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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실패

교훈 삼지 못한 나

by 쭈쓰빵빵

점심을 먹으러 회사 구내식당에 갔다. TV 뉴스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정에 관한 이야기가 이슈다.


나는 밥을 입속에 욱여넣으며 생각했다

"관세? 거기 협상하러 나나 보내주지. 뭐 깎는 데는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인데. 트럼프도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하도록 억척스럽게 깎아 볼 자신 있는데.

재능기부 할 기회 좀 주지"


나에게 특기로 내세울 것이 있다면 물건을 제 값보다 천 원은 깎아서 사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게 한 푼 두 푼 아껴 돈을 모으는 것이다.


나는 아들보다 3살 위 사촌 형의 옷을 아들에게 물려 입혔다.

나도 어렸을 때 언니한테 지겹게 옷을 물려 입은 것에

질색팔색 했으면서 한 동안 내 아들한테 언니 아들 옷을 물려 입혔다.


다행히 아들은 사촌 형이 좋으니 형의 옷을 물려 입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도 나도 자존심이 있지!

언니한테 애들 겉옷은 물려 입혀도 속옷은 제때 새것으로 사주었다.

그런데 언젠가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계획도 없이 그날 잠을 자게 되었다. 여 벌 옷이 없으니 아들은 형 옷에 형 팬티까지 한 벌 잘 얻어 입었고 다음 날 그대로 집으로 왔다.

그날 이후로 아들은 그날 입고 온 형 팬티만 주야장천 입었다.

속옷까지 물려 입히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느 날 아이 목욕을 시키기 위해 옷을 벗기는데 입고 있는 형 팬티가 해져서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이제 이 팬티는 그만 버리자. 구멍 나서 더 못 입겠다."


그러자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냥 꿰매~"


그냥 단순히 형이 좋아서. 그 팬티기 좋아서 일 수도 있지만.

난 "궁상의 대물림"인가? 싶었다.

어휴! 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

내가 똑 닮아버린 것은 물론 아들에게 까지 물려주고 있다니.




결혼 전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

우리는 어렵게 결혼했고 악착같이 열심히 모았다.

결혼 10년 차가 되어갈 때쯤 작은 투 룸 월세 집으로 시작한 우리는 아들, 딸을 낳고 키우며 남편이 결혼 전 갖고 온 빚도 거의 다 갚고 신도시 몫 좋은 곳에 34평 아파트도 사고 인근에 조그만 땅도 사고 살림은 날로 나아져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었으니. 물건 값을 억척스럽게 깎는 재주보다 돈 모으는 재주보다 월등히 뛰어난 영재성이 숨겨져 있었다.

뒤늦게 발견된 이 재능.


바로 한 푼 두 푼 어렵게 모은 돈을 단숨에 까먹는 재주이다.

정말 남들은 하라고 해도 못할 그런 탁월한 재주를 내가 가졌다.


지금은 내 삶의 첫 번째 실패담을 고백해 보려 한다.


들추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이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고 적어도 살면서 나처럼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본다.




2018년 늦은 봄.

지인으로 인해 처음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돈을 은행에 예치해 이자를 받듯 비트코인을 코인 관련 투자 회사에 예치해 배당금을 받는 회사를 소개받았다.

투자 금액 대비 배당금이 꽤 많이 나왔고 회사 플랫폼을 통해 매일 배당을 받았다. 코인 계좌를 개설하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구매해 그 투자 회사 계좌로 코인을 옮겨 배당금을 받는 시스템이다. 나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남편은 뭔가 못 미더웠는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었다. 나를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안 남편은 내가 투자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3천 만 원을 내주었다.

단. 조건이 2개 붙었다.

첫째는 돈을 다 잃어도 좋으니 손실 봤다고 스트레스받지 말 것.

두 번째는 본인이 준 돈 3천 만 원 외에는 절대 더 이상 투자하지 말 것.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준 돈으로만 했다.

그런데 투자금이 커지면 그만큼 배당도 많이 나오니 욕심이 났다. 나는 배당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재 투자 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갖고 있는 돈 5천 만 원에 또 많은 돈을 대출받아 더 넣었다. 거기에 한 푼도 쓰지 않고 재 투자 한 배당금까지 합하면 투자금은 2억 가까이 되었다.

배당을 받은 지 1달이 쫌 지났을 까 어느 순간부터 배당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에 잠시 사정이 생겼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쨌든 불안한 나는 내 코인을 출금 신청 했다.

출금이 승인되기까지 이틀이 걸렸는데 나는 정말 2만 년 같은 이틀을 지옥 속에서 보내고 무사히 코인은 내 계좌로 잘 들어왔다.

나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쳤다.

회사 문제가 해결되어서 정상화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시 코인을 회사 계좌로 보냈다.

고배당으로 돈을 더 불려보려는 욕심에.


그리고 며칠 뒤,

나의 코인은 그 회사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이 무너졌다.

남편에게 말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고 남편이 먼저 물었다.


"왜 그래. 문제 생겼어? 내가 준 3천만 원만 넣은 거 아니야? 더 들어간 거야? 얼마 넣었어?"


"나 말 못 해. 나는 그냥 죽어야 돼"


"얼마 넣었는지 당장 말해! 말 안 할 거면 지금 죽어!

2억 쯤 들어갔어?"


"응"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 참 후에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이 집 팔고 변두리로 이사 가자"



다음날 나는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려고 그 회사와 관련된 사무실이 있는 서울에 갔다.

그날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우산 사는 돈도 아깝고 나 같은 사람은 우산 쓸 자격도 없다고 느껴져서 비를 맞고 다녔다. 뭐 별다른 소득 없이 비만 잔뜩 맞고 돌아왔다.


남편은 며칠 뒤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돈을 벌려다 보면 까먹을 수도 있는 거야. 돈은 또 벌면 돼. 걱정하지 말고 돈 펑펑 쓰고 다녀. 돈은 내가 많이 벌 거니까"


나는 딸로 태어난 죄로 태생부터 죄책감을 타고나 스스로를 정죄하고 괴롭히고 학대하는 사람인데.

눈을 뜨는 순간부터 스스로에 대한 비난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게 나란 사람인데 적어도 내 남편만큼은 나보다도 더 내 편이었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로 복직을 했다. 한 푼이라도 벌어서 이자라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옆에 있던 엄마가 갑자기 회사에 나가는 것도 적응이 안 되었을 텐데 나는 퇴근 후에 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승진시험이 코앞이다. 시험제도가 그 해를 마지막으로 바뀌게 돼서 이번에 꼭 합격해야 했다.


남편은 본인이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나 대신 서울에 일을 해결하러 다녔다.


나는 복직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보 같은 나를 탓하느라 힘들었다.

또 돈에 쪼들리고. 아이들은 울어대고. 그 와중에 시험은 만점을 받아야 겨우 승진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고.

남편은 타지에서 잠도 못 자고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일에 매달려있고.


육체피로와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버티다 버티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퇴근 후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독서실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안방 화장대에 앉아 물끄러미 거울을 보고 있자니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살 자신이 없다. 그냥 죽고 싶다.


어떻게 죽지? 번개탄을 피워야 하나? 번개탄은 어디서 팔지? 요즘 연탄 떼는 집도 없는데. 캠핑장에서 불멍 할 때 번개탄으로 불을 피웠었나? 캠핑장비 파는 곳엔 있으려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난리를 치는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내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친구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 가끔씩 우리 애들 좀 들여다 봐줘라. 번개탄은 어디서 구해야 되냐?"


친구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야! 그거 우리 아빠 철물점에 엄청 많아! 말만 해!

지금 갖다 주면 돼?!"


친구 부모님은 철물점을 운영하시는데 번개탄도 판매를 하는 모양이다. 친구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물건을 구해다 내 앞에 친절히 불까지 피워줄 기세였다.


나는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을 닦고 조용히 독서실로 갔다.




남편은 서울에 그 사무실 근처 찜질방에서 며칠 묵으며 회사 누군가를 설득해 어쨌든 내 투자금의 반 넘는 금액을 회수해 왔다. 나만 챙겼다면 내 원금을 다 복구했을 텐데 처음 내게 소개해 준 지인과 서울에서 만난 나와 비슷한 사정의 남자(그 남자도 공무원 휴직 중으로 교사 아내의 공무원 대출금까지 끌어와 투자했다고 했다)의 손실금을 일부 챙겨주었다.

남편은 무슨 일이든 해결을 잘하는 해결사다.


빚은 많이 남겼지만 어쨌든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고 나는 아슬아슬 겨우 승진을 했다.


코인은 자체로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위험자산이다. 그리고 관련 법이 불안전하여 자산에 문제가 생겨도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쉽지가 않다. 조심해야 한다.





나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원인을 밖에서 찾기보다 내 안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내 어떤 마음이 이러한 현실을 일으켰을까?

나의 어떤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나?

나는 무얼 회피하고 싶었는가?


나는 돈에 관련되어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사기꾼에게 잘 못 걸렸다? 코인 작전 세력에 휘말렸다?


그런 변명은 이유가 될 수 없다.


분명 원인은 나에게 있다.


돈에 대한 나의 관념. 사상.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걸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나는 또다시 세 번째 실패를 겪고 몰래 공중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무릎을 꿇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돈!

'돈과 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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