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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는 길(퇴짜를 맞아도 여전히 난 널..)

by 쭈쓰빵빵

얼마 전 친구와 양꼬치 집에 갔다.

양꼬치와 가지튀김을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양꼬치 2인분, 가지튀김, 계란탕 세트가 49,000원이었다.

세트메뉴로 시킬 때와 단품으로 시킬 때

둘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계산하느라 주문이 늦어졌다.

3000원 차이가 났다.

계란탕은 단품으로 5,000원이었는데 먹을지 안 먹을지 또 고민을 했다.

세트메뉴가 3000원이 싸다고 해도 계란탕을 안 먹을 거면 구태여 세트를 시킬 필요가 없다.

한참 고민 후에 계란탕을 2,000원에 먹는 셈 치고 세트 메뉴를 시켰다.

어렵게 주문을 하고 주문한 양꼬치가 나오고 양꼬치는 숯불 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며 잘 익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테이블에 쓰여있는 네이버 영수증 리뷰를 하면 전체 금액의 10%를 할인해 준다는 문구를 보고 말았다.

나는 사장님께 영수증을 요청하고 양꼬치 사진을 찍고 열심히 네이버 리뷰를 작성했다.

그 사이 숯불 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며 노릇하게 잘 구워진 양꼬치가 급기야 타 들어가기 시작한다.

친구는 영수증 리뷰는 조금 있다가 쓰고 일단 먹으라고 성화다.

갑자기 현타가 왔다.

며칠 전 나는 불과 10분 사이에 1억 4천만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한다는 짓이 고작 몇 천 원 할인을 받겠다고 긴 시간을 들여 메뉴 고민을 하고 또 10% 할인을 받겠다고 고기가 타 들어가도 먹지 않고 리뷰를 작성하고 있다니.

나는 하던 짓을 멈추고 친구에게 물었다.
"인생 살면서 나 같이 어리석은 인간을 본 적 있냐?"라고.

나는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너는 인생을 나처럼 살지 마라"라고


나의 탐욕. 그로 인한 어리석음.
인정한다. 그래서 쫄딱 망했다.

인정은 하지만. 뭔가 변명도 하고 싶다.

너무 스크루지처럼만 보이는 것도 사실 진짜 내 모습은 아니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내가 아낄 수 있는 돈은 아끼지만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간지 나게 플렉스도 한다.

일단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고 용돈 드리는 데는 아끼지 않는다. 해외 아동 후원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후원하는 것도 잊지 않고 몇 년째 다양한 곳에 하고 있다.

쫄딱 망한 지금까지도 그걸 중단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보다 더 조심해야 할 사람이 있다.

"본인 스스로 돈 욕심 없다는 사람. 주변에 꼭 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경험 상 이런 사람들이 알고 보면 진짜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치고 돈에 집착 안 하는 사람을 못 봤다. 작은 돈에 더 벌벌 떤다.




나는 3년 전쯤 이 구두를 쿠팡에서 12,900원에 구매했다.

그리고 특별한 날 아껴서 신었다.

1년 전에 구두 굽이 닳아서 굽을 갈려고 알아봤더니 비용이 7,000원이라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나는 인터넷에서 750원에 구두 굽을 구매해 집에서 갈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껴 신고 있다.

나는 돈을 아끼고 모으면 기분이 좋다.

물건을 사거나 외식을 해서 돈이 내게서 떠나면 나는 기분이 안 좋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명품 백, 옷, 주얼리 등 쇼핑에는 취미가 없다.

안목은 더 없다.

비싼 옷을 걸쳐 입고 브랜드를 뽐내기보다 만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도 몸매가 빛났으면 좋겠다.

비싼 화장품으로 피부를 잘 커버하기보다 맨 얼굴이 더 깨끗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따지면 돈이 많지 않아도 나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돈에 대해 나는 편안한 감정이 없다.


내가 본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 물건을 사거나 대가를 지불할 때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물건 값을 말도 안 되게 깎았고 깎아서 사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하신 듯 기분이 안 좋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도 돈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것 같다.

아빠가 처음 돈을 벌은 건 14세 때다.

5형제 중 셋째인 우리 아빠. 첫째 큰 아빠는 아빠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고 둘째 큰 아빠는 고등학교를 다니셨다고 했다. 셋째인 우리 아빠는 부모님이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았고 대신 공장에 취업해 돈을 벌어야 했다.

어린 소년이 한 달을 어렵게 모아 첫 월급을 타온 날.

집 앞에서 큰 아빠가 기다렸다가 아빠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뺏으려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아빠가 형에게 맞으면서도 끝가지 돈을 뺏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사수한 첫 월급봉투.

친할머니께 내밀며 14세 소년이었던 아빠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것은 돈이 아니라 내 눈물이오'

아빠에게 돈은 가족을 살리는 고마운 것, 좋은 것이 아니라 없어서 서러운 것, 힘들게 얻은 것, 아픈 것이었을 듯하다.

아빠도 열심히 사신 것은 맞다. 자수성가하셔서 자산도 있고 뒤늦게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교도 나오셨다.

그러나 아빠는 어린 시절 이후로 줄 곧 지금까지도 돈에 집착하신다. 돈을 쓰실 줄 모르고 70세가 넘으시고 기력도 쇄하고 아프신 와중에도 어떻게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고민하신다.

우리 외할머니는 12살 엄마를 신분을 속여 몰래 공장에 취업을 시켜 월급날이 되면 공장 앞에서 엄마가 월급봉투를 갖고 나오기를 기다리셨다고 했다.

한 달에 한번 공장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외할머니를 보고 엄마는 그제야 "오늘이 월급날이구나"를 아셨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갖고 가셨다.

그런데 본인이 생각하셨던 것보다 엄마 월급이 100원이 부족하면 왕복 버스비 120원을 들여 다시 공장에 찾아오셨다고 했다.

100원의 행방을 물으려고.

100원을 더 받아가시려고.

외할머니가 나쁜 분은 아니었다. 없는 살림에 7남매를 키워야 하니 큰딸이 살림 밑천이었을 뿐.
돈이 없는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버린 비누 조각들을 모아 하나로 뭉쳐서 씻으며 생활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도 지독하다. 사실 나는 엄마의 지독함을 손톱밑에 때만큼도 못 따라간다.


어렸을 때 나는

종종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문어발이 먹고 싶어 엄마에게 100원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흔쾌히 주신 적이 없었다.

나는 100원짜리 문어발을 먹기 위해

엄마에게 '100원만'을 외치며 최소 한 시간쯤은 졸라야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돈은 갖기 어려운 것. 어렵게 얻는 것.

나는 얻을 자격이 없는 .

이라는 사상이 내 무의식에 조용히 스며들었던 것 같다.


또 나는 세상이 두렵다고 느낄수록.

상처받았던 기억이 쌓여 갈수록 돈에 더 집착했던 것 같다.


위기의 순간

100%는 아니지만 인생의 거의 80% 이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능력치 이상의 것을 요구받았을 때.

나는 위기의 순간을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해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아프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많은 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의 상처,

내 취약점을 감추고 싶을 때도

돈은 힘이 되었다.

상처가 많아질수록, 삶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돈에 대한 집착도 함께 커져버렸다.


그러나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돈에 대한 집착과 결핍감은 결국 나를 쪽박 차게 만들었다.

나의 두려움을 돈으로 감추고 피하려는 태도는 나를 더욱 탐욕에 물들게 했고 불안한 상황으로 몰아붙였다.

마음의 문제

그것은 돈 뒤에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는 척 연기한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돈에도 의식이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편안하게 대해주는 상대에게 갈 것 같다.

나는 돈을 진심으로 사랑했는가?

나는 돈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

다만 집착했을 뿐.


진짜 사랑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돈이 내게 오면 좋고 돈이 나를 떠나면 허탈하고 불안하다.


돈이 나를 떠날 때 내게 즐거움을 주고,

안락함을 선물로 남겨주고 떠나는 것에 감사하지 못했다.

또 그 돈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기쁨이 되고 삶을 이어지게 하는 소중한 것일 텐데 그 부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를 즐겁고 감사하게 떠나보내고 다시 내게 돌아오기를 여유롭게 지켜보지 못했다.


나의 두려움으로 인해 집착하고 가두려고만 하였다.


그리고 돈이 내게 왔을 때도 진심으로 반기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내가 주식, 코인으로 수익을 보았을 때도 만족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수익으로는 그간 나의 노력과 마음고생에 대한 위자료로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 돈은 형편없다고 느꼈다.

내게 더 많은 돈이 와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었음에도 내 마음은 온통 결핍감으로 가득했고 나는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와 같았다.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도 반기지도 않는 주인을 만난 돈은 내 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곧 나를 떠났다.




나는 가만히

날 떠나간 돈을 생각한다.


지난날.

그에 대한 태도와 나의 생각들을 돌아본다.

반기지 못했고 소중히 대하지 못했다.

만족하지도 않았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런 나를 반성한다.


내게 오는 단 돈 100원에도 진심으로 감사하자.

이 돈으로도 충만하다.


돈을 지불하며 내가 얻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기뻐하자.


내 손을 떠나며 가는 돈을 잘 가라고 배웅해 주며 기꺼이 잘 보내주자.

누군가의 기쁨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도 함께 기뻐해주자.


또 물건값은 적당히 깎자.

돈을 쓰는 나도 즐겁고 내 돈을 받는

상대방도 기뻤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새롭게 성숙한 인간으로 진짜 사랑을 해볼까 한다.

나는 용기 내어 다시 시작한다.

돈에 대해

집착이 아닌

진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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