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침대와 소파에 누워 요조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상담 보고서 하나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책을 붙잡고 읽다 보니 끝까지 읽고 싶어서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 이번 주는 좀 바쁠 예정이라 미루어둔 보고서는 언제 쓸 수 있으려나... 생각했지만 살짝 모른 체 해버렸다.
지난주 원고를 넘겨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마감 전날엔 한동안 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종일 멍하니 드라마를 보다 정작 원고는 그날 밤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해서 마감 당일 아침에 보냈다. 급히 보내고 나니 조금 찜찜하다. 진즉에 해둘걸!
취미 부자라 집에 이런저런 재료들이 많다. 종종 꺼내어 쓰는 것만 남겨놓고 안 쓰는 것, 필요 없는 것은 버려야지 하면서도 당장 급한 거 아니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 책꽂이에 이중으로 꽂혀있는 책들도 한 번쯤 덜어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올해 초부터 생각했던 일인데 어느새 6월이다.
나의 나쁜 버릇. 가장 오래되고 가장 고쳐지지 않는 최악의 습관.
'미루기'
많은 일들을 미리미리 해두지 못하고 막판에 '다다다다!' 집중해서 몰아치우는 성향이다. 그 마지막에, 집중력은 (어쩔 수 없이) 최고조에 달하고 결국, 간신히 해내기는 한다. 대체로 결국엔 해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최선일까? 나는 왜 마지막에 턱밑까지 차오르는 스트레스를 분명 알면서도 미리 해두지 않는 것일까.
삶의 많은 일들은 미룬다고 없어지거나 가벼워지지 않는다. 미루면 미룰수록 일은 그대로이고, 내 마음의 부담과 스트레스는 두 배, 세 배로 늘어나 점점 마음은 무거워진다. 하기 싫은 일일수록 그 '미룸'은 더 가속화되고, 그 하기 싫은 감정의 크기는 열 배, 백 배가 된다. 그러나 결국 해야 한다. 징징대고 허덕이며, 마감 전날 밤을 새우고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피로에 쩔면서 한다. 잘 해낼 때도 있지만 급하게 하느라 완벽하지 못한 경험도 많이 했다.
마지막에는, 꼭 해야 할 때가 오면 결국은 하게 됨을 알고 있다. 나의 '미루기'는 마지막에 집중적으로 발현될 집중력과 몰입도를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습관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감이 닥쳐서야 가까스로 해내는 일은 결국 수동적으로, 억지로 끌려가듯 해내는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내가 계획한 대로, 미리 해놓고 점검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만의 페이스대로 뭐든 미리미리 해두고 준비해놓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
'미루기'는 업무에만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감정과 관계에서도 제버릇 남 못주고 불쑥불쑥 저지른다. 나의 미루기는 보통 내가 구하거나 원하는 상황, 아쉬운 입장일 때 주로 발현된다. 부탁, 요청의 말들, 확인을 청하는 상황일 때 나는 최대한 미루고, 머뭇댄다. 그러다 필요 이상의 손해를 보기도 한다.
꺼내놓기 애매한 감정들도 마찬가지... 표현 안 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 살짝 고민하며 미루다, 결국 못하는 마음의 표현들도 많을 것 같다. 일도 일이지만, 그런 마음과 감정의 '미루기'는 마감도 없으니 해결 못한 채 지나버리게 되곤 한다. 그로 인해 나는 무심한 사람으로 기억되진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을까.
나의 나쁜 버릇을 바꾸고 개과천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자기 개발서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계획적인 사람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미루고 미루다 마감날 새벽이면 밤을 새워서라도 무엇이든 해내는 지금의 이 마음이라도 붙잡고 살아야겠지...라고 생각한다. 내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에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전하고, 너무 늦지 않게 표현하는 사람은 되자고 생각한다. 좋아한다고, 미안했다고, 늘 감사한다고, 사실은 애틋한 마음으로 곁에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살고 싶다. 너무 늦어 후회는 하지 않을 정도로, 그 정도만 미루며 살아가야겠다.
* 글: 나영/ 인스타그램 @etesian_wind
* 그림: 소현/ 인스타그램 @slz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