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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 수용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덕분에

by 쭈쓰빵빵

어린 나이에 교정 시설에 오게 된 A가 있었다.

나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A는 교육생으로 만났다.

함께 한지 꽤 시간이 흘렀을 무렵 A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됐네요.

또 살면서 한 번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나를 보고 A는

'진짜 어른을 봤다'라고 했다.

[# 당시 나는 네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했다. 네가 본 것은 오해라 고백하고 오해를 풀어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롤모델'

A에게 내가 그랬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A의 눈엔

내가 멋진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A에게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둘로 나뉜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과 후로.


자신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알게 됐다고도 했다.


내가 서있는 자리, 내가 했던 말,

함께 들었던 음악, 함께 나누었던 대화


그 모든 것들은 좁디좁은 수용시설 안에서

어린 A의 꿈을 그리게 했다.


A는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훗날 꼭 나처럼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서 있을 거라고.


나는 A의 꿈을 응원했다.

그리고 A는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합격한 후 교정 시설 안에서도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A는 절망하며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요. 친구들은 대학에 가고 부모님들은 자식을 보러 대학 캠퍼스로 가는데 우리 부모님은 저를 만나러 이곳에 와야 하니까요."


A는 슬프게 울었다.


나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우는 A를 향해

센 말이 툭 나와 버렸다.


"그럼 너희 부모님이 널 만나러

네 무덤을 찾아가는 게 좋겠어?"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그렇다.

'자식은 부모의 스승으로 온다'는 말

그 말도 맞다.

감정적이고 하자투성이인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비로소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런데 '자식은 존재 자체로 부모에게 공헌'

나는 이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이미 부모가 된 이상.

내 삶에서 자식의 존재는 잘 나고 못났다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곳에 함께 존재하기에 내 삶이 이렇게 온전하게 굴러가고 있다.

자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내 삶은 무너질 것이다.

힘든 세상 속 각자의 자리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

우리는 그 자체로 큰 일을 해 내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저 내 자리를 비우지 않고 버텨내는 것.

그것은 그를 둘러싼 모든 이에게 공헌이다.


나는 A에게 말했다.


"내 눈엔 대학 캠퍼스가 아닌 이곳에서 수업을 듣는 네가 더없이 훌륭하고 대단해 보여.

네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실 거야. 지금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살아내는 자체가 지금은 부모님께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거라 생각해.

부모님이 네가 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보러 오실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널 보여줄 수 없을 때 그때가 부모님께 진짜 죄송한 일이니 건강하게 잘 지내자."


마음이 조금 진정된 A는 내게 늘 받기만 한다고 미안해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그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절 이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떠올렸던 생각들.


한 달 출퇴근 경비로 소요되는 주유비를 계산하며

내가 어린 연년생 아이들을 떼어놓고

이 월급을 받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합리적인가?


나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워킹맘의 직장생활은 가성비가 떨어지며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덜 중요한 일을 애쓰며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A가 나에게 말했다.


"진짜 어른을 보았노라고.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싶어 졌다고.

멋진 어른이 돼서 당당히 날 만나러 오겠다고."


지쳐있었고 형편없다고 느껴졌던 나의 일상을

A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한 달 월급을 받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매일같이 눈을 뜨면 좀비처럼 한 시간을 달려가 일하고 한 시간을 달려가 퇴근하며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본주의 노예인 나를 월급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사명감을 갖고 특별한 가치를 실현하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당시 나 역시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진짜 멋진 어른이 되자'


나는 A에게 멋진 롤 모델이 되기 위해

인생을 잘 살고 싶어졌다.


일방적인 것은 없다.

그곳엔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없었다.

경계가 없이 서로에게 남은 건 충만함이었다.




한 달 전.


큰 시련을 겪은 난.

절망의 한가운데서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가입을 했다.


너무나 형편없고 바보 같은 나 자신이 죽도록 밉고 쪽팔리고 화가 났지만 없었던 일로 되돌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상황에서

내 피 같은 돈을 그냥 날리는 건 더 못 견디겠더라.

환장할 노릇이더라.


나의 바보 같은 짓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믿었다.

그걸로 나의 죄를 씻어보려고 했다.

그렇게라도 살아보려고 했다.


텅 비어있는 나의 주식, 코인 계좌.

그리고 붉은색 장대를 세우는 주식, 코인 시세를 100번 1000번 들여다보고 이불킥을 하며 포효할 시간에


나는 조용히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은 써서 뭐 하나.

그런다고 떠나간 내 돈이 다시 살아 돌아오나

회의감이 들고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 '틱틱' 한 번씩 울려주는 라이킷 소리에 맘이 설렜다.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하니 그 시간만큼은 괴로움이 사라진다.


그러다 가끔


나의 글이 울림이 된다는 말에

누군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는 댓글에


나는 눈물이 났다.

그리고 '기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의 주식계좌가 코인계좌가 비어있어도

그 순간 나는 충만했다.

이것은 내게 신기한 경험이다.


나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치유받고 있었다.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갈 힘을 얻고

또 글을 쥐어짜 낼 에너지를 얻었다.


사건이 터지고 1달 후인 지금.

나는 살아있다.


아직도 내가 홀로 걸어야 할 어둠의 길은

멀고 험난하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숨을 쉬며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 한숨 한숨은 나만의 숨이 아니다.


그 숨은 나를 향한 또 타인을 향한 공헌이다.




나는 당신께 고백합니다.


"당신이 내쉰 들숨과 날숨이 오늘 나를 살게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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