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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Mar 21. 2024

너는 어릴 때 꿈이 뭐였니.

그러게요. 뭐였을까요?

언젠가 내 대학 지도 교수님이 강의 도중에 물었다.


“너는 어릴 때 꿈이 뭐였니.”


간단한 인공지능을 가르치던 강의였던가. 무슨 맥락에서 시작됐는지 기억나질 않는 그 물음에 나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 어릴 적 꿈이었던 작가와 사서, 출판 편집자, 그리고 심리학자까지 수많은 꿈이 떠올랐지만 무엇도 말로 뱉을 수가 없었다. 그중 무엇도 로봇공학과의 3학년 강의실에서 들을 법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결국 ‘꿈이 없었다.’고 답했다. 교수님은 물음의 첫 답이 공백이 되자 짐짓 당황하셨지만, 서둘러 그럴 수도 있다며 꿈이 없을 수도 있지 하시곤 내 옆에 앉은 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되물으셨다. 이후 대여섯의 학생들이 저마다 과학자니 공학자니 하는 지극히 로봇공학과스러운 답변을 내놓았고 나는 이름도 모를 사람들의 한 단어로 된 꿈을 들으며 꿈이 없다고 말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사람이 순간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고 그랬다. 그래서 교수님의 그 질문을 받고, 내가 꿈이 없는 사람이 되길 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길어야 2초 정도. 그리고 고작 그 2초 때문에 강의실에 있어야만 했던 두 시간을 내리 슬퍼했다.


그 강의실에서 내 꿈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모두를 당황케 할 낯선 단어였다. 그래서 혀끝에 심리학자와 작가라는 여러 단어를 무겁게 올려두고 말을 삼켰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곳에 있을 만한 미래를 그린 적이 없었기에 도통 말하기 좋을만한, 무난한 꿈이 떠오르질 않았다. 내겐 그곳과 어울리는 꿈 실오라기 한 자락도 없었다.      



내게는 대략 1년 정도의 기억이 없다. 소설처럼 아예 기억이 사라진 건 아니고, 그냥 어떻게 흘러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 정도다.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때의 기억들은 모두 물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십 년도 더 된 일만 같고, 순서도 뒤죽박죽이라 괜히 떠올리려 하면 머리만 아프다.

그해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잠이 들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이불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끼니를 먹긴 고사하고 인스턴트커피 하나를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 무렵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물었다.


“요즘 책은 읽니?”

나는 검색어도 없는 포털 앱 화면을 이유 없이 넘기며 건성으로 답했다.

“아니. 딱히.”

“피아노는 치고?”

“아니.”

“글도 안 써?”

“응.”

“왜 요샌 친구도 안 만나?”

“다들 바빠.”

엄마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나는 엄마가 더는 내게 말을 걸지 않길 바랐다.

“여전히 심리학이 하고 싶어?”


목이 시큰하게 아렸다. 말을 해야 하는데. 아니라고,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목에 걸려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끝내, 언젠가의 2초를 몇십 배 삼키고선 울 듯 말했다. 난 정말 그런 목소리로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제 안 하고 싶어.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그 무렵의 나는 모든 걸 포기했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즐겁게 사는 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찾는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게 삶이려니 하며 견디던 것들도 모두 지겨웠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고, 매일 밤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저 이런 백해무익하고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내가 하루라도 빨리 죽어버리길 바랐다. 그래서 그때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말은 사실이었다. 모두 진심이었다.


엄마는 그 후 별다른 말이 없었고, 나도 달리 무언가 말하지 않았다. 그 이후는 모른다.     



그때보다 훨씬, 아마 세 배도 넘게 나아진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 않다. 오히려 예전처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서 문제다. 우울증이 멀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살고 싶어졌다. 손톱이 자라는 것보다 느린 속도로, 아주 조금씩.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어질 때마다 포기해 버렸던 내 꿈은 딱 살고 싶어진 그만큼씩 날 앓게 한다.


내가 무엇을 할지 고민할 때마다 마음이 자꾸만 심리학에서 맴돈다. 자격 없는 지원공고를 맴돌고, 심리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이 간다던 HR에 눈이 가고, 배운 거라곤 혼자 책으로 읽은 게 고작인데도 상담사를 검색한다. 한 번이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걸 알기에 자꾸만 마음이 기운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쓴 채 심리학을 배우겠다고 말할 용기는 없는 주제에.


학교를 지키던 선생님은 내게 욕심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날 탓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난 욕심이 많다. 그저 내 목표가 그곳에 없었을 뿐이다. 난 항상 과한 욕심을 내고 있었고, 내가 살고 싶어 질수록 그때의 그 욕심이 아귀처럼 고개를 쳐들고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도무지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난 여전히 심리학이 하고 싶다.


차라리 정말로 꿈이 없었다면 훨씬 덜 힘들었을 것만 같다. 빌어먹을 못난 마음은 힘이 들 때면 매번 그렇게 생각한다.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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