기다리던 나의 엄마를 떠올리면 가끔 생각나는 모습 하나가 있다. 해가 지는 창밖을 보며 "오늘도 또 이렇게 지나갔네.. 오늘 저녁은 뭘해먹나..." 라고 혼잣말을 하시는 장면이다. 그 모습이 가끔 쓸쓸하게 보이곤 했다. 엄마의 가사노동으로 나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시장을 보고,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자식들이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나의 엄마는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었을까. 딸들에게 사회적인 성취를 바라셨고 본인도 늘 무언가를 쓰고 만들고 배우는 열정을 놓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엄마 마음 한켠은 조금 답답하거나 쓸쓸한 마음이 있었을 거라는 걸,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헤아리게 된다.
그런 나의 엄마가 아주 가끔, 1년에 한 번 정도 밖에서 무언가를 사먹자고 이야기하는 때가 있었다.
"팥빙수 먹으러 갈래? 엄마가 사줄게."
엄마가 만들어주는 간식이 아닌, 사먹을 수 있는 유일한 외부 음식이 바로 빙수였다. 정말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신이나서 엄마를 따라가곤 했다. 시장 한켠에 있는 작은 빵집으로 들어가 팥빙수를 시키고, 엄마와 둘이 머리를 맞대고 팥빙수를 먹으면 어찌나 차갑고 달콤한지. 여름날의 더위는 사라지고 기분도 좋아지곤 했다.
늘 집에서, 요리를 하고 식탁에 무언가를 차려내던 엄마가 빙수 앞에서 한스푼 떠서 입에 넣으시는 모습은 웬지 낯설고 어색해보이는 풍경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때 엄마 눈빛에 소녀스러움이 담겨있었다. 엄마가 귀여워보이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빙수를 사주는 날은 사실 그냥 보통의 날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공부로 지쳐있을 때나, 조금 아프고나서 기운이 쳐져있을 때 기분전환하자는 의미로, '특별한 걸 먹으며 마음달래볼래?'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날 엄마도 무언가 작고 소소한 일탈(?)을 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시원한 빵집에 앉아 남이 만들어준 달콤하고 시원한 빙수를 먹는 여유를 갖고 싶었던 엄마의 어느 하루였겠지. 그날 엄마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무슨일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십대의 나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가끔, 엄마와 서울에서 만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빙수나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모셔가곤 한다. 기분좋게 달콤하고 시원한 빙수를 먹으며 엄마는 즐거워하신다. 엄마와 빙수를 먹을 때마다 그 시장 한켠에 있던, 작은 빵집의 소박한 팥빙수를 떠올린다. 그 때 내 얘기만 하지 말걸, 엄마에게도 무언가 많이 물어볼걸. 엄마는 무얼 하고 싶었었는지, 요즘 무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지, 엄마의 꿈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물어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